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면아래 Nov 12. 2023

기억이 몽글몽글 만둣국

100가지 요리, 100개의 마음. 서른한 번째

약이 너무 많은 것 같아 아침약을 안 먹기로 한지 이틀이 지났다. 병원에서 그만 지어달라고 할 만 하지만 의사 선생님의 잔소리를 듣기 싫어 그냥 받아왔다.  아침약은 우울증, 협심증, 신경성위염 치료제이다. 신경성 위염은 없는 것 같은데 이건 왜 매번 지어주는 걸까? 협심증은 내가 가슴이 떨리면 진정이 안된다고 해서 넣어준 약 같다. 약을 끊어야겠다고 생각한 지는 꽤 되었다. 7년 정도 먹었고 이젠 먹어도 안 먹어도 낮에는 그 차이를 알기 어렵다. 기분의 변화를 예방해주지 못하는 것이다. 대신 한 달 전 여전부터 시작한 습관 기르기가 더 도움이 되는 듯하다.


오늘도 아침에 일어나서 돌돌이로 머리카락 청소를 하고 이불을 개고 아침에 사과를 먹었다. 한달 넘게 계속 하니 습관이 붙어 너무나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아침에 나가기 전까지 핸드폰을 안 보는 것도 습관이었는데 그 사람의 아침연락을 기다리느라 요즘은 핸드폰을 끼고 살고 있다. 연락이 없으면 무음인가, 방해금지모드인가 계속 확인을 한다. 그 사람은 연락이 올 때는 잘 오지만 연락 시간이 일정치 않다. 내가 먼저 보내보기도 했지만 답장의 시간은 제각각이어서 그냥 기다리기로 했다.


토요일이라 일찍 연락이 올 줄 알았는데 오전이 지나도록 답장이 없어 혼자 밥을 먹어야겠다고 생각하고 냉장고를 열어보았다. 계란 두 알. 다양한 치즈, 어제 먹던 밥 그리고 끝. 냉동실에는 치킨, 고기, 족발 등이 있었지만 딱히 점심에 먹고 싶은 게 없어 더 깊은 곳까지 뒤적거렸더니 냉동만두가 있었다. 만두는 한 봉지가 남아 있었다.


별다른 고민 없이 냄비에 물을 넣고 끓이기 시작했다. 선반에서 찾아낸 멸치가루로 육수를 내서 만둣국을 끓일 참이었다. 집에서 빚어 먹는 만두가 기억난다 만두를 안 빚은 지도 이십 년은 지난 것 같다. 겨울이면 온 가족이 모여 앉아 만두를 만들었다. 어머니는 밀가루를 반죽하고 아버지는 밀대로 반죽을 펴서 만두피를 만들었다. 커다란 양은그릇에 산더미 같이 만든 만두소를 옆에 놓고 만두를 만들기 시작하면 처음에는 재미있어서 수다를 떨곤 했는데 백단위가 넘어가면 다들 아무 말도 없이 만두만 빚게 된다. 그렇게 만들어진 수백 개의 만두는 찜으로 국으로 겨우내 먹었다. 김치가 들어간 만두로 국을 끓여서 처음에는 만두를 건져 먹고 만두가 한 개 정도 남으면 찬밥을 말아서 만두를 터트려서 같이 먹었는데 그 맛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맛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런 기억이 난다.


물이 끓기 시작해서 양파와 간 마늘 한 줌, 냉동 만두를 넣고 같이 끓였다. 몇 분을 끓여 만두피가 투명해졌을 때 국간장으로 간을 하고 파와 계란을 넣고 조금 더 끓여 냈다. 다 끓여낸 만둣국을 조금 큰 국그릇에 담아 식탁으로 갔다. 노랗게 풀린 계란과 파란 대파까지 있으니 정말 만둣국 같았다. 한 입 먹으니 조금 심심했다. 국간장을 조금 더 넣을 걸 그랬나 생각하고 있는데 갑자기 벨소리가 울렸다. 누가 올 사람이 없는데 하면서 현관모니터를 보니 그 사람이 서있었다. 깜짝 놀라서 문을 열어주었다. 너무 반가운 마음에 내 얼굴은 나도 모르게 미소 짓고 있었다. 하지만 그 사람은 놀란 얼굴로 날 바라보았다


"왜 계속 전화 안 받았어요? 걱정해서 와봤어요"


무슨 얘기예요? 방금 전까지도 계속 핸드폰 들고 있었는데. 제가 30분 전에도 연락했었잖아요 하고 이상하다 싶어 그 사람을 계속 바라보았다.


"지금 두시가 넘었었어요. 문자는 아침 10시에 보내셨고요"

 

너무 놀란 나는 집이 지저분해서 누군가를 들일 형편이 안됨에도 그 사람을 들어오게 했다. 그 사람은 별일 없으신 거죠라며 연신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며 신발을 벗고 거실로 들어왔다. 거실 시계는 두시 반이 넘어가고 있었다. 난 허겁지겁 핸드폰을 찾았는데 거실과 식탁 어디에도 핸드폰을 찾을 수 없었다. 가까스로 이불 위에 얌전히 놓여있는 핸드폰을 찾을 수 있었다. 10통이 넘는 부재중 전화가 찍혀 있었다. 무음도 진동도 아닌 벨소리로 세팅된 핸드폰을 몇 시간 동안 듣지 못했고 분명 식탁 위에서 문자를 보냈다고 생각했는데 이불 위에 있는 것도 이상했다. 너무 놀라 심장이 주저앉아버렸지만 가까스로 서 있을 수 있었다. 그 사람이 와서 놀란 건지 시간이 또 사라졌음에 놀란 건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어쨌거나 난 버티고 서있어야 했다.


"이런 핸드폰이 배터리가 없어서 껴져 있었네요. 죄송해요. 걱정하셨겠다. 근데 혹시 식사는 하셨어요?"


그 사람은 그제야 살짝 웃으면서 점심은 안 먹었는데 라면서 내가 먹고 있던 만둣국을 보면서 말끝을 흐렸다. 거기 앉아 계세요. 제가 금방 만들어 드릴게요. 나는 서둘러 만둣국을 다시 끓이기 시작했다. 내 만둣국은 차갑게 식어갔지만 혼자 먹는 따뜻한 만둣국보다는 맛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알수 없는 불안감이 천천히 떠오르고 있었다.


작가의 이전글 곤드레만드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