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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면아래 Jan 17. 2024

유리성의 병콜라

100가지 요리, 100개의 마음. 쉰 번째

사람마다 유난히 집착하는 음식들이 있기 마련일 것이다. 집착은 음식의 맛일 수도, 제조방법일 수도, 담는 모양일 수도 있고 음식의 외적인 이야기일 수도 있다. 그 모든 집착들은 정작 남들이 보기에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성격이 예민하고 조급한 나는 집착이 많지만 강인한 성품은 아니기에 생각만 하고 정작 실행은 못 옮기는 경우가 많다.


라면은 반듯이 그릇에 담아서 먹어야 하지만 냄비째 준다고 해도 두말하지 않고 봉지라면으로 만들어줘도 반발하지 않는다. 햄버거는 눌러서 납작하게 만들면 질색하지만 높이가 너무 높은 햄버거라면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마파두부에 "마"가 없고 고춧가루만 있다고 해도 대놓고 뭐라 할 만한 성품이 아닌 것이다. 다만 속으로 싫어하고 곱씹을 뿐이다. 그리고 지속적으로 나의 집착에 맞는 음식을 찾아다닌다.


나의 이런 것 중에 최고봉은 병콜라이다. 난 병콜라를 사랑한다. 시원한 병을 손으로 잡을 때부터 기분이 좋다. 살짝 들어간 병의 모양 때문에 손에 착 감기고 차가운 음료의 느낌이 유리를 통해 손으로 전달되어 오면 심장이 두근 거린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입술에 닿은 유리의 그 촉감. 매끄럽고 시원하다. 어떤 키스가 그보다 매끄러울까. 그래서 병콜라를 찾아다니고 마침내 찾아내면 살수 있을 만큼 박스로 구매를 한다. 배달이 된다면 말이다. 몇 박스라도 상관이 없다. 병을 반납하면 병값을 돌려준다고 하지만 제대로 반납해 본 적이 없다.


깨끗이 씻어진 콜라병들이 창고에 쌓여있다. 예전과 달리 병콜라를 잘 구매하지 못하기 때문에(파는 곳이 별로 없다) 먹은 콜라의 빈병을 버리기가 아쉬워져 모아두는 것이디. 빈병이 있다고 병콜라가 생기는 것도 아닌데.


지난번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1.5리터 콜라 PT를 사가지고 집에 왔다. 내가 콜라를 좋아하는 것을 알고 그날따라 두통에 시달리는 날 위해 콜라와 피자를 사가지고 온 것이다. 난 플라스틱통의 콜라가 정말 싫다. 병콜라가 없으면 그런대로 먹는 수준 정도가 절대 아니다. 손으로 집을 때부터 푹 들어가는 그 말랑말랑함, 입을 대고 먹으면 뜨뜻 미지근한 느낌의 플라스틱을 경멸한다. 특히 1.5리터 이상의 플라스틱병이 갖는 그 뚱뚱함은 왜그리 나의 기분을 망가트리는지 모르겠다.  병콜라가 없는데 정말 먹고 싶으면 캔 콜라정도로는 가능하다. 캔 콜라를 사면 유리컵과 얼음을 준비해서 콜라를 따라서 마신다. 조금 따라서 마시고 얼음이 녹으면 얼음 녹은 물을 따라내고 다시 콜라를 따라먹는다. 하지만 PT병의 콜라는 그렇게 먹어도 맛이 없다. 손에 잡힐때부터 이미 기분이 상하고 만다. 무식하고 둔한 느낌이라니.


내가 조용히 피자를 먹고 있으니 그 사람이 왜 콜라를 안 먹냐고 물었다. 그러고보니 컵도 꺼내놓지 않았다. 그 사람 것도 내것도. 나는 조용히 일어나서 투명한 유리컵 두 개에 얼음을 담아서 식탁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 사람에게 콜라를 따라 달라고 부탁했다. 내 손으로 플라스틱 통을 만지기 싫었다. 거품이 많이 나지 않도록 유리컵을 기울이고 얼음에 닿아 탄산이 다 날아가지 않게 해달라고 했다. 그 사람은 그게 무슨 얘기냐며 웃으며 콜라를 따라주었다.


콜라는 거품으로 가득 차고 탄산은 곧 빠져버렸다. 신중하지 않으면 콜라의 탄산은 날아간다. 배려의 문제가 아니라 예민함의 문제이다. 그 사람에게 그런 정도까지 기대할 수는 없다. 그런 사람으로 태어난 것이 아니니까. 하지만 내 예민한 마음은 자꾸 빠져나간다. 유리성에 살고 있는 느낌이다. 차가운 바닥, 차가운 벽, 훤히 들여다 보이는 내부에서 몸을 숨기지 못하고 우리는 안절부절 못하고 있다. 아니 내가 그러고 있다. 유리성에 사는 것은 나뿐이다. 좋아한다. 병콜라도 그 사람도. 하지만 영원히 둘 다 좋아하지는 못할 것이다. 선택의 순간은 반드시 올 것인데 그때 난 어떤 것을 포기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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