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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면아래 Nov 08. 2023

곤드레만드레

100가지 요리, 100개의 마음. 서른 번째

요즘 기분이 업되는 것 같다. 기분이 좋은 것과 업되는 것은 조금 다르다. 업되는 것은 자기 통제영역의 밖에 위치한다. 깊은 우울과 업됨이 반복되면 조울증을 위심해보는 것이 좋다. 지난 몇 년 동안은 기분이 가라앉기만 했지만 요즘은 기분이 업되는 경우도 많아 평균에 수렴하는 듯 보이지만 그 계곡의 깊이와 산의 높이차가 어마어마해서 감당하기가 힘들어졌다. 특히나 그 사람과 만날 약속을 했을 때는 기분이 너무 높은 산으로 올라가 버린다. 하지만 정작 만났을 때는 조금씩 내려오고 있는 경우가 많다. 젊을 때처럼 마구 불타오르지는 않을 줄 알았지만 생각보다 덤덤한 만남에 갸우뚱해지기도 한다. 만나서 가는 곳들도 트렌디함과는 조금 거리가 있어 어쩐지 으슥한 곳을 찾아다니는 느낌이랄까. 물론 그게 우리 나이대의 트랜드이긴 했지만.

  

젊은 사람들에게 핫 한 가게가 있듯이 어느 정도 나이 든 사람들에게 소구 되는 가게가 있다. 시외곽 쪽에 위치하고 오래된 주택이나 한옥 건물 같은 형태로 지어진 식당들이 있는데 이른바 가든형 식당이라고 한다. 시외곽에 있어 대중교통으로 가긴 어렵지만 주차장이 넓어 차로 가기 좋은 곳이다. SNS에서 맛집으로 소개될 만한 집들은 아니지만 사람에서 사람으로 이야기되어 손님들이 모이는 그런 곳 들이다. 어렸을 때 집에 차가 생긴 후로 주말이면 아버지가 모는 차를 타고 시외곽으로 나가서 커다란 주차장이 있는 갈빗집이나 장어구이집등을 가곤 했다. 커다란 주차장, 커다란 식당 내부, 수많은 일하는 사람들. 서울로 올라와 차도 없이 혼자 살게 되면서 당연히 갈 수가 없었다. 차가 생긴 후에도 인터넷으로 맛집들을 찾아다녔기에 그곳들은 차차 기억에서 잊혀 갔다.


어제는 시화를 거쳐 대부도 끝으로 외근을 갈 일이 있었다. 외근이라고 해도 워낙 먼 곳이기에 당일치기 여행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 사람과 같이 나가는 첫 외근이라 기대를 했지만 어찌어찌 이야기를 하다 보니 각자 자기차를 타고 가서 목적지에서 만나기로 했다. 우리 집에 들러서 태우고 가길 원한 건가 싶어 스스로가 부끄러워졌다.


그 사람이 칼국수를 먹고 싶다고 해서 내가 유명한 가게 하나를 찾았는데 하필이면 그날이 쉬는 날이었다. 그는 자기가 다른 곳을 찾았다고 그곳으로 가자고 했다. 섬안 쪽으로, 작은 길을 따라 한 참을 들어가서야 그 가게를 만날 수 있었다. 전형적인 가든 스타일의 식당이었다. 수십 년은 되어 보이는 식당 앞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들어갔다. 메뉴판을 보는데 그곳은 곤드레밥 전문점이었다. 곤드레밥, 곤드레정식 등등. 그는 메뉴판을 보더니 바지락 칼국수를 먹자고 했다. 그런 메뉴가 있나 해서 보니 한쪽 구석에 작게 바지락 칼국수라고 쓰여있었다. 아마도 바지락칼국수로 검색을 이 집을 찾은 것 같았다. 메뉴에 대해 군말하는 성격은 아니지만 그날은 바지락은 아니라고, 여기는 곤드레집이어서 곤드레밥을 시켜야 한다고 강하게 이야기했다. 결국 곤드레 정식을 시켰다. 잠시 후 밑반찬들이 쫙 깔리기 시작했다. 그런 집들이 그렇듯이 별의별 반찬들이 다 나온다. 맛있는 것도 있고 맛없는 것도 있고 그렇다. 대망의 곤드레 밥이 토기로 보이는 큰 사발에 곤드레가 잔뜩 들어간 채로 나왔다. 양념용 간장을 떠서 밥 위에 슥슥 비비고 있는데 그는 내가 하는 것만 쳐다 보는 것이었다.


"간장에 비벼서 먹으면 돼요"

 

곤드레밥을 먹어본 기억이 없다고 한다. 괜히 곤드레밥을 시켰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바지락 칼국수도 나쁘지 않았을 텐데. 하지만 이미 나온 걸 어찌할까. 모른 척하고 먹기 시작했다. 부드럽고 고소한 곤드레가 들어간 밥에 짭조름한 간장이 합쳐지지니 술술 밥이 넘어갔다. 얼마만엔 먹는 곤드레밥인지. 한참을 먹다 그를 쳐다보니 이미 다 먹고 핸드폰을 하고 있었다. 맛이 어땠냐고 하니 먹을 만하다고 했다. 맛이 없다는 뜻이다. 주변을 보니 내 또래의 아주머니들 몇 명, 나보다 나이가 있으신 어르신 몇 분 정도가 테이블에 앉아서 식사를 하고 있었다. 가게도 낡았고 사람도 낡았다. 주인도 종업원도 젋지 않다. 가게 안은 깨끗하고 음식도 맛은 있으나 가게 안에 생기가 없다.


젊은 사람이 없는 곳은 이상하게 생기가 떨어진다. 나이 많은 사람들 중에서도 생기 있고 즐겁고 힘찬 사람들도 많겠지만 대부분은 이렇게 꺼져가는 불꽃처럼 생기를 잃고 사그라진다. 시나브로 흘러가서 자기만 모르고 꺼질 때가 돼서야 지나온 세월이 영원같이 길었음을 깨닫게 된다. 아마 이런 곳은 계속 오는 손님들이 하나둘씩 나이가 들어 오지 못하게 되면 자연스레 문을 닫을 것니다. 배가 부르게 먹고 나와서 가게를 다시 보니 오래된 가게지만 최근에 도색을 한 듯 싶었다. 그래도 나이 듦을 감출 수가 없었다. 무엇으로도 감춰지지 않는 나이 듦이 나는 너무도 싫다. 이제 밖에서는 안 써도 되는 마스크를 다시 고쳐 썼다. 그와 잠시 서서 짤막하게 이야기를 나눈 뒤 각자 차에 올라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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