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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음 Feb 29. 2020

자, 이제 '정직한 후보'를 보여줘

영화 '정직한 후보'에 대해 '정직'하게 말씀드리자면..

한국 정치판에서 오죽이나 ‘정직’이 실종되어 버렸으면 이런 영화가 나왔나 싶지만 정작 우리나라 원작은 아니다. 브라질 영화인 ‘정직한 후보’의 리메이크작인 이 영화는 ‘짐 캐리’ 주연의 ‘라이어라이어’와도 설정이 많이 비슷하다. 국회의원 손녀를 둔 김옥희 할머니(나문희 분)이 ‘제발 우리 손녀 거짓말 좀 안하게 해주세요’하고 빈 소원이 즉시 성취되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들을 다룬 코미디 영화이며, 개인적으로 ‘라미란’이라는 배우가 없었다면 어땠을까 싶을만큼 한 배우에 대한 의존도가 너무 높은 영화였다.

 ‘제발 우리 손녀 거짓말 좀 안하게 해주세요’하고 빈 소원이 즉시 성취되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들을 다룬 코미디 영화


※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으므로 유의하여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스토리'를 팔고 소비하는 선거판


영화 속 주인공은 ‘주상숙’(라미란 분) 후보는 어렵게 재산을 모아 사회에 환원한 김옥희 여사(나문희 분)의 손녀이다. 스토리 텔링이 무엇보다 중요한 선거판에 그녀는 ‘할머니의 가짜 죽음’을 팔아 등장한다. 사회에 헌신한 할머니의 정신을 이어받겠다는 이미지를 보다 정서적이며 극적으로 소구하기 위해 그녀는 아직 돌아가시지 않은 할머니를 ‘망자’로 둔갑시켜 많은 표를 얻은 것이다. 


거짓은 또 다른 거짓을 낳을 뿐


거짓말은 거짓말을 낳게 마련. 거짓말로 시작된 그녀의 정치 생활은 계속 거짓 위에 얹힐 수 밖에 없었다. ‘25평대 서민 아파트가 유일한 재산’이라는 거짓말에 책임지기 위해 아무도 보지 않는 깊은 밤에 남편과 몰래 으리으리한 진짜 집으로 옮겨가서 자는 가 하면, 돌아가시지 않은 할머니를 조용한 암자에 모셔놓고 비밀리에 찾아뵙는 모험을 하기도 한다. 

이러한 그녀에게 주어진 ‘정직’은 그동안 진실되지 못하게 살았던 자신의 삶과 속내를 ’폭로’하는 것으로 드러나게 된다. 


'라미란 배우' 덕분에 웃습니다


자서전 출판 기념회에 가서 석 달에 천만원을 주고 대필했다고 폭로하는가 하면 이미지 연출을 위해 썼던 가발을 벗어던지기도 하며, 대선에 대한 야망을 서슴 없이 드러내고, 매번 음식을 들고 찾아오는 시어머니에게 막말을 해서 KO시키기도 한다. 이런 에피소드들에서 라미란의 코믹 연기의 진가가 드러난다. 원래 태어났을 때부터 아줌마였을 것 같은 그녀의 자연스러운 입담과 능청스러움은 다소 억지스러운 상황마저도 웃게 만드는 마력이 있다. 

라미란의 코믹 연기의 진가가 드러난다


그래서 '정직한 후보'는 어디 있죠?


허나 마음 한 구석이 저려오는 것은 영화를 끝까지 살펴보아도 ‘정직한 후보’는 등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주상숙’(라미란 분)의 ‘정직’은 오로지 감추었던 속내나 자신의 어두운 면, 타인의 비리에 대한 ‘폭로’를 위해 존재할 뿐이다.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답답한 현대인들의 스트레스가 주상숙의 ‘팩트 폭력’을 통해서 해소될 수 있을지는 모르나 진정한 ‘정직’의 가치가 드러날 수 있었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진하게 남는다. 영화 속 주인공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 없이 나온 ‘솔직한 막말’ 때문에 선거를 망칠 뻔 하다가 ‘솔직함’이라는 위기를 도리어 기회 삼아 다시 4선을 노린다. (그녀의 심각한 비리가 셀프 폭로로 드러났는데 이것을 ‘솔직함’이라는 매력으로 바라보는 대중들의 태도도 쉽게 납득이 가지는 않는다.) 그녀의 ‘정직’은 할머니의 기도 때문에 걸린 ‘저주의 마법’이었을 뿐이다. 그녀의 ‘솔직한 언행’들은 ‘수습’해야 하는 대상일 뿐, 사회에 빛을 드러내지 못한다. 이를 수습하는 것은 모조리 보좌관인 희철(김무열 분)의 몫이다. 

그녀의 ‘솔직한 언행’들은 ‘수습’해야 하는 대상일 뿐, 사회에 빛을 드러내지 못한다. 이를 수습하는 것은 모조리 보좌관인 희철(김무열 분)의 몫이다.


'팩폭'과 '자폭'


결국 주상숙은 신나게 셀프 폭로를 하더니 마지막에는 본의 아니게 여의도 정치인들의 비행을 통째로 고발하는데에 이른다.(왜 본의 아닌 것인지는 영화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렇게 논개처럼 자폭을 연신 하고는 그녀 스스로 징역형을 살고 나오면서 영화는 그녀에게 쉽게 ‘속죄’의 명함을 수여한다. 그렇게 감옥에서 나온 주상숙은 감옥에 가기 직전, 할머니의 진짜 죽음으로 마법의 저주에서는 풀려나지만 ‘정직’을 내부 장착한 모습을 띠고 다시 나타난다. 마지막 시장 선거의 후보자 토론 시간, ‘보좌관’은 살살 좀 하라는 사인을 보내지만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팩트폭력을 날릴 준비를 하며 영화는 마무리 된다.  


주상숙은 정직한 후보가 되었을까?


과연 주상숙은 ‘정직한 후보’가 되었을까? 영화의 흐름상 적어도 영화의 제작자는 그녀가 ‘정직’을 스스로 소화하여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고 설정한 것 같다. 하지만 이 영화는 영화의 핵심인 ‘정직’이 무엇인지에서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이 어떨까 싶다. 물론 정치계의 도덕적 부패가 워낙 심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해소를 하기 위하여 이에 대응하는 가치를 ‘정직’으로 내걸고 나온 코미디 영화인 것은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는다. 코미디 영화는 웃을 수 있으면 그만인데 왜 이렇게 빡빡하게 구느냐고 한다면 딱히 할 말은 없다. 그래도 그 웃음 속에 가치가 제대로 담길 수 있었다면 더 좋은 영화가 될 수 있었겠다는 아쉬움이 크다는 것이다. 


말이 '정직'한 것은 빛을 낼 수 없다


‘정직’은 삶이 먼저 ‘정직’이 되어야 빛이 난다. 삶은 부패하게 살고, 그에 대해 솔직하게 말하는 것은 ‘정직’이 아니라 ‘자백’일 뿐이다. 때에 따라서 그러한 행위는 선을 끼치지 못하고 사람들을 괴롭히기도 한다. ‘사이다’니 ‘팩트 폭력’(줄여서 팩폭)이니 하는 것이 대중들의 인기를 끌지만 그러한 ‘정직’들은 정작 세상을 바꾸기보다는 또 다른 싸움을 만들어내기 쉽다. 왜냐하면 세상은 한 가지 맥락의 팩트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입장을 달리한 여러 가지 팩트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팩폭은 또 다른 팩폭을 낳는다. 대중들은 처음에는 카타르시스를 느낄지 모르지만 사이다를 너무 많이 마시면 속이 더부룩하게 마련이다. 팩폭이 계속되면 한계 효용이 감소하면서 점점 그 희열에 대해서도 둔감해지기 마련이다. 


자, 이제 '정직한 후보'를 보여줘


별 기대 없이 본다면 라미란이라는 명품 배우의 하드 캐리 덕분에 웃을 수 있는 포인트들이 있지만 ‘정직’이라는 중차대한 가치를 영화 제목에 내걸고 나온 영화라고 하기엔 ‘정직’한 삶이 하나도 보이지 않아서 아쉽다.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만으로는 ‘정직’을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 이제 누가 우리에게 ‘정직한 후보’를 보여줄텐가.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만으로는 ‘정직’을 설명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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