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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면아래 Mar 06. 2024

무관심과 관심사이, 토스트

100가지 요리, 100개의 마음. 예순네 번째

자고 일어났더니 베개가 흠뻑 젖어 있었다. 밤새 울었는지 눈이 퉁퉁 부어 떠지지가 않았다. 처음에는 잠에 취해 못 일어 나는 줄 알았는데 그냥 눈이 부어서 떠지지 않는 것이었다. 냉동실에 수저 두 개를 넣어 놓고 화장실에 가서 양치질을 했다. 거울에 비친 내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서둘러 세수까지 마치고 식탁으로 돌아온 나는 냉동실에서 꺼낸 수저 두 개로 눈을 지그시 눌러서 부기를 빼려고 시도했다. 수저 4개를 넣어 놓을걸 그랬나 생각하면서 수저통에 있는 수저와 젓가락들을 보자 화가 치밀어 올랐다. 벌떡 일어나서 수저통을 바닥에 던져버렸다. 와장창 소리와 함께 주변이 번쩍하고 깨어났다. 벌써 8시 반이었다.


옷을 갖추어 입고 집밖으로 나왔다. 팀장에게 지각임을 문자로 보냈지만 답은 없었다. 오지 않을 것만 같던 버스를 타고 사람이 조금 뜸해진 지하철을 타고 줄지어 환승통로를 이동하고 또 지하철을 타고 회사 앞 정류장에 내렸다.


매일 아침마다 손님들로 분비던 토스트 가게에는 아주머니만 혼자 앉아 핸드폰을 보고 있다. 시간을 보니 11시에 가까웠다. 들어가자마자 바로 점심 먹으러 나오기에는 눈치도 보이고 해서 토스트나 먹고 들어가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핸드폰엔 집중하고 계신 아주머니를 조용히 불렀지만 기척을 알아채지 못하신다. 조금씩 목소리를 높여보다가 너무 큰가 싶을 정도에 아주머니가 날 바라보더니 웃으면서 일어섰다.


아이고 손님이 온 줄 몰랐네. 왔으면 불러야지 하며 웃으셨다. 나도 웃음을 지으려고 입꼬리 근육을 위로 당겼는데 제대로 당겨졌는지 보이지 않으니 알 수가 없다. 토스트 가게는 정말 오랜만이다. 길거리 토스트를 한참 먹다가 프랜차이즈들이 생겨나며 길거리 토스트들이 많이 없어졌다. 최근엔 그 프랜차이즈도 인기가 시들해서인지 하나둘 사라지고 오히려 길거리 토스트가 인기가 더 많다.


"햄토스트 주세요"


너무 작게 얘기한 듯해서 다시 한번 얘기했다.


"햄토스트 주세요"


말이 끝나자마자 아주머니는 버터로 철판을 닦아내듯 문지르고 기포가 오르자 식빵 두 개를 굽기 시작했다. 그 옆으로 얇은 햄이 구워졌다. 야채가 들어간 계란도패티처럼 구워주실 줄 알았는데 이미 빈대떡처럼 구워진 계란패티들이 많이 남아 있어서 새로 구워주지는 않으셨다. 몇 분도 안 걸려 아주머니는 설탕이 잔뜩 뿌려진 토스트를 내게 건네어주었다.  


그동안 잠시 딴생각을 했는지 아주머니가 부르는 소리도 듣지 못하고 한참을 서있었었나 보다. 아주머니는 얼마나 오래 저 토스트를 들고 계셨을까.


허겁지겁 받아서 한입 베어물자 뜨거운 기름이 케첩과 같이 흘러 손등에 흘러내렸다. 뜨거워서 나도 모르게 앗 뜨거워 하고 소리를 질렀다. 손등 위로 쏟아진 뜨거움이 머리까지 몰려들었다. 갑자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토스트를 손에 들고 한참을 울었다. 아주머니는 어느 틈엔가 가게 밖으로 나와서 내 옆에 서있었다. 손에는 두루마리 휴지 한통을 들고 있었다.


"자 이제 손딱아요. 너무 뜨거웠죠. 미안해요"


안쓰럽게 날 바라보는 아주머니의 눈을 보자 눈물이 더 멈추지 않았다. 한참을 그렇게 울고 나서 두루마리 휴지를 받아 들고 흘러내린 눈물 콧물을 다 닦고서 다시 토스트를 먹었다. 아주머니는 어느새 자기 자리로 돌아가 무언가를 분주히 정리를 하고 있었다.


 토스트는 이제 식어있었지만 딱 먹기 좋았다. 아삭아삭한 설탕과 짭조름한 버터, 시큼한 케첩의 맛이 한꺼번에 올라왔다.  달고 짜고 시큼하고. 내 인생도 별다를 거 없는데 왜 이렇게 서러운 걸까. 그렇구나. 토스트에는 쓴맛이 없구나.


다 먹은 토스트봉지를 쓰레기통에 넣고 돌아서려는데 아주머니가 살짝 웃으시며 또 오세요라고 말했다. 이 정도의 관심과 이 정도의 무관심이 너무나 고마웠다. 고개 숙여 목례하고 서둘러 사무실로 올라왔다.


사무실에 들어가자 시끄럽던 공간이 순간 조용해졌다. 그리고 내가 자리에 앉자 다시 부산해졌다. 이 정도의 무관심에 또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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