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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면아래 Nov 05. 2023

단단한 마음의 계란

100개의 요리, 100가지 마음. 스물아홉 번째

어떤 것은 사라져 영원히 돌아오지 않고 어떤 것은 껍데기만 바꾼채 돌아오기도 하고 또 어떤 것은 같아보이지만 전혀 다른 것으로 돌아오기도 한다. 음식들도 유행주기가 있는 듯하여 어렸을 때 먹던 음식들이 새로운 이야기를 가지고 다시 나타나서 반가울 때가 있다. 물론 대부분 이쁘장하지만 엄청나게 비싸져서 돌아온다.


오늘 사무실에 출근하는데 간식 테이블에 계란 3판이 쌓여있었다. 보통 과자나 사탕 같은 것들이 있었는데 오늘은 계란 3판이 중앙에 떡하니 놓여 있어 눈길이 안갈 수가 없었다. 사무실에 제일 일찍 출근하는 경우가 많은데 오늘도 역시 아무도 없어 물어볼 사람도 없었다. 있다고 물어는 봤을까 싶지만. 계란 한개를 들어 한참을 들여다 보다가 삶은 계란 아니면 맥반석 계란일 거라고 생각했다. 생계란을 먹으려면 아무래도 근처에 후라이팬과 가스버너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한참을 자리에서 고민하다 탁하고 책상에 쳐서 깨보았다. 갈색 속살이 드러났다. 맥반석 계란이다. 나는 삶은 계란보다는 맥반석 계란을 좋아한다. 맥반석 계란이 더 고소하고 쫀득쫀득하다. 사이다나 콜라랑 먹으면 제 맛이다.


나는 맥반석 계란을 기차에서 처음 먹어봤다. 어렸을때 기차여행하면 삶은 계란과 사이다가 필수였다. 기차여행을 참 좋아했는데 나이들고보니 국내 출장을 위해서만 기차를 타고 있었다. 남들을 위해 나의 시간들을 채워가고 있던 그날도 지방 출장때문에 기차를 탔었다. 배도 출출해서 간식차가 오자마자 물건을 찾아보았다. 계란 두개가 플라스틱 케이스에 담겨 있는 걸 보고 바로 콜라와 같이 구입했다. 당연히 삶은 계란일거라 생각했다. 탁하고 깨서 보니 속이 갈색이라 순간 상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유통기간을 보려고 포장지를 보니 구운 계란이라고 써있었다. 아 이게 그거구나. 사람들이 사우나에 갔던 얘기를 하면 항상 맥반석 계란 얘기를 했다. 구운 계란인데 식혜와 먹으면 참 맛있다고. 어릴적 아무도 데리고 가주지 않아 대중목욕탕에도 가본 적이 없는 나는 사우나도 한번도 가본적이 없다.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내 속살을 보인다는게 왠지 거부감이 있었다. 다같이 사우나에 갈 때에도 굳건히 야근을 하며 사무실을 지켰고 그래서 더 왕따가 되었다.


결국 오랜 세월이 지나 기차안에서야 처음으로 맥반석 계란을 보게 되었다. 다들 사우나에 모여서 이걸 같이 까먹었었구나. 까먹으면서 조잘조잘 얼마나 재미있었을까. 혼자서 기차안에서 까먹는 맥반석 계란도 맛은 좋았다. 퍽퍽할 때 같이 먹는 콜라는 그 맛이 다른 어떤 때 보다 좋았다. 하지만 이후에도 난 다른 곳에서는 맥반석 계란을 사먹지 않았고 기차안에서도 더이상 팔지 않게 되면서 그 계란을 다시 잊었다.


오랫만에 보는 맥반석 계란이었다. 예상하지 못한 곳에 예상하지 못한 물건. 깨어진 껍질 사이로 보이는 갈색표면에 윤기가 돌았다. 한입 먹으니 쫄깃한 식감이 참 좋다.


계란을 깨기전까지는 날달걀인지, 삶은 계란인지, 구운계란인지 모른다는 사실이 좋다.  계란인지는 알겠지만 어떤 상태인지 모르듯이 누군가가 날 바라 볼때도 내 속을 알 수 없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결국 껍질이 깨져 보여졌을 때 날계란처럼 터져버리지 않았으면, 맥반석 계란처럼 단단하고 윤기있게 버티어 내었으면 좋겠다.


콜라가 없어 믹스커피와 먹었는데 의외로 잘 어울렸다. 달달하고 고소하다. 아직까지 사무실에 아무도 없음을 확인하고 여유롭게 맥반석 계란을 한개 더 가져온다. 내 껍질 속은 맥반석 계란이라고 중얼거리며 두번째 맥반석 계란을 책상에 내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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