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면아래 Aug 25. 2023

삼겹살정도의 거리

 100가지 요리, 100개의 마음. 여섯 번째

사람들은 특정한 상황에서 이에 반응하는 쓸모없는 행동을 하곤 한다. 예를 들어 추운 날 바람이 불면 옷깃을 여미는 동작을 한다던가, 궁금한 게 생기면 눈알을 굴린다던가, 당황하면 주먹으로 입을 막고 기침을 한다던가 하는 것들 말이다.  그 행동으로 어떤 이익을 얻기 위해 일부러 하는 것이 아니라 본인이 인지하지 못하는 습관이나 버릇에 가깝다. 


나도 그런 게 참 많다. 그런 나쁜 버릇들 중에 최악은 상처가 두려워 거리를 두는 습관이다. 냉정하게 거리를 유지해서 균형 있는 인간관계를 유지하면 좋으련만 제 멋대로 마음을 주고 다가가고 상대방이 내게 마음을 열 것 같으면 지레 겁먹고 도망간다. 나는 그런 포기를 습관으로 가지고 있다. 포기할 때는 매우 이성적인 이유들이 들려온다. 마치 여우와 신포도와 같이 말이다. 내 머릿속에 있는 이성의 신 한 명이 지금 하는 일이 잘못되어 있으니 어서 그만두라고 지속적으로 명령을 내린다. 지나고 보면 전혀 이성적이지 않을뿐더러 마음이 원했던 것도 아닌, 그저 도망친 것뿐이다. 그런 상황을 인지할 때는 이미 먼 시간이 지나 수습이 불가능할 때가 많다. 아니 불가능하다고 생각은 하지만 되돌릴 수는 있었을 것이다. 그럴 수 있는 단단한 마음이 없었을 뿐. 


단단한 마음을 위해 매일 같이 작은 성공들을 만들어 마음속에 쌓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수없이 노력하고 수없이 실패하고 있다. 오늘은 아침에 습관을 기르기 위해 하는 일들 대부분 실패했지만 이불만큼은 깨끗하게 개고 나왔다. 지각을 하고 커피를 마시고 약을 먹지도 않았다. 최근 나의 유일은 성공은 아침에 이불 개기뿐이다. 머릿속에서 나의 이성의 신이, 혹은 변명의 신이 계속 말한다. 다시 시작하자고, 지금 하는 일을 당장 그만두라고, 이불 따위 100만 번을 개어도 아무 소용없으니 어서 집으로 돌아가 문을 걸어 잠그라고 외치고 있었다.  


순간 어디선가 삼겹살을 굽는 소리가 났다. 내가 모르는 사이에 다시 집으로 돌아온 게 아닌가 화들짝 놀라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나는 아직 회사에 있다. 회사에서 삼겹살을 구워 먹는 것은 몇십 년 전에나 가능했던 일이었을 텐데 하고 둘러보니 역시나 그런 사람은 없다. 갑작스럽게 비가 오기 시작해서 창문에 쏟아지는 빗소리를 내 이성의 신이 삼겹살 소리로 바꿔 들려주었다. 집에 가서 삼겹살이나 구워 먹으란 건가. 사무실 한가운데서 삼겹살 구워 먹던 옛날을 생각하니 희미하게 웃음이 떠올랐다. 요즘 나의 미소는 오직 과거로부터 온다.

삼겹살 싫어하는 한국 사람 있을까? 우리나라 사람들의 삼겹살 사랑은 진심인 것 같다. 하지만 난 삼겹살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어렸을 때 돼지고기는, 소고기 못 사 먹어서 먹는 저렴한 고기였다. 그런데 그것도 두세 달에 한번 먹으면 우리 집 잘 사나? 생각할 만큼 연중행사에 가까웠다. 삼겹살을 구워 먹을 때의 그 비릿한 냄새, 사방팔방 튀기는 기름, 고기보다 많아 보이는 비계덩어리, 먹고 난 뒤 미끌거리는 마룻바닥. 


정육점에서 살 때부터 많은 식구들이 여러 번 나눠먹기 위해 종이장처럼 얇게 썰어달라고 부탁하면 정육점아저씨는 손이 많이 간다고 투덜거렸다. 신문지에 싸인 고기를 받아오면 온 가족이 작은 불판에 둘러앉아 고기를 구워 먹었다. 여러 명이 작은 불판에서 고기를 기다리는 그 기억이, 올리자마자 익어버리는 종잇장처럼 얇은 냉동 삼겹살이, 내겐 아직까지 아름다운 추억이 되지 못하고 있다. 분명 돈이 생겼을 때 먹는 음식이었음에도 삼겹살은 나에겐 가난이란 말과 동급이었다. 


그렇지만 사회생활을 시작해서 처음 먹게 된 생삼겹살은 돼지고기도 정말 맛있는 거구나 하고 느끼게 해 주었다. 두툼하게 썰린 고기가 적당한 육즙을 포함하여 익어가고, 적당한 인원이 둘러앉아 여유 있게 먹는 삼겹살은, 바짝 탄 쥐포처럼 부스러지던 어렸을 적 삼겹살과는 차원이 달랐다. 그렇게 조금씩 삼겹살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 갔지만 여전히 스테이크 같은 것을 먹는 파인다이닝만 못하지 않냐는 생각에 회식 때는 레스토랑에 가자고 외쳐댔다. 하지만 술 한잔하고 으쌰으쌰 해야 직성이 풀리는 선배들은 기어이 삼겹살집으로 갔었다.

 

뒤에서 소곤소곤하는 소리들이 이제야 들려오기 시작했다. 사람들끼리 하는 얘기를 들어보니 오늘은 우리 팀 회식인 것 같다. 멍하니 정신을 놓고 있던 사이 비 오는 소리와 회식 얘기가 합쳐져서 삼겹살 소리처럼 들렸었나 보다.

 

귀만 쫑긋 세우고 오늘은 어디로 갈 건지 들어보고 있는데 젊은 직원들이 냉동삼겹살에 대해 얘기해서 살짝 충격을 받았다. 어쩐지 요즘 들어 냉동삼겹살이라고 간판을 내건 7~80년대 풍 가게들에 젊은 사람들이 꽉 차 있어서 의아하게 생각하던 중이었다. 냉삼 특유의 맛이 유행이라고 한다. 냉삼특유의 맛이라니 그건 비린내가 아니던가? 구우면 바삭바삭한 맛도 일품이지만 오래된 가게(노포)라 불리는 낡은 디자인의 고깃 가게들이 마음을 끌어당긴다고 했다. 나에겐 아직도 불편한 일상인, 드럼통으로 만든 식탁과 플라스틱 의자, 알루미늄포일을 얻은 불판, 환기도 안 되는 그런 식당이 이제 매력적인 장소가 되는 시대가 되었다니 너무 놀랐다


냉삼을 먹고 볶음밥까지 볶아먹어야 제맛이라고 얘기하는 동료들에게 파인다이닝레스토랑에서의 회식을 얘기하고 싶었지만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리고 결국 냄새나고 좁은 식당에서 냉동삼겹살을 먹게 되었다. 사람들 어깨가 닿을 정도로 부대끼며 술잔을 기울이면 그게 사람 사는 맛이라고 하지만 언제까지 그런 게 사람 사는 맛일까. 세상은 바뀌고 더 좋아질 거라 생각했지만 어떤 부분은 어처구니없이 과거로 다시 돌아가곤 한다. 힘들여서 계단을 올라갔는데 마지막 계단에서 발을 헛디뎌 한참을 굴러 떨어진 느낌이랄까. 다시 원점까지 떨어지진 않지만 충분히 괴로울 만큼 떨어진다. 드럼통에 붙은 원형 테이블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그 노포는 내가 힘겹게 올라왔던 계단의 아래 어디쯤에서 보았던 것이다.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난 아직도 사람들과의 거리를 조정하는 일이 어렵다. 스스로 거리 조정이 잘 안 되어 어떤 때는 상처받고 어떤 때는 차갑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렇지만 남이 정해주는 적당한 거리는 편하다. 회사 동료와 같은 일적인 관계에서의 거리라던가, 단골이 아닌 커피숍의 주인과의 거리, 매일 직원이 바뀌는 식당직원과의 거리같이 더 이상 가까워지지 않는 거리들은 날 안심시킨다. 심리적인 거리뿐 아니라 물리적인 거리도 마찬가지여서 신식 레스토랑의 널찍한 테이블이나 의자간격이라던지, 코로나로 인해 한 좌석 건너 앉게 된 관람석의 자리 같은 적당한 거리가 나와 다른 사람 사이에 있으면 한없이 편해진다. 그래서 자주 가는 식당도 그런 기준에 의해 좋고 싫음이 정해지기도 한다. 남이 정해준 거리가 내게 잘 맞으면 그곳에 자주 가고 불편하면 잘 가지 않게 된다. 주로 거리가 가까울수록 불편하다. 주인이 친한 척 또 오셨냐고 반찬이라도 더 주면 다시는 그 가게에 가지 않게 된다. 그래서 의자 사이가 조금 떨어져 있고 테이블 커서 앞사람과 닿을 필요가 없는 데다가 환기 잘되고 기름 튀지 않으며 종업원이 손님들과 격식을 차려 어느 정도 마음의 벽이 있는 식당이 좋다. 거기에 목소리 높여 부르지 않아도 눈만 돌리면 착착 알아주지만 아무 말도 걸지 않는 눈치 있는 식당이면 더 좋다.


바라는 건 많지 않지만 싫어하는 것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그래서 세상이 주는 것과 내가 원하는 것들이 점점 더 사이가 멀어지고 있다. 적당히 유지되었던,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거리뿐만 아니라 내가 아끼는 사람들과의 거리도 점점 멀어져서 아무리 외쳐도 닿지 않는 어느 동굴에서 나 혼자 살게 될 것이다. 아니 지금도 그 깊은 동굴 안에서 살고 있다. 외롭지 않다. 외롭지 않다. 난 외롭지 않다.


"안 일어나세요?"


눈을 감고 수없이 되뇌는 사이 테이블의 불판은 치워져 있었고 사람들은 하나둘씩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나고 있었다. 나는 감사하다는 웃음을 짓고 자리에서 일어나 그들을 따라 거리로 나왔다. 비는 어느덧 그치고 거리에는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무리 지어 다니고 있었다. 무리와 무리사이의 중간쯤 어딘가 혼자 있던 나는 그 거리에 안심하면서 걷고 또 걸었다.


작가의 이전글 무뚝뚝한 샌드위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