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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면아래 Nov 15. 2023

모멸감의 새우 초밥

100개의 요리, 100가지 마음. 서른두 번째

"초밥 어때요?"


막 출근 했는데 문자가 왔다. 저녁에 먹자는 건지 점심에 다 같이 가서 먹자는 건지 모르겠지만 내 쪽을 바라보지 않은 걸 보니 저녁에 따로 초밥을 먹자는 이야기 같다. 점심에 먹을 것 같았으면 떠들썩하게 이야기를 하지 않았을까. 난 그런 떠들썩함이 좋지만 나와 만나면서 시작된 비밀은 그 사람을 침묵시켰다. 좋다고, 초밥 좋아한다고 답변을 보냈다


내가 초밥을 좋아하나? 아마 아닐 것이다. 밥 위에 날 생선을 얹었다고 밖에 할 수없어 그렇게 좋아하진 않았지만 회사나 사람들과의 만남자리에서 자주 먹게 되어 익숙해졌다. 아마도 보기에 정갈하고 먹고 나서도 화장이나 치아사이에 끼는 무언가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음식이라 불편한 사람들과도 먹기 편해 선호되는 것 같다. 한국에서는 비싼 초밥을 먹어본 적이 없어서인지 다 고만고만하다. 하지만 정말 기억되는 초밥이 있다.


10여 년 전 일본 오사카를 여행 갔을 때였다. 사람들이 붐비는 곳을 싫어하는 나는 항상 골목에 있는 조용한 식당들을 찾아다녔다. 오사카 하면 꼭 가봐야 할 베스트 10 리스트 등 엄청남 식당추천들이 있지만 그런 곳은 한국사람들로 바글바글하고 대기 시간도 너무 길었다. 그래서 구글지도에서 가까운 음식점을 찾고 평점이 괜찮으면 들어가서 먹었다. 초밥 같은 걸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모처럼 일본에 왔는데 초밥은 먹어야 되지 않을까 해서 조금 신중히 현지인 맛집들을 찾았다. 별점을 보고 방문객도 많은지 확인해서 한 초밥집을 찾았다. 골목을 구불구불 들어가서 있는 집이라 사람이 별로 없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안에는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바 쪽에 자리 하나가 남아 있을 뿐이었다. 놀라긴 했지만 어차피 이방인인 내가 뭐가 문제일까 싶어 바 테이블에 앉았다. 일본어로 인사를 하고 일본어 메뉴판을 주었는 하나도 알아볼 수가 없었다. 영어 메뉴판이 있냐고 물었지만 당황한 주방장의 어색한 미소만 돌아왔다. 결국 난 가격을 보고 가장 싼 것부터 시키기 시작했다. 계란초밥을 시작으로 뭔지 모를 흰 살 생선 초밥 몇개를 주문했을 뿐인데 벌써 몇만 원이나 되어 일단 먹기를 멈추었다.


우동 같은 게 있으면 그런 걸로 배를  채우려고 메뉴를 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내 앞에 초밥하나가 놓였다. 난 시키지 않았다고 손사래를 치니 주방장이 내 옆으로 두 번째 자리에 앉은 나이 든 신사분을 가르쳤다. 그 신사는 나를 보고 영어로 자기가 사는 거니 개의치 말고 먹으라고 했다. 나는 당연히 괜찮다고 했지만 자신이 한국인 친구가 있는데 날 보니 그 친구가 생각나서 시키는 것이며 초밥이 두 개씩 만들어지는 데 자긴 한 개만 먹을 거라서 내게 주고 싶어 졌다는 것이었다. 난 몇 번을 사양하다가 결국 그 초밥을 먹게 되었다. 그런데 지금까지 먹었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맛이었다. 역시 비싼 거구나 사양했어야 하는데 하는 생각과 내 앞에 놓이는 초밥을 더 먹어보고 싶다는 욕망이 서로를 비난하며 싸워댔지만 결국 내 손은 접시로 가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먹고 있는데 내 옆자리 손님이 나가게 되고 그 신사와 나 사이에는 어색한 공기만 흐르게 되었다. 갑자기 그 신사는 자기의 연인이 한국에 있다고 했다. 딱 내 나이또래이며 한국에 갈 때마다 만나지만 일본에 있어도 보고 싶다고 했다. 그 신사의 나이로 보아 내 나이의 연인이라면 부부는 아닐 것 같았다. 예전에는 많은 일본 사람이 한국에 현지 연인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었는데 이게 그런 경우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이상하게 내가 그 대상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면서 한없이 초라해지고 조금은 화가 났다. 갑자기 생새우 초밥이 나와 그 신사의 앞자리에 놓였다. 새우는 방금 손질을 했는지 초밥 위에서 연신 꼬리를 흔들고 있었다. 30여초간 흔들리던 그 꼬리가 멈추었을때 마음속에 무언가가 툭하고 떨어졌다. 이건 무서워서 못 먹겠다고, 식사 너무 감사했다고 인사하고 서둘러 그 식당을 나왔다.


이후로 초밥을 먹을 때면, 특히나 생새우가 올라간 새우초밥을 먹을 때면 이상한 모멸감 같은 것이 느껴졌다. 저녁에 그 사람과 먹으러 간 초밥집에서도 새우초밥이 나왔다. 살아있지는 않았지만 싱싱해 보이는 그 초밥을 그 사람에게 넘겨주면서 난 새우초밥은 못 먹는다고 말했다. 그사람은 이거 맛있는 건데 하면서 진짜 안 먹을 거예요? 하면서 내 눈을 계속 바라보았다.


"새우초밥은 좀 무섭더라고요. 다른 것들이 먹을 게 많아서 괜찮아요"


난 정말은 초밥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언제쯤 말할 수 있을까. 그 손을 놓고 싶지 않은 마음에 숨기는 게 하나씩 더 늘어만 간다. 나의 마음은 한 치 앞이 안 보이는 안갯속으로 푹 가라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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