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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면아래 Feb 21. 2024

침몰하는 김치찌개

100가지 요리, 100개의 마음. 예순 번째

찌개 중에 김치찌개만 한 게 없다. 집에서나 밖에서나 언제든지 먹을 수 있고 김치만 맛있으면 대부분 맛있다(그게 가장 큰 문제이긴 하지만) 특히나 외국 나가서 한국음식이 당길 때 김치찌개는 제 역할을 톡톡히 한다. 삼겹살을 넣은 것, 참치를 넣은 것, 꽁치를 넣은 것 등등 취향에 따라 좋아하는 김치찌개가 다를 것이다.


난 단연코 고기를 넣은 김치찌개를 좋아한다. 살짝 비계가 있는 삼겹살도 좋지만 담백한 목살이 더 좋다. 요즘은 고깃값이 너무 올라 앞다리살로 해 먹는다. 뒷다리 살은 싸긴 한데 퍽퍽하고 살짝 이상한 냄새가 날 때가 있다. 내가 허용하는 범위는 앞다리살까지.


요즘은 육수에 재료를 담아서 가지고 내어와 즉석에서 끓여 먹는 전골 스타일의 김치찌개도 많다. 이런 전골류는 이인분 이상씩 팔기 때문에 혼자 먹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그다지 탐탁지 않다. 더구나 내 기준에 김치찌개는 김치가 완전히 흐물흐물해지고 두부와 고기도 양념이 배어 나오게 오래 끓여야 한다.


서울에 온지 지 얼마 안되어 저렴한 동네의 반지하에서 살 때 근처에 김치찌개 집이 하나 있었다. 가격도 매우 저렴해서 2000원 정도 했던 것 같다. 할아버지 할머니 두 분이서 운영하는 작은 가게였는데 메뉴가 김치찌개 달랑 하나였다. 주방이 훤히 보이는 식당이였는데 주방 안에는 커다란 드럼통만 한 들통이 있었고 김치찌개를 시키면 그 큰냄비에서 국자로 찌개를 퍼서 뚝배기에 담아내어 주었다. 얼마나 끓였는지 김치는 푹 퍼져있고 고기는 씹으면 거의 가루 수준으로 부서졌다. 그런데도 김치찌개가 참 맛있어서 돈 좀 생기면 그 집에 가곤 했다. 큰 들통에다 끓여서 주는지라 그날그날 운에 따라 고기나 두부 같은 건더기의 양이 달라졌다. 매일 예측이 불가능한 음식을 먹는 건 내 취향이 아니다. 그럼에도 난 그 집에 자주 갔고 공깃밥을 비우면 할머니나 할아버지가 더 먹으라고 공짜로 밥 한 공기를 더 주곤 했다. 가끔은 계란 후라이를 주시기도 했다. 손님은 언제나 나와 아저씨들 몇몇이었고 식당이 꽉 차 있는 걸 보지 못했다. 이사를 가게 되면서 다시 한번 가야지 했지만 결국 가지 못한 채 벌써 십여년이  훌쩍 지나버려 이제는 찾을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요즘은 김치찌개 전문점도 꽤 있는 편이고 프랜차이즈 식당들은 항상 기대한 만큼의 맛과 양을 주기 때문에 예측이 가능하여 자주 가는 편이다. 집에서도 김치가 조금이라도 쉴 것 같으면 바로 김치찌개를 해 먹는다. 그래서인지 김치찌개 자체에 대한 목마름이 있지는 않다. 하지만 어떤 곳도 그런 식으로 김치찌개를 끓여주지 않기 때문에 그 푹 퍼진 김치찌개가 그리울 때가 있다. 집에서 이리저리 다양한 방법으로 김치찌개를 끓여보지만 그 맛이 나오지 않는다.


그 맛이 과연 정확하기나 한 걸까. 과거는 항상 미화되기 마련이고 나도 나이를 먹어가며 점점 맛있는 음식들을 먹다 보니 추억의 음식을 다시 먹을 때 기억했던 그 맛이 아닌 경우가 많다. 그 김치찌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지금 먹어보면 그저 그런 맛이겠지. 자꾸만 그렇게 잃어버리는 것들이 계속 생겨난다. 다시 찾을 수 없는데, 정확하게 어떤 건지 이제 잘 모르는데 잃어버렸다는 사실만 정확히 기억이 난다. 그런 기억들이 차곡차곡 쌓여 어떤 지점에 다다르면 몸이 물밑으로 착 가라앉는다.


내가 정확히 어떤 것이 그리운지 모르게 된다. 내 젊음인지 그 옛날 그 맛인지 정겨운 노부부인지 이미 지나가버려 모든 게 명확하게 밝혀진 과거인지 모른채 점점 모든게 섞여간다. 미래에 대한 불명확함이 도드라질수록 확실히 정해져서 변하지 않는, 그리고 절대 되돌아갈 수 없는 과거들은 선명하게 나타나서 내 몸을 무겁게 만든다.


안 되겠다 싶어 주방에 간다. 냄비를 불에 올리고 기름을 둘러 뜨거워지면 잘게 자른 김치를 볶아준다. 어느 정도 볶은 다음 물을 붓고 끓인다. 고기 대신 참치캔을 하나 꺼낸다. 얼린 마늘과 대파도 꺼낸다. 끓는 냄비에 몽땅 넣어주고 김치국물 한국자를 추가하여 이십 분을 넘게 끓인다. 푹 익었을거라고 생각하고 냄비를 식탁으로 옮겨 밥과 같이 먹기 시작한다.


너무 맛이 없다. 역시 마트에서 사 온 김치로는 김치찌개 맛이 나지 않는다. 아니면 참치 때문일까? 더 이상 고향 집에서 김장을 하지 않는다. 보내온 김치를 다 못 먹어서 버린 기억이 죄책감이 되어 떠오른다. 아무리 노력해도 이제는 다시는 먹지 못한다. 김치도 김치찌개도 돌아오지 않는다. 내 몸도 수면 위로 떠오르지 못한다. 매일같이 가라앉는 것들 투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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