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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면아래 May 01. 2024

죽 쑤는 날

100가지 요리, 100개의 마음. 여든 번째

요즘 기분이 어떠세요? 의사 선생님이 말했다. 그런 걸 생각할 정도로 정신이 유지되지 않고 있다. 기분이 좋으면 여기에 올까. 무슨 대답이 정답일까.


“보통이에요”


잠은 안 깨고 잘 주무세요? 보통 몇 시간 정도 주무세요? 약은 꼬박꼬박 드시고 계시죠? 약을 드문드문 드시면 아무 효과가 없어요. 어쩐지 내 얼굴에서 믿음의 신호가 나오지 않고 있나 보다. 약은 받아서 꼬박꼬박 모으고 있다. 그날그날의 봉지를 까서 약을 꺼내어 각각의 약통에 넣고 있다. 100개짜리 통들이 벌써 몇 개가 있다.


“잠이 들면 4시간 정도 자요. 그 이후에는 뒤척뒤척하는데 크게 피곤하진 않네요 “


아니요. 밤새 뒤척거리고 일어나면 죽을 듯이 피곤하다. 약을 먹으면 잠깐 잠이 들었다 깨기 때문에 밤새 깨어있게 돼서 오히려 약을 못 먹게 된 지 꽤 되었다. 그 사람이 떠난 후로 제대로 잠이든 날이 없다. 선생님 약이 이상해요.


특별한 일이나 신경 쓰이는 것은 없으세요? 모든 게 특별하고 신경이 쓰인다. 잠시라도 생각이 놔지질 않는다. 몇 년간 별다를 게 없는 질문들. 내가 나아지면 질문도 바뀌는 것일까. 오늘 상담도 마지막을 향해 가고 있다.


“글쎄요. 특별한 건 없어요. 지난번 어머니가 이가 안 좋으시다고 해서 걱정이네요”


그것뿐이면 얼마나 좋을까. 어머니는 틀니를 하시느라 몇 달째 고생 중이시다. 한없이 말라가고 계실 것인데 그 싫어하는 죽을 한 달 넘게 드시고 계신다.


약을 처방해서 나오는데 죽 전문점이 눈에 띄었다. 나도 죽을 좋아하지 않는다. 희멀걸게 쑤여진 죽. 어렸을 때는 도배할 때 쓰는 풀과 죽이 뭐가 다른 건지 구분이 안 갔다. 어머니가 흰쌀로 만든 죽은 간장을 조금씩 뿌려 먹으면 그냥저냥 죽지 않을 정도로 먹을만했다.


죽집으로 들어갔다. 죽 하나에 만원이 훌쩍 넘었다. 왜 들어왔을까? 좋아하지도 않는 것을. 바라보는 주인을 보고 있으니 안 시키기도 뭐해서 소고기 야채죽을 주문했다. 양이 많으니 소분해서 드릴까요 묻길래 고맙다고 했다.


잠시 후 소분되어 나왔는데도 양이 꽤 많았다. 김이 모락모락 나오는 뜨거운 죽을 가지고 나왔는데 어느새인지 여름이 되어 있었다. 뜨거운 거리, 뜨거운 비닐 봉지, 뜨거운 나의 뇌.


“엄마, 틀니는 어떻게 됐어? 응, 응, 그래, 그래도 잘 먹어야지. 알았어, 나는 내가 알아서 잘 먹어. 걱정 좀 하지마”


전화는 어머니가 항상 먼저 끊는다. 어머니는 한 달 넘게 죽을 드시고 있다. 틀니를 만드는데 두 달이 걸린다고 한다. 집에서 죽을 만들어서  그걸 마시듯이 드신다고 했다. 너무 지겹다고. 내가 사다 먹는 건 맛있다고 해도 끝내 집에서 만들어 드신다.


집에 와서 테이블 위에 사 온 죽과 반찬을 펼쳐 놓았다. 두 개로 소분되어있어도 양이 많아 작은 그릇을 가지고 와서 다시 소분해서 먹기 시작했다. 사다 먹는 죽은 먹을만하다. 의외로 맛이 있기도 하다. 어머니는 흰 죽이 지겨워져 김치나 고기도 갈아 넣으시면서 드신다고 했다.


어머니 생각은 그만하자. 어머니는 나보다 훨씬 더 삶에 대한 의지가 있다. 날카롭고 예민하고 불안하지만 억척스럽게 살아온 세월동안 그 의지만은 계속 굳건해져 갔다. 아마도 그건 우리 때문일 수도 있다. 힘든 시절이었다. 여전히 굶어 죽는 사람도 많았고 더구나 아이들은 많이 죽었다. 어머니가 없었으면 우리 3명도 어떻게 되었을지 모른다. 그건 어머니가 가장 잘 알고 계셨을 것이고 그런 상황에서 삶을 포기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이렇게 편하게 죽을 먹고 약을 먹고 돈을 벌고 집에 있음에도 난 소멸을 원한다. 얼마나 편안한 삶인가. 살 집이 있고 굶어 죽을 일도 얼어 죽을 일도 병에 걸려 죽을 일도 한참 멀어져서 살아간다. 그래서 더 그리운 건가. 죽음이 늘 곁에 있을 때는 무섭고 도망가기 바빴지만 지나고 보니 너만이 날 쉬게 해 줄 친구였음을 깨닫는 건가.


“엄마. 죽 사다 먹어봐. 정말 맛있는 거 많아. 아냐 별일 없어. 갑자기 죽 생각이 나서 다시 전화했지. 아니 진짜 별일 없어. 뭔 소리야. 끊어”


간파되고 말았다. 예민함과 불안정함은 유전받았고 삶에 대한 무기력은 어디서 왔는지 모르겠다. 다 식은 죽도 먹을만하네. 삶에 대한 의지는 어떻게 가지는 걸까. 약을 먹으면? 규칙적인 생활을 하면? 누군가를 사랑하면?


나는 항상 벼랑 끝에 서야 그게 느껴졌다. 그리곤 아슬아슬하게 다시 돌아왔다. 지금은 벼랑 끝으로 조금씩 걸어가고 있다. 이미 지나왔을지도 모르고. 아마 난 다시 돌아올 것이다. 대체로 그러했다. 오늘 처방받은 약을 먹었다. 아침에 먹는 약이지만 잠 못 드는 밤이니까 지금이 아침이라고 생각한들 무슨 상관이 있을까. 새벽에 깨면 삼십분이라도 잠들기위해 또 다른 약을 먹을 것이다. 선생님 저 요즘 약 잘 먹어요. 어제도 먹고 오늘도 먹고. 낮에도 밤에도 먹고. 계속 먹고 있어요.


“선생님, 저는 나아지고 있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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