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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음 Feb 17. 2020

생일학 개론(生日學 槪論)

자녀에게 생일에 대하여 어떻게 알려주어야 할까요?

여섯살이 된 아들의 다섯 번째 생일이 다가오고 있었다.



아내의 '생일학 개론'


아내와 아들의 첫 생일을 앞두고 이런 저런 고민들을 했던 2016년의 어느 날이 생각났다. 나는 그 때 아내에게서 ‘생일’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배울 수 있었다. 그녀의 ‘생일학 개론’, 그녀의 생각과 가치관은 ‘생일’을 그저 축하받는 날로 생각했던 나에게 일말의 반성을 안겨주는 것이었다.


나에게 '생일'이란: '축하를 받는 날'


그랬다. 나에게 생일은 그저 '축하를 받는 날'이었다. 나는 태어나 준 것만으로도 식구들에게 큰 기쁨을 주는 막둥이였다. 나는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형들과 누나에게 휩싸여 생일을 보냈다. 나의 어머니는 오십이 넘어서 딸 뻘 되는 다른 엄마들과 반모임을 하고, 아버지는 늙어서까지 막내를 부양하기 위해 일을 하셔야했다. 게다가 내 위의 형제, 자매들은 자기 방을 가져본 경험도 없이 단칸방에서, 자라나는 막둥이까지 케어하며 공부를 해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나의 탄생에 대해서 늘 감사했고, 나를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야말로 나는 우리 집안의 ‘복덩이’였다.


그런 연유로 해서 나는 자존감이 매우 높아졌다. 내가 생각하기에도 나의 ‘탄생’은 ‘그냥 탄생’이 아니었다. 인간의 계획으로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 창조주가 개입하여 일어난 것이었다. 태어나지 않았어도 이상하지 않을 존재가 ‘구태여’ 태어났다는 것은 그만큼 창조주의 강한 의지가 반영되었다는 뜻일 터이다. 나는 나 스스로가 창조주의 특별한 ‘선임’을 받은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때로는 창조주와 부모님께 대한 감사함으로 발현되기도 했고, 때로는 삶을 살아가야 할 동기가 되어주기도 했다. 안 태어나도 이상하지 않을 나를 ‘구태여’ 세상에 보내셨는데 내가 지금 허송세월을 보낸다면 보내신 분이 마음이 얼마나 아프겠는가 말이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내가 생각하는 감사는 창조주에게도, 식구들에게도 잘 표현되지 못했던 것 같다. 집안 분위기가 일단 그런 표현을 하는 것을 그리 즐겨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그런 걸 꼭 표현해야 아나’라는 가훈이라도 거실 어딘가에 걸려있는 것 같았다. 가족들은 ‘사랑한다’라던지 ‘낳아주셔서 감사합니다’ 같은 종류의 언어들을 구사하지 못했고, 생일도 그렇게 중요하게 여기지는 않았던 것 같다. 다만, 우리 집 막둥이인 내 생일만큼은 ‘케이크’에 촛불을 부는 의식을 꼭 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우리 집 막둥이인 내 생일만큼은 ‘케이크’에 촛불을 부는 예식을 꼭 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생일'에 대한 보편적 관점을 깬 아내의 한마디


생일은 그렇게 축하받는 날이었다. 거기까지였던 것 같다. 나의 생일이 존재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인고의 시간을 보내야 했는지 어렴풋이 알았지만 감사하다고 표현하지 못하고 살았다. 나는 생일에 대한 나의 생각이 보편적 정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들의 첫 생일을 앞두고 이런 저런 고민을 하던 차에 아내에게서 생일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배우게 된 것이다.

생일의 주인공은 태어난 사람이 아니라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분들이라고 생각해요


참신한 발상처럼 느껴지지만 맞는 말이었다. 물론 태어나기 위해서 태아도 기를 쓰고 나왔겠지만 그 아이 하나를 출생시키고, 성장시키기 위해서 그 부모님이 얼마나 많은 인고의 시간을 보냈겠는가. 아이를 키우면 키울수록, 부모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느끼곤 한다. 스무살 넘어 건강하게 장성한 사람들을 보면 이제는 그들의 부모님을 상상하는 습관이 생겼다. 그들이 그렇게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자란 것은 뒤에서 수없이 눈물 지으며 그들의 뒷모습을 지켜보아준 부모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자라날 때는 몰랐는데 아이를 키워보니 알겠다. 아이는 절대로 그냥 자라지 않는다. 세상은 성난 파도와 같이 젖먹이 때부터 아이들을 호시탐탐 노리지만 부모들은 관아를 지키는 파수꾼처럼 눈을 부릅뜨고 아이들을 지켜내곤 하는 것이다.

세상은 성난 파도와 같이 젖먹이 때부터 아이들을 호시탐탐 노리지만 부모들은 관아를 지키는 파수꾼처럼 눈을 부릅뜨고 아이들을 지켜내곤 하는 것이다.


아내의 새 관점은 우리 가족의 ‘생일’을 새롭게 정의하도록 인도했다. 우리가 고민하면서 세워둔 생일에 대한 원칙은 이러했다. 어디에 써 둔 원칙은 아니지만 오랜 토론을 통해서 마음에 같이 새긴 내용이다.


1. 우리의 생일은 우리를 이 땅에 존재하게 해 주신 분들에게 감사하는 날이다.

2. 생일을 맞은 사람에게 축하하는 것을 넘어 삶에 대한 감사함을 가족들에게 표현하고, 세상에 베푸는 날이 되었으면 좋겠다.

3. 아이들이 성장해서는 평일에 모이기 힘들 수 있으니 미국 법정 공휴일처럼 ‘2월 첫째주 토요일’과 같이 파티를 하는 날을 정하도록 하자.


이러한 근간 위에서 우리 첫 아이의 첫 생일 잔치는 가족들만을 모시고 이루어졌다. 녀석은 그 흔한 돌잡이를 하지 않았다. 아내는 아이의 미래를 기대하며 어른들의 소망을 담아 아이가 무엇을 잡는지 지켜보는 것도 행복한 일이겠지만 그보다 아이가 어릴 때부터 이웃의 손을 잡는 법을 알았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이야기했었다. 아이의 앞에는 돌잡이용 현금이나 판사봉, 청진기, 연필 대신 수많은 국기카드들이 놓여졌다. 아이는 그 카드들 중 '브라질'이라고 쓰여져 있는 국기카드를 집어들었다. 한 번도 직접 대면해본 일은 없지만 아내와 모 후원단체를 통해서 영원이는 지구 반대편에 해맑게 존재하고 있는 '스카를랏 누나'의 후원자가 되었다.

아이는 그 카드들 중 '브라질'이라고 쓰여져 있는 국기카드를 집어들었다.


그 후로 나는 내 생일을 맞으면 아내의 응원속에 '오글거림'을 이겨내며 부모님께 '낳아주시고 키워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곤 한다. 평소에 하던 표현이 아니기 때문에 아직도 눈을 질끈 감아야 다. 그런데 평소에 무뚝뚝하시던 어머니께서 그 표현을 받아서 더더욱 진한 감동을 표현해주셨다. 경험하면 할수록 아내의 말이 맞았다. 마음을 표현하면서 더욱 삶의 큰 행복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지켜보는 아이들에게는 자연스레 '생일'이 무엇인지에 대한 교육이 되었다.


아들의 다섯번째 생일날


그리고 벌써 시간이 흘러 녀석의 다섯 번째 생일 잔치가 다가왔다. 네 번째 생일과 다섯 번째 생일 사이에 녀석에게는 큰 변화가 있었는데 그 중 하나는 스스로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것은 이제 녀석이 주체적으로 감사의 마음을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우리가 아들의 첫 생일을 고민하며 세워두었던 '생일학 개론'을 실습할 수 있는 좋은 시기가 왔다.


생일 전 날, 아들이 잠들기 전, 나는 귓속말로 아들에게 귀띔했다.


영원아, 너 내일 생일인 거 알고 있지?
엄마 일어나기 전에 먼저 일어나야 한다. 알았지?


아이는 눈빛에 온갖 설렘을 담아 고개를 끄덕였다.


아들은 정말 긴장을 많이 하고 잤는지 아침 7시도 되기 전에 눈을 떠서 나를 깨웠다. 미리 준비해둔 색도화지에 아들은 함께 살고 있는 가들에게 편지를 썼다.


아들을 위한 선물과 이벤트도 시작하기 전에 눈물은 결국 엄마가 먼저 흘리고 말았다. 아내와 처제는 이미 영원이를 위해 많은 선물과 이벤트를 준비했었다. 축하도 넘치게 받게 해주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아들이 이제 많이 커서 낳아주신 엄마, 아빠에게 감사함을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더 감동이 되었다.

아들을 위한 선물과 이벤트도 시작하기 전에 눈물은 결국 엄마가 먼저 흘리고 말았다.


'낳아주셔서 감사하다'는 말


가족이 함 할 수 있다는 것.

어쩌면 너무나 당연해서 물과 공기처럼 그냥 지나칠 수도 있는 것이지만

나는 이것이 가장 큰 행복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생일은 축하를 넘어 감사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것을 아내를 통해 배웠다. 이제는 ‘그런 걸 꼭 표현해야 아나’가 아니라 감사함을 표현함을 통해서 삶의 의미를 다시금 확인하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   


아이가 태어난지 만5년, 이제 우리는 감사를 받는 부모가 되었다. 아내의 ‘생일학 개론’이 없었다면 평생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아이가 태어난지 만5년, 이제 우리는 감사를 받는 부모가 되었다. 아내의 ‘생일학 개론’이 없었다면 평생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래서 며칠째 기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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