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남산의 부장들' 리뷰
이 영화를 보면서 이병헌이 나온 또 다른 영화 ‘달콤한 인생’을 떠올렸던 것은 나뿐일까.
나한테 왜 그랬어요?
충성을 다했던 보스에게 배신당한 이병헌이 마지막에 그 보스에게 총을 겨누며 물었던 장면이다. 선우(이병헌 분)는 그의 보스 강사장이 모든 것을 위임했던 신뢰받는 부하였다. 하지만 보스의 여자 희수와 마음이 통하는 사이, 강사장의 눈 밖에 나버렸다. 선우는 그렇게 한 순간에 버려졌다.
남자들의 세계란 어찌 보면 단순하다.
나를 인정하는 리더에게 충성을 다하고, 박수가 사라지면 공연도 끝난다.
이 진리를 일찍 깨달은 아내들은 남편을 춤추게 하리라.
어떤 지방에 사는 부부 이야기다. 어떤 아내 분이 남편에게 후진 하는 모습이 멋있다고 말하자 남편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난 후진으로 서울까지 갈 수 있어!’
※ 이후 영화 ‘남산의 부장들’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으니 영화를 아직 보시지 않은 분들은 유의해서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남자들이 보통 이러할진대 군인들이 정권을 잡은 시대라면 오죽할까. 무려 18년이었다. 군인들이 청와대를 장악하였고, 대통령과 중앙정보부장은 ‘혁명’의 추억을 공유하는 육군사관학교 동기였다. 그렇게 ‘육사 출신’들이 즐비한 청와대에 육군사관학교도 못 밟아본 새파랗게 어린 경호실장(실제 인물은 ‘차지철 경호실장’이다)이 들어온 것이다. 들어온 수준이 아니라 기라성 같은 군인들을 오라가라하며 대통령을 대리해서 정치인들을 줄 세운다. 공식적인 2인자였던 김규평(실제 인물은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다)의 심기는 불편하다.
영화 ‘남산의 부장들’은 1979년 10월 26일, 김규평(이병헌 분)이 대통령(이성민 분)을 저격하는 장면으로 시작하여 빠르게 40일 전으로 회귀한다. 영화의 영어 제목, ‘the man standing next’에서 알 수 있듯이 김규평은 40일 전만 해도 항상 대통령의 옆을 지키겠다고 진심을 다해 이야기하는 ‘충신’이었다. 그런 그가 어떠한 연유로 총을 들었을까? 우민호 감독은 이 질문을 던져놓고, 시종일관 김규평과 호흡을 같이 한다. 관객들은 호흡을 같이 하면서 그가 왜 그런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는지 이해를 할 수 있다. 다만, 영화는 김규평의 편만을 들지는 않는다. 영화는 그를 18년 독재를 청산한 민주 투사로 보지 않는다. 그의 저격을 신성시하기보다 인간 김규평(이병헌 분)의 심리와 청와대 인물들간의 역학 관계를 조명한다.
10.26을 인물간의 심리와 갈등으로 풀어내는 바로 이 지점이 필자가 이 영화를 정치적 영화로 보지 않는 이유다.
물론 대통령(이성민 분)이나 그의 심복 곽상천(이희준 분)이 선하게 그려지지는 않는다. 그들은 대통령의 독재를 반대하는 정치인들을 사정 없이 억누르며 시민들을 탱크로 밀어버리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한다. 그 시절에 대한 향수가 있는 보수층에서 보면 이러한 설정 자체가 불편할 수 있겠다.
하지만 영화에서 집중하고 있는 것은 ‘정치’와 ‘명분’이라기보다는 청와대 남자들의 ‘암투’에 가깝다.
영화에서는 김규평의 충성이 어떻게 분노와 복수로 변화하는지를 절제된 연출로 보여준다.
이에 대한 영화의 첫 번쨰 포커스는 김규평이 친구인 박용각(곽도원 분, 실제 인물은 ‘김형욱’이다)의 목숨을 놓고 고민하는 시퀀스이다. 박용각은 김규평 직전에 있었던 중앙정보부장이다. 그 역시 대통령에게 충성을 맹세했던 사람이었지만 전권을 위임하는 것 같던 대통령은 한 순간에 얼굴을 바꿔 그를 버린다. 한 순간 ‘버린 카드’가 되어버린 그는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다고 생각하고, 미국의 하원 의원들에게 한국의 독재 현실을 고발하기에 이른다.
김규평은 대통령이 이 사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묻는다. 이 때 각하의 말씀.
임자 하고 싶은대로 해. 임자 곁엔 내가 있잖아
영화는 ‘박용각’이 각하에게 버림 받기 전에 들었던 멘트를 ‘김규평’이 다시 듣게 함으로써 그의 운명을 암시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이 때까지 관객은 각하의 의중을 짐작할 수 있지만 김규평은 모른다. 그는 각하에게 충성을 다하기 위해 친구의 목숨을 제거하기에 이른다. (실제 인물들은 친구가 아닌 선후배 지간이라고 한다. 실존인물 ‘김형욱’은 실제로 프랑스 파리에서 실종되었고, 그의 실종에 대해 여전히 여러 설들이 존재한다. 영화에서 보여주는 그의 죽음은 여러 설들을 한데 묶어 연출한 것으로 보인다.)
자신의 친구를 희생해서라도 각하에게 충성을 다하고자 했던 그의 노력은 각하에 의해서 철저히 짓밟힌다. 영화의 말미, 각하와의 신뢰 관계가 산산조각난 상태에서 김규평은 각하의 전화 통화를 도청한다. 대통령은 김규평을 ‘지 친구도 죽인 놈’이라며 그의 신변을 놓고 고민한다. 그것을 벽 하나를 두고 듣고 있는 김규평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두 번째 포커스는 곽상천(이희준 분)과의 갈등이다. 앞에서 언급한대로 육사 출신도 아닌 능력도 인품도 없는 인물이 대통령의 신임을 받고는 사실상의 2인자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가 다른 인물들보다 유일하게 잘 했던 것은 각하의 의중을 잘 알고, 적시적소에 필요한 말과 행동을 하는 것이었다. 대통령이 담배를 꺼내자 김규평이 당황하는 사이, 곽상천이 재빠르게 담배에 불을 붙이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각하의 인정하는 말 하나를 바라보고 손에 피를 묻히는데 그 님은 이미 다른 이에게 마음을 주고 있다. 그것도 객관적으로 자질이 부족한 자에게 말이다. 아마 공식적 2인자 김규평에게 곽상천의 존재는 인생 전체를 부정당하는 것 같은 모욕감을 주었을 것이다.
세 번째 포커스가 굳이 말하자면 각하의 정치에 대한 김규평의 ‘대국적 판단’이다. 부마 항쟁이 계속되던 시기, 무력으로 정권을 잡은 대통령은 생각의 맥을 같이 하는 경호실장과 함께 계엄령과 무력 진압 카드를 꺼낸다. 만약 이 독재 정권을 그대로 유지시킨다면 무고한 사람들이 계속 희생될 것이라는 생각. 게다가 미국은 이 정권이 얼마 가지 못할 것이라는 계산을 이미 하고 있다. 어차피 무너질 정권이라면 지금 이 순간, 내 손으로 처단하는 것이 낫겠다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영화가 김규평을 ‘열사’로 표현했다면 아마 내 기대는 실망이 되었을 것이다. 아마 그랬다면 감독의 정치적 주장들을 걸러내느라 제대로 영화에 몰입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는 청와대와 중앙정보부를 '목숨 걸고 다니던 직장인들'의 심리를 잘 표현해주어서, 무엇보다 배우들의 연기가 우리를 70년대의 그 순간들로 몰입하게 해 주어서 좋았다.
영화에 의하면 박대통령은 18년 불통의 독재 정치를 해서라기보다 권력 유지를 위해 2인자들을 수시로 갈아치우다 ‘버리려고 했던 카드’에 의해 복수 당했다고 보는 편이 맞을 것 같다. 전자였다면 정치 영화이지만 후자에 무게가 실려있기 때문에 느와르물이 되었다. 이병헌을 주인공으로 하는 또 다른 복수 느와르물의 탄생인 셈이다. 세상 억울하지만 절제된 표정을 지을 줄 아는, 무표정에도 절망을 담을 줄 아는, 눈으로는 울지만 입으로는 웃을 수 있는 이병헌만 할 수 있는 일이다.
영화는 마침표를 찍으면서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실제 인물, 김재규의 재판정에서의 육성을 들려준다. 그를 영웅으로 그렸다면 아마 그의 진술을 들으며 관객들은 눈물을 흘렸을테지만, 영화를 본 관객들이라면 그의 저격 동기에 관한 진술은 ‘공식적 코멘트’ 정도로 들렸을 것이다. 영화는 정치적 명분을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관객에게 10.26. 사건을 보다 입체적으로, 인간적으로 체험시킨다.
김규평에게 감정이입을 한 관객들은 어쩌면 역사적 인물들에 대한 재평가보다 자기 스스로의 상황을 돌아보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청와대도 사실 사람사는 곳이었고, 하나의 직장이었던 셈이다. 상사의 배신과 인정의 결핍은 충성심을 복수심으로 바꾸기에 충분했다. '청와대 직장인들의 암투극'이라고 하면 역사를 너무 저렴하게 다루는 것일까. 하지만 역사의 이면에는 공식적 기록에는 담길 수 없는 그런 인간적인 것들이 너무나 많다. 그것을 다룰 수 있는 매체는 어쩌면 영화 밖에 없다. 영화 감독은 팩트와 픽션을 적절히 섞을 수 있는 자유가 있기 때문이다. 우민호 감독은 그 자유를 적절하게 잘 활용한 것 같다.
그것이야말로 참 ‘대국적’인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