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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면아래 Mar 31. 2024

요리인가, 두부

100가지 요리, 100개의 마음. 일흔한 번째


지금은 두부가 맛이 있다. 갓 만든 두부 그 자체도 좋고 부침개로 만든 두부에 간장을 뿌려 먹어도 좋고 찌개에 넣어 국물을 쭉 빨아들인 두부도 좋다. 순두부는 어떤가. 팔팔 끓인 칼칼한 국물에 들어 있는 순두부도 좋고 순두부를 그냥 간장에 곁들여도 좋다.


이렇게 맛이 있는 두부이건만 어릴 때에는 두부는 무슨 맛인지 모르겠는데, 먹기 싫은데, 항상 밥상에 올라오는 반찬 중에 하나였다. 고기가 있어야 할 찌개에 두부만 덜렁 들어있으면 서운하기 이를 데 없었다. 두부 전과 두부 무침 등등 싫어하는 요리도 많았지만 그중에 최악은 두부 김치였다. 두부(혹은 살짝 데쳐진)와 조금 시어진 김치나 김치볶음을 같이 내어주는 음식인데 어린 나이에는 이게 요리인가 싶었다. 그냥 두부에 김치잖아.


나에게 요리라 하면 재료를 다듬고 다양한 조리과정을 거쳐 음식을 만드는 일이다. 어떤 음식들은 요리라고 하면서도 요리 같지 않은 요리들이 있다. 예를 들어 회 같은 경우에도 생선을 썰어 놓기만 하는데 이걸 요리라고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있었다. 지금은 물고기 피 빼기, 생선 종류에 따른 회의 두께차이, 숙성의 정도에 따라 맛이 차이는 요리라는 것을 알고 있기는 하다. 물론 주방장이 하는 얘기를 듣고 그렇다는 것이지 내가 맛을 구별한다는 뜻은 아니다. 구운 감자, 조개구이 등등 아직도 많은 음식들이 요리보다는 조리된 재료에 가까운 느낌이다.


두부도 마찬가지였다. 하긴 조리를 하고 말고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고 사실 맛이 없는데 안 먹을 핑계가 필요했을 것이다. 지금은 두부를 정말 좋아한다.


강원도에 갔을 때였다. 친구가 강원도에서는 반드시 초당에 들려 두부를 먹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차운전을 싫어하는데 내차를 가지고 가야 했었고 - 물론 운전은 친구가 했다 - 더구나 추운 겨울이라 그다지 내키는 여행은 아니었는데 맛도 없는 두부까지 먹으러 가야 하는 것이었다. 설상가상으로 강원도에 도착하니 폭설이 내리고 있었다. 차는 길에서 계속 미끄러지고 온 세상이 하얗게 변해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친구는 운전하며 지도책도 찾아보며 열심히 길을 찾았지만 지금 우리가 어디 있는지 모르는데 어딜 갈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난 하염없이 내리는 눈에 이미 모든 것을 포기하고 조수석에 앉아 있었다.


결국 차를 길이라고 생각되는 곳에 세우고 우리가 어디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차에서 내렸다. 나는 시큰둥해져 있으나 친구는 여전히 열심이었다. 마침 큰 우산을 쓰고 지나가는 사람이 있었는데 친구는 그에게 다가가서 뭔가를 계속 물어보더니 웃음띈 얼굴로 의기양양하게 내게 다가왔다. 여기서 가까운 곳이니 걸어서 가도 된다고 한다. 이렇게 눈이 내리는데 어딜 가냐고 말했지만 그 자리에 있는다고 해서 나아질 것도 없었기에 결국 따라가기 시작했다. 발목까지 푹푹 빠지는 도로를 계속 걸어갔다. 신발은 눈에 젖었고 몸이 얼기 시작했다. 겨우 겨우 다리를 옮기고 있는데 갑자기 눈앞에 소나무 숲이 나왔다. 눈이 너무 많이 내리고 있어 우리가 어디 있는지 보이지 않았는데 친구는 계속 앞으로만 걷고 있었다. 소나무숲으로 들어가니 눈이 무릎까지 빠졌다. 이러다 죽겠다 싶었는데 친구는 포기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기분으로는 한 시간을 걸었던 것 같다. 드디어 소나무 사이로 가게 하나가 보였다. 눈이 너무 와서 어떤 가게인지 모습도 잘 보이지 않았지만 우리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


손님이 우리밖에 없었다. 친구는 여기가 원조 초당순두부집이 맞다고 먹어보면 알 거라고 했다. 추워서 덜덜 떨리는 손으로 겨우 메뉴판을 보고 음식을 주문했다. 주문한 순두부가 나왔는데 내가 상상한 것과는 너무 다른 모습이었다. 그릇에는 뭉쳐졌다 부서진 눈 같은 두부가 하얀색 물에 들어있었다. 한 입 먹억는데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았다. 간장을 넣어서 먹으라고 조그맣게 이야기하는 친구덕에 간장을 살짝 뿌려먹었지만 놀라운 맛은 아니었다. 그냥 조금 따듯한 두부 아닌가. 하지만 몸은 얼어 있었고 따듯한 국물은 천국의 온천처럼 느껴졌다. 한 그릇을 먹고 나니 덜덜 떨리던 손이 진정이 되었다. 친구와 한참을 아무 말 없이 그렇게 가게에 앉아 있었다. 같이 고생하면 마음을 열기 마련인데 나의 옹졸함은 내가 틀리지 않았음을 침묵으로 증명하려 들었다. 정말 이상한 것은 어떻게 다시 차에 가서 집에 돌아왔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빈정 어린 나의 짜증에 대꾸 없이 조용하던 친구의 모습, 격렬하게 온몸을 빨아들이던 하얀 세상과 하얀 순두부, 정말 힘들었다는 마음만 기억에 남았다.


신기한 건 그날 이후로 두부의 맛이 느껴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두부를 이용한 두루치기 같은 강렬한 음식뿐만 아니라 살짝 데친 두부에 김치를 곁들여 먹는 간단한 두부 김치까지 모든 두부가 맛있어졌다. 두부는 그냥 간단한 요리 재료가 아니라 그 자체로 요리같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두부가 맛있어짐에 따라 두부의 대명사인 강원도에 다시 가고 싶어졌다. 눈길에 헤매다 찾은 그곳이 어디인지도 모르고 그 친구는 이제 소원해져서 연락이 끊어진 지 오래였다. 인터넷으로 초당에 있는 원조 두부 집을 찾은 후  회사에 연차를 내고(주말엔 사람으로 분빌 것이니까) 그곳으로 다시 갔다.


세 시간가량 걸려 도착한 그곳은 두부 마을이라고 할 만했다. 모든 곳이 두부 식당이었다. 인터넷으로 찾은 원조 가게로 가서 차에서 내렸다. 주차장은 거의 만차였고 오후시간임에도 사람들이 많아 빨리 먹고 나가야겠다 싶은 마음만 들었다. 메뉴판을 받았는데 너무 다양한 메뉴가 있어서 살짝 공황상태에 빠져 들어갔다. 결국 제일 만만한 두부 백반을 시켜 먹었다. 따듯한 국물에 담겨 있는 뭉개진 순두부와 접시에 반듯하게 잘린 모두부가 찌개와 같이 나왔다. 순두부를 먹었는데 맛이 나쁘지 않았다. 모두부도 간장에 먹으니 고소하니 계속 먹게 되었다. 맛은 있지만 그 옛날 내가 먹었던 두부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사람들이 계속 들어오고 있어 혼자 자리만 크게 차지하고 있던 게 맘에 걸리던 나는 순식간에 음식들을 먹고 가게 밖으로 나왔다.


가게 오른편으로 조그마한 소나무 숲이 있었다. 숲이라고 할 것도 없고 몇 그루 있는 정도였다. 설마 저 나무 몇 그루에서 그렇게 헤맨 것은 아니겠지? 나무들 바로 옆에는 잘 정비된 도로가 있었고 그 근처에도 순두부집들이 많이 들어서 있었다. 우리가 헤매었던 곳은 어디였을까. 이곳은 헤매기에는 너무나 잘 정비된 곳이었다. 아마도 눈이, 하염없이 내렸던 눈과 추위에 얼어 조급해진 마음이, 추위보다 더 차가운 침묵이 눈의 미로가 되었던 것 같다.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아보면 내 기억보다 가벼운 것이 얼마나 많은지. 그런 것들을 털어내지 않고 무겁게 마음에 쌓아 결국 그 무게에 짓눌리기도 한다. 그날 돌아오면서 그 친구에게 연락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었지만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 연락하지 못하고 있다. 아마 한참 더 걸릴 것이다. 어쩌면 영영 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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