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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면아래 Apr 28. 2024

나는 너의 짜파게티 요리사

100가지 요리, 100개의 음식. 일흔아홉 번째

나는 항상 얘기해 왔다. 굳이 짜파게티를 먹을 필요가 있을까? 물론 돈이 없거나 시간이 없으면 집에서 짜파게티를 해먹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 같은 경우에는 형편이 된다면 짜장면을 먹지 짜파게티를 먹지 않았다. 짜파게티는 그저 짜장면을 못 먹어서 대신 먹는 그 어떤 것일 뿐이다.


예전에 만났던 그 사람은 짜파게티를 정말 좋아했다. 짜파게티와 짜장면은 전혀 다른 요리 라고 했다. 그래서 내가 짜파게티를 먹을 때 투덜대곤 하는 것을 이해를 못 했다.


"아니, 짜파게티와 짜장면은 완전히 다른 요리라고 스파게티와 라면이 다른 요리처럼 말이야"


그 말이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는 자주 짜파게티를 끓여 먹었다. 그리고 다양한 방법으로 난 맛을 내기 시작했다. 짜파게티를 먹는 재미보다는 만드는 것에 재미를 붙이고자 했다. 처음엔 봉지 매뉴얼에 적힌 대로 물을 넣고 끓인 다음 물을 따라낸 후 비벼 먹었지만 이후에는 물을 아예 반 정도만 넣어서 물을 따라 내지 않고 졸여서 짜파게티를 끓여 먹었다. 그랬더니 더 꾸덕꾸덕 하니 맛있어졌다. 어떤 날은 고춧가루를 잔뜩 뿌리기도 했고, 어떤 날은 계란프라이를 튀기듯이 만들어서 얻어주고 차돌박이라도 남는 날이면 차돌박이를 구워서 짜파게티 위에 올려 주기도 했다. 그 사람은 내가 이런 다양한 종류의 짜파게티 만드는 것을 좋아했다. 음식은 그 사람에게 내어주고 요리는 나를 위해서 했다.


가장 마지막으로는 양파를 짜파게티 소스에 같이 볶아서 짜장처럼 만들어서 짜파게티를 비벼 먹기까지 하였다. 그렇게까지 만들어서 먹어 보니 이젠 짜장면을 사 먹는 게 낫거나 짜장면을 만들어 먹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사람은 웃으며 말했다.


"짜파게티라니까 이건 짜장면이 아니라고"


그 사람의 낮은 목소리가 귀에 환청처럼 메아리친다. 그 사람하고는 왜 헤어졌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매우 좋은 사람이었던 것 같은데 아마도 나의 지나친 히스테리와, 불안정함으로 인하여 그 사람이 떠나갔을 것 같다. 어떤 것이 잘 기억이 날까. 모든 것이 희미해져 가는데. 하지만 나는 모든 이별의 이유를 나에게서 찾는다. 그런 버릇은 좋지 않다고 했는데. 차라리 내가 만든 짜파게티를 싫어해서 그 사람이 떠났다고 믿는 게 낫지 않았을까.


오늘 하루 종일 짜파게티 생각이 난 것은 찬장 서랍을 정리하다 유통 기간이 6개월 정도 지난 짜파게티 라면 한 개를 찾아서 그럴 것이다.

 

먹을까 말까 고민하였다. 하지만 6개월 정도밖에 안 된 라면인데 뭐가 큰 문제가 있을까 하여 먹었다. 난 음식에 탈이 잘 나는 편이다. 그래서 유통 기간이 조금이라도 지난 음식은 절대 먹지 않는다. 음식에 민감도가 높다고 해야 될까. 조금이라도 이상하면 몸이 반응했다. 토를 하거나 자주 화장실에 가야 했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더 기름지거나 조금이라도 더 맵거나 내 기준에 맞지 않으면 항상 탈이 나 보냈다. 그래서 유통 기간이 지난 기름기가 많은 음식은 절대 절대 먹지 않는다.


하지만 오늘은 집에 정말 먹을 게 없었다. 어이없게도 일요일엔 짜파게티 요리사라는 광고 노래만 내 머릿속에 계속 떠올랐다. 정말 싫어했던 광고였다. 아빠는 왜 일요일에만 요리를 하는가? 남자는 왜 일요일에 겨우 하루 짜파게티 끓이는 걸 대단하게 여겨야 했던 걸까?


그런 생각들을 하며 짜파게티를 끓이기 시작했다. 물은 300mL 정도만 넣고 물이 끓기 시작하면 라면을 넣고 4분 정도 더 끓인다 그러고 나서 라면수프 와 건더기 스푼 넣고 일분 정도 계속 볶아주듯 뒤집어주면 짜파게티가 완성된다. 물을 따라 내지 않고도 말이다.


맛은 특별히 달라진 게 없었다. 최근에 와서 난 짜장면과 짜파게티가 완전히 다른 맛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짜장면이 먹고 싶을 때가 있고 짜파게티가 먹고 싶을 때가 있다는 것을 겨우 알게 되었다. 그 사람에게 말해 주고 싶었다.


"이야 진짜 짜파게티는 다른 요리구나 다른 음식이었어. 당신 말이 맞아"


왜 그 사람이 있을 땐 그런 걸 알지 못했을까 그리고 왜 이런 것은 꼭 시간이 흘러 되돌릴 수 없는 때가 왔을 때야 알게 되는 걸까? 내가 건네야 되는 것은 요리가 담긴 접시가 아니라 그 사람에 대한 이해와 사랑이었다. 그 세월 동안 변치 않고 지독하게 이기적인 사람은 항상 나였다.  난 나만을 이해했고 내가 이해한 방식으로 사랑을 주기만 했다. 받을 줄을 몰랐다. 아무리 주어도 난 받지 못했다. 그로 인해 버림받고 상처받았다.


오늘은 그동안 모아둔 약을 먹고 잠을 자야겠다. 지치고 힘들다. 열린 문은 고통만 들어온다. 깨달음의 문을 닫고 다시 고요의 세계로 돌아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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