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면아래 Aug 27. 2023

쭈그러진 소시지 야채 볶음

100가지 요리, 100개의 마음. 일곱 번째

여러 가지 습관들을 반복하고 있지만 여전히 그럭저럭 성공하고 있는 것은 12시에 잠자리에 눕기, 이불 개기 정도이다. 밤에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고 혼자서 술도 먹지 않으니 12시에 잠자리에 눕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잠들지 못할 뿐이지 누워있는 건 쉽다. 심장이 동요하지 않게 최대한 조용히 아무 생각을 안 하려고 하지만 머릿속은 금방 포화상태가 되어 버린다. 그래서 요즘은 예전에 재미있게 보았던 TV프로그램을 잠자리 맡에 있는 아이패드에 틀어 놓는다. 유튜브, OTT 등으로 볼거리가 넘쳐나는 세상이지만 영상물을 잘 보지 않아 그 효용을 못 느꼈는데 잠이 안 올 때 조그만 소리로 틀어놓으면 마음이 진정이 되니 그 쓸모를 이제 알았달까? 


TV도 잘 보지 않아 뭘 봐야 할지 모르겠는데 OTT에는 몇십 년 전 예능들이 전부 있어서 예전에 재미있게 봤었던 것들을 그냥 틀어놓는다. 이미 너무 자주 봤기 때문에 이제는 놓치지 않고 보아야 한다는 의무가 없어진 그런 옛날 예능들 말이다. 


누군가는 빗소리를 들으면 잠이 잘 온다고 하는데 난 빗소리를 들으면 머릿속에 무수한 생각들이 떠오른다. 나에겐 바보상자가 제일 좋다. 아이패드로 이렇게 작게 바보상자를 만들어서 머리맡에 둘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지. 영상은 보지 않고 누워서 소리만 듣고 있다. 오늘은 더 잠이 오지 않는다. 회사에서 저녁모임이 있었고 맥주 한잔을 마셨는데 그게 계속 신경이 쓰여 가슴이 두근 거린다. 술은 이미 깨었는데 맥주 때문에 잠을 못 자는 것 아닌 가 하는 걱정 때문에 잠이 안 오다니 나는 정말 어처구니없는 인간이다. 


그런데 요즘은 OTT를 열 때마다 음주를 권하는 영상을 보곤 한다. 세상이 발전할수록 점점 더 술을 안마시계 될 것이라 생각했는데 오히려 술을 권하는 세상이 되어 가고 있다. 내 기준에는 아직 아기들로 보이는 이제 막 성인 된 아주 젊은 연예인들이 나와서 자신의 주량이 얼마나 큰지 자랑삼아 말하고 못 마시는 사람들은 부러워하는 리액션을 한다. 취중에서 하는 얘기를 진심으로 생각하며 그 자리가 진실의 장인 것처럼 행동한다. 슬쩍 지나가는 드라마에서도 술을 대놓고 마셔댄다. 슬프고 기쁘고 화내고 하는 모든 일에 술을 마셔댄다. 정말 아직도 그렇게 술을 마셔대는 것일까 아니면 방송 콘셉트가 그런 것일까?


나의 세대는 진짜 그러했다. 술을 많이 마시는 게 어른의 척도였고 술에 취해야 서로의 진심을 알 수 있다고 믿었던 세대. 나는 술을 마시지 않는다. 그래서 나의 세대에서 항상 동 떨어져 있었다. 다음날이면 거짓말처럼 리셋되는 술자리의 친밀감을, 술을 마시지 않는 나는 도대체 이해할 수 없었다. 오빠언니형 동생 하면서 집으로 갔다가 다음날이면 다시 박과장님, 김대리가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술문화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이 점점 더 퍼지기 시작했고 사회생활 한지 10년 정도 지났을 즈음에는 술을 못해도 회식자리에 가는 것이 그렇게 힘들지 않게 되었다. 20년 정도 지나니 이젠 술자리에 있는지 없는지도 잘 모르는 사람이 되었다. 더 이상 나는 술을 먹여 알아낼 것이 없는, 알아낸다고 해도 관심이 없는 사람이 된 것이다.

우리 세대에 술을 마시지 못한다는 것은 사회생활을 못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매일밤 어쩔 수 없이 술자리에 끌려가야 했다. 못 마신다고 욕을 먹긴 했어도 아예 안 마시는 게 났다. 하지만 술자리에 빠질 수는 없었다. 그 시절 많지 않은 예산으로는 간단한 저녁에 안주삼아 취하도록 마시고 저렴한  호프집으로 이차를 가곤 했다. 삼차는 몇몇 남자들끼리 가곤 했는데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 호프집 안주에 크게 기대를 하는 건 아니지만 그나마 먹을 만한 것이 몇 개 있었는데 그중에 하나가 소시지야채볶음이었다. 이미 1차에서 만취한 사람들은 안주가 무엇인지 크게 상관하지 않았기에 나는 메뉴를 꼼꼼히 살펴보고 다들 무관심할 때 소시지야채볶음을 시켰다. 


내용물도 실제 보이는 양에 비해 푸짐해 보이는지라 조금씩 계속 먹어도 티가 나지 않는다. 다들 먹을수록 배가 불러오는 맥주를 들이켤 때 나는 아주 몰래 잘 볶아진 비엔나소시지 하나를 잎에 넣고 오물거리면서 시간을 보냈다. 싸구려 소시지에 그저 그런 야채를 사용했을 뿐인 이 볶음 요리는 집에서 해 먹으면 그 맛이 잘 안 난다. 이제는 저녁식사에 코가 비뚤어질 정도로 술을 먹고 2차로 호프집에 가는 회식은 거의 없어졌다. 호프집이라 것 자체가 사라졌고 그 자리엔 레트로 풍의 맥주집들이 생겼는데 레트로는 레트로일 뿐 오리지널은 아니었다.


오랫동안 잊고 있었는데 오늘 점심을 먹으러 간 식당에서 반찬으로 소시지야채볶음이 나왔었다. 호프집에서 먹는 바로 그 맛이었다. 밀가루인지 고기인지 어묵인지 모를 것을 갈아넣은 비엔나소시지와 당근, 피망등을 기름에 넣고 볶다가 설탕, 케첩을 넣으면 된다는데 집에서는 왜 이 맛이 안 날까 모르겠다. 소시지지야채볶음을 먹으면 자동으로 예전 호프집이 생각난다.


예전 술자리를 같이했던 선배들과 동료들 중 지금까지 연락을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같은 업계에서 오래 일을 하다보니 가끔 예전 사람들을 만나곤 한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나를 기억조차 하지 못한다. 매일밤 술을 권하면서, 형동생하자던 그들은, 태어나서 처음 보는 사람처럼 나에게 명함을 주며 악수를 청한다. 기억나지 않는 것일까 기억나지 않는 척하는 것일까. 어차피 싸구려 소시지보다도 생명력이 없는 인연들이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 열심히도 어울리려 노력했는지 모르겠다. 


그런 깨달음에도 여전히 난 홀로 떨어질까 불안해하며 무리 사이에 기를 쓰고 앉아있다. 같이 밥 먹으면서 웃고 떠들고 있는 그 사람들은 소시지 야채볶음 보다 오래갈까? 전혀 아닐 것이다. 그런데도 나는 아등바등 떨어지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다.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해서 자기를 비하하고 주변부로 밀려날까 봐 전정 긍긍하는 날들이 너무 지겹다. 그 끝이 보이지 않는다. 


"이봐 소시지야채볶음만도 못한 인연이라고. 너무 애쓰지 말라고."


그렇게 말해봐야 쭈그러진 피망만도 못한 내 자존감은, 무슨 소리인지 알지도 못하는 이야기에 어색한 웃음만 만들고 있다. 아무도 보지 않는 나의 웃음은 계속 쭈그러져만 간다.



작가의 이전글 삼겹살정도의 거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