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가지 요리, 100개의 음식. 일흔아홉 번째
나는 항상 얘기해 왔다. 굳이 짜파게티를 먹을 필요가 있을까? 물론 돈이 없거나 시간이 없으면 집에서 짜파게티를 해먹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 같은 경우에는 형편이 된다면 짜장면을 먹지 짜파게티를 먹지 않았다. 짜파게티는 그저 짜장면을 못 먹어서 대신 먹는 그 어떤 것일 뿐이다.
예전에 만났던 그 사람은 짜파게티를 정말 좋아했다. 짜파게티와 짜장면은 전혀 다른 요리 라고 했다. 그래서 내가 짜파게티를 먹을 때 투덜대곤 하는 것을 이해를 못 했다.
"아니, 짜파게티와 짜장면은 완전히 다른 요리라고 스파게티와 라면이 다른 요리처럼 말이야"
그 말이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는 자주 짜파게티를 끓여 먹었다. 그리고 다양한 방법으로 난 맛을 내기 시작했다. 짜파게티를 먹는 재미보다는 만드는 것에 재미를 붙이고자 했다. 처음엔 봉지 매뉴얼에 적힌 대로 물을 넣고 끓인 다음 물을 따라낸 후 비벼 먹었지만 이후에는 물을 아예 반 정도만 넣어서 물을 따라 내지 않고 졸여서 짜파게티를 끓여 먹었다. 그랬더니 더 꾸덕꾸덕 하니 맛있어졌다. 어떤 날은 고춧가루를 잔뜩 뿌리기도 했고, 어떤 날은 계란프라이를 튀기듯이 만들어서 얻어주고 차돌박이라도 남는 날이면 차돌박이를 구워서 짜파게티 위에 올려 주기도 했다. 그 사람은 내가 이런 다양한 종류의 짜파게티 만드는 것을 좋아했다. 음식은 그 사람에게 내어주고 요리는 나를 위해서 했다.
가장 마지막으로는 양파를 짜파게티 소스에 같이 볶아서 짜장처럼 만들어서 짜파게티를 비벼 먹기까지 하였다. 그렇게까지 만들어서 먹어 보니 이젠 짜장면을 사 먹는 게 낫거나 짜장면을 만들어 먹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사람은 웃으며 말했다.
"짜파게티라니까 이건 짜장면이 아니라고"
그 사람의 낮은 목소리가 귀에 환청처럼 메아리친다. 그 사람하고는 왜 헤어졌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매우 좋은 사람이었던 것 같은데 아마도 나의 지나친 히스테리와, 불안정함으로 인하여 그 사람이 떠나갔을 것 같다. 어떤 것이 잘 기억이 날까. 모든 것이 희미해져 가는데. 하지만 나는 모든 이별의 이유를 나에게서 찾는다. 그런 버릇은 좋지 않다고 했는데. 차라리 내가 만든 짜파게티를 싫어해서 그 사람이 떠났다고 믿는 게 낫지 않았을까.
오늘 하루 종일 짜파게티 생각이 난 것은 찬장 서랍을 정리하다 유통 기간이 6개월 정도 지난 짜파게티 라면 한 개를 찾아서 그럴 것이다.
먹을까 말까 고민하였다. 하지만 6개월 정도밖에 안 된 라면인데 뭐가 큰 문제가 있을까 하여 먹었다. 난 음식에 탈이 잘 나는 편이다. 그래서 유통 기간이 조금이라도 지난 음식은 절대 먹지 않는다. 음식에 민감도가 높다고 해야 될까. 조금이라도 이상하면 몸이 반응했다. 토를 하거나 자주 화장실에 가야 했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더 기름지거나 조금이라도 더 맵거나 내 기준에 맞지 않으면 항상 탈이 나 보냈다. 그래서 유통 기간이 지난 기름기가 많은 음식은 절대 절대 먹지 않는다.
하지만 오늘은 집에 정말 먹을 게 없었다. 어이없게도 일요일엔 짜파게티 요리사라는 광고 노래만 내 머릿속에 계속 떠올랐다. 정말 싫어했던 광고였다. 아빠는 왜 일요일에만 요리를 하는가? 남자는 왜 일요일에 겨우 하루 짜파게티 끓이는 걸 대단하게 여겨야 했던 걸까?
그런 생각들을 하며 짜파게티를 끓이기 시작했다. 물은 300mL 정도만 넣고 물이 끓기 시작하면 라면을 넣고 4분 정도 더 끓인다 그러고 나서 라면수프 와 건더기 스푼 넣고 일분 정도 계속 볶아주듯 뒤집어주면 짜파게티가 완성된다. 물을 따라 내지 않고도 말이다.
맛은 특별히 달라진 게 없었다. 최근에 와서 난 짜장면과 짜파게티가 완전히 다른 맛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짜장면이 먹고 싶을 때가 있고 짜파게티가 먹고 싶을 때가 있다는 것을 겨우 알게 되었다. 그 사람에게 말해 주고 싶었다.
"이야 진짜 짜파게티는 다른 요리구나 다른 음식이었어. 당신 말이 맞아"
왜 그 사람이 있을 땐 그런 걸 알지 못했을까 그리고 왜 이런 것은 꼭 시간이 흘러 되돌릴 수 없는 때가 왔을 때야 알게 되는 걸까? 내가 건네야 되는 것은 요리가 담긴 접시가 아니라 그 사람에 대한 이해와 사랑이었다. 그 세월 동안 변치 않고 지독하게 이기적인 사람은 항상 나였다. 난 나만을 이해했고 내가 이해한 방식으로 사랑을 주기만 했다. 받을 줄을 몰랐다. 아무리 주어도 난 받지 못했다. 그로 인해 버림받고 상처받았다.
오늘은 그동안 모아둔 약을 먹고 잠을 자야겠다. 지치고 힘들다. 열린 문은 고통만 들어온다. 깨달음의 문을 닫고 다시 고요의 세계로 돌아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