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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면아래 Apr 03. 2024

치킨 나라, 하얀 속살

100가지 요리, 100개의 마음. 일흔두번 째

굳은 마음을 가지지 못할 때에는 부서지는 육체가 낫다.  


몸무게가 계속 줄고 있다. 주변 사람들에게 얘기하면 어떻게 그렇냐고 부러워한다. 나이가 들면 살이 찌는게 당연하다는 듯이 말한다. 살이 빠지면 근육도 같이 빠진다. 몸에 기운도 없어진다. 그리고 진짜로 뼈마디가 아파오기 시작한다. 뭔가 많이 부족하다는 뜻인 것 같다. 병원을 가봐야 할 것 같은데 그런 의지까지 생겨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이대로는 안되겠다는 생각은 계속 들었다.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은 건 맞지만 고통을 원하는 것은 아니다.


무언가를 먹어야 겠다고 생각했다. 자기전에 기름진 것을 먹으면 살이 찐다는 이야기를 수도 없이 들었다. 핸드폰을 열고 처음 써보는 앱을 깔고 이 늦은 밤 내게 올수 있는 음식들을 찾아보았다. 놀랍게도 안되는 음식이 없었다. 한밤중에 당연히 되었던 족발, 치킨등뿐아니라 한식, 양식, 일식 안되는 것이 없었다. 이런 놀라운 세계를 나만 모르고 살았구나 싶었다. 이것저것 찾아보다가 너무 많아서 결정을 할수 없었다. 더구나 가입을 위해서 많은 일이 필요해 보였다. 회사에서 점심시간에 엄청나게 많은 요청을 받고 눈부시게 빠르게 주문을 처리하던 젊은 직원들 생각에 더 초라해졌다.  


그때 냉장고에 옆에 붙어 있는 치킨집 전단지가 눈에 띄었다. 아마도 그사람이 붙여놓은 것일 것이다. 시간은 밤 11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내일은 아침에 회의가 있다고 해서 8시전에 회사에 도착해야 한다. 회사에 가기 싫었다. 필요도 없는 회의에 멍하니 앉아있다가 불쑥 나에게 떨어진 질문에 허둥대는 나의 모습은 매번 똑같이 반복되었다. 집중력도 순발력도 점점 떨어지고 있고 무엇보다 나를 위해 대신 이야기해줄 동료가 이젠 없었다. 누구도 날 위해 시간을 벌어주지 않는다. 머슥한 그 자리. 행여라도 나와 눈이 마주칠까봐 고개를 돌리고 있는 사람들.


전단지에 적힌 전화를 걸어 치킨 한마라리를 주문했다. 뼈없이 순살로, 양념없이 프라이드로. 오랫만에 귀기울여 내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었다. 네 음료수는 괜찮습니다. 오시면 현금으로 드릴께요. 감사합니다.


테이블에 조명을 켜고 내일 회의자료를 다시 읽어보았다. 자료가 마지막으로 저장된 것은 한달전이라고 정보에 나온다. 아마도 나에게 최신 자료를 공유하는 것을 잊은 것 같다. 배가 살살 아파왔다. 그때 초인종이 울렸다. 문밖을 보니 헬멧을 쓴 덩치 큰 남자가 서있었다. 잠시 고민을 하다가 문을 열었는데 바로 손을 뻗어 커다란 비닐봉지에 담긴 치킨을 내게 건네 주었다. 난 현금을 건내 주었고 영수증을 확인한 남자는 바로 돌아서 엘리베리터쪽으로 사라졌다.


치킨 냄새가 집안 가득퍼졌다. 기름 냄새. 포장을 뜯고 소금과 양념을 작은 종지에 담고 포크를 꺼내서 테이블에 앉았다. 한입 배어물자 고소한 맛이 입안에 퍼지면서 기분이 좋아졌다. 한개 두개 세개 계속 먹었다. 급기야 치킨의 반을 먹고 냉장고에서 콜라까지 꺼내서 한병을 거의 다 마셨다. 기분이 나아진 듯했다.


남은 치킨을 사각용기에 담아 냉장고에 넣었다. 접시와 포크를 설거지하고 양치질을 하고 자리에 누으니 어느새 새벽 한시가 되었다. 빨리 잠들어야 한다는 생각에 또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배가 살살 아파왔다.


결국 난 계속 화장실을 들락거리며 긴 밤을 보내야 했다. 어차피 잠도 오지 않을거라 크게 상관은 없었지만 아침이 되니 몸에 기운이 하나도 없었다. 물만 마셔도 배가 아파 화장실에 가야 했다. 한밤중에 불도 안켜고 난 침대와 화장실과 거실을 오락가락 했다. 어두운 거실 창문에 죽음의 사자같은 나의 그림자가 가끔 비추어졌다. 이제서야 될대로 되라라는 생각이 겨우 들었다. 이제서야 포기가 되었다. 잠못드는 밤따위 아무러면 어떨까. 내 자리 없는 회사 따윈 아무러면 어떨까. 지나간 사람따윈 아무러면 어떨까. 살아있다는 것 따윈 아무러면 어떨까. 고통은 모든 것을 잊게 만든다. 아무것도 중요할게 없다. 마음따위 아무러면 어떨까.


날이 밝아오자 나는 회사에 갈 준비를 했다. 머리속도 뱃속도 마음도 하얗게 비워져 날아갈 듯 가볍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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