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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이프북프로젝트 May 19. 2020

#1. 마음 속에 피어난 작은 불씨

독립출판 <서른이라 안 될 줄 알았어> 사전 연재

 나는 어릴 때부터 호기심이 많았다. 궁금한 것은 뭐든 몸으로 부딪치며 확인했고 새로운 것을 경험하길 좋아하는 아이였다. 대여섯 살 때 물의 깊이가 궁금하다며 자발적으로 연못에 들어가 빠지기도 했고, 동네 곳곳을 탐험하는 모험 놀이를 주도하는 말괄량이였다.


 그러다 학교를 다니고서부터 가지고 있는 에너지들은 책을 읽는 데 들어갔다. 책 속에서만큼은 새로운 세상을 맘껏 여행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양한 장르의 책에 빠졌지만 그 중에서도 나는 한비야님의 [걸어서 지구 세바퀴 반], 시인 조병준님의 여행에세이 [길에서 만나다]를 나의 바이블처럼 여겼다.

 

 세계를 누비는 그들을 동경하면서, 나도 언젠가 그렇게 살리라 희망했다. 내가 알고 있고, 살아온 이 작은 땅덩어리 말고, 이 넓디넓은 세계의 다양한 문화와 사람들과 교류하며 살고 싶었다.


 하지만 그 열망과는 다르게 나는 지극히 평범하게 살아갔다. 뻔한 직장인이 되기는 싫었지만, 왠지 해야 할 거 같아서 토익 공부를 하는 평범한 대학생이었고, 나만의 개성을 가진  길을 발견하지 못하고 남들처럼 취업이라는 보편적인 길을 택해 직장인이 되었다.

 

 나의 삶은 순탄했다. 그리 어렵지 않게 취직을 했고, 회사 생활도 즐거웠다. 적당한 스트레스와 섭섭하지 않은 보상이 있었다. 회사에 다니며 1년에 한두 번 해외여행을 가는 것으로 세계에 대한 호기심을 해소해나가며 잘 지내고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문제없이 잘 굴러가던 나의 일상이었지만, 내 가슴 속에서 누군가가 자꾸 물었다. ‘이게 진짜 네가 원하던 삶이야?’ 정확히 뭘 하고 싶은지는 모르겠지만 무언가 다른 것을 도전해보고 싶다는 열망이 점점 더 강해졌다. 하지만 이미 20대 후반을 달려가고 있던 나이, 뭔가 다시 시작하기엔 두려웠다.


 새로운 것을 배우면 조금 나아지지 않을까 싶어 취미로 할 무언가를 찾았다. 영어를 다시 공부해볼까? 아니야, 영어는 너무 흔하고 이제는 조금 지겨워. 우아한 발음의 프랑스어? 아니면 쓸모가 많을 것 같은 중국어? 사실 미래를 생각해서는 왠지 중국어를 하면 뭐라도 도움이 될 것 같았지만 고등학교 때 제 2 외국어로 선택했던 중국어는 내게 재미를 주지 못했다. 더 이상 일처럼 무언가를 배우고 싶지 않아.


 그러다 대학 시절 때 스페인어를 배우고 싶었었던 것이 떠올랐다. 대학교 때 필리핀에서 인턴으로 체류할 때 필리핀 생활 속에 많은 단어가 스페인어로 되어 있는 것을 보고 그 발음이 재밌어서 호기심이 생겼었다. 스페인어 배워볼까?


 대학 시절에 호기심에 가입만 해놓았었던 다음카페 <스페인어 무작정 따라 하기(스무따)>에 방문했다. 마침 다음 달부터 기초 강의가 열린다 길래 망설임 없이 신청했다. 그렇게 나는 나의 영원한 멘토, 사무엘 선생님(이형우 선생님)을 만나게 된다.


 사무엘 선생님은 스페인어를 전공하시고 중남미 여러 나라에서 오랜 기간 회사 생활을 하신 후 한국에 돌아와 전문통번역사로 활동하고 계신다. 언어에 조예가 깊으실 뿐 아니라 다방면에 지식이 풍부하고 지혜로운 분이다.


 재능기부처럼 한국에 스페인어를 알리기 위해 카페를 운영하시며 소수 정예 스터디를 운영하시는데 내가 운 좋게 등록하게 되었다. 

 우리 스터디원은 스페인어를 목적이 있어 배운다기 보다 나처럼 호기심에 배우러 온 직장인 언니들이었다. 우리는 매주 금요일 저녁, 홍대의 한 스터디 카페에 모여 간식을 함께 먹으며 편한 분위기 속에서 기초부터 차근차근 배우기 시작했다. 선생님의 열정적인 강의에도 우리는 매주 배운 내용을 까먹으며 사무엘 선생님을 힘들게 했지만, 수업시간마다 깔깔 웃으며 오랫 동안 스터디를 함께 했다. 


 내게 스페인어 수업은 일상의 단비와 같았다. 사무엘 선생님은 특유의 감칠맛 나는 설명과 묘사로 라틴 세계에 입문 시켜 주셨고 우리는 스페인어권의 문화와 사람들 이야기에 귀를 쫑긋하고 집중했다.


  내게는 스터디가 단순히 스페인어를 배우는 곳이 아니라, 스페인과 중남미에 대한 이야기를 간접체험하는 공간처럼 느껴졌다. 지구 반대편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야기와 생각들이 날 흥분하게 했다. 하지만 이때만 해도 내가 중남미를 정말 갈 수 있을 거라 생각은 하지 못했다. 여전히 그곳은 너무나 먼 곳이고, 낯선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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