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벌새' 리뷰
1994년의 여름은 무척이나 더웠었다.
그 해에 미국에서 월드컵이 열렸고, 김일성 주석이 사망했으며, 성수대교가 무너졌다. 왜 그렇게 시대의 기억은 생생하게 남는지. 90년대의 기억은 2000년대의 기억보다 더 강하게 마음 속에 남아있는 것 같다.
* 개봉한지 꽤 된 영화이지만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으므로 아직 영화를 보지 않은 분께서는 유의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영화 ‘벌새’는 1980년도에 태어나 1994년도에 중학교 2학년이었던 ‘은희’의 성장 서사이다. 영화 속 은희가 지금까지 무사히 살아있다면 41세의 어른이 되어 있을 것이다. 현실에서 37세의 나는 영화 속에서 자연스럽게 초등학교 4학년이던 11살로 돌아가 중학교 2학년인 은희 누나를 바라보는 관찰자가 되었다.
중학교 2학년이지만 은희의 삶은 녹록치 않다. 쉼이 되어주어야 할 집은 은희를 가장 억압하는 공간이다. 대원외고와 서울대라는 커리어패스를 예약해둔 오빠에게 부모는 필요 이상의 권위를 이임해주었고, 오빠는 그 힘을 은희에게 부당하게 행사한다. 떡집을 하는 부모님은 늘 바쁘기만 하고, 은희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집은 늘 비어있다.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대상은 집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가장 섬세한 감성을 소유할 그 시기, 은희는 자신의 마음을 나눌 대상을 찾아 헤멘다.
가장 마음을 많이 할애하는 대상은 그녀의 첫 남자친구 지완(정윤서 분)이다. 어른들이 보기에는 아이들의 사랑이 풋풋해보일지 몰라도 아이들은 처음이기에 정말 최선을 다하게 마련이다. 상대방의 작은 변화에도 섬세하게 반응할 수 밖에 없다. 은희는 지완에게 최선을 다해 마음을 쏟는다. 하지만 지완은 다르다. 때로는 다른 여자 아이에게 한 눈을 팔기도 하고, 엄마의 등쌀에 못 이겨 ‘방앗간 집 딸’인 은희를 멀리하기도 한다. 첫 번쨰 실패와 두 번째 실패까지 경험한 은희는 더 이상 지완에게 마음을 두지 않게 된다.
그리고 은희의 베스트프렌드라고 할 수 있는 지숙(박서윤 분). 친한 친구라고 생각했던 지숙은 같이 도둑질을 하다 발각되자 문구점 사장에게 은희의 가게 전화번호를 일러바친다. 이 일을 통해서 은희는 또 다시 인간관계의 실패를 경험하게 된다. 사랑하던 남자친구와 베스트 프렌드 모두를 잃어버린 은희.
은희에게 먼저 다가온 한 학년 후배인 유리(설혜인 분). 불붙는 것 같은 적극적인 감정을 가지고 다가온 유리의 구애에 은희는 어렵게 마음을 연다. 하지만 그 역시 방학을 지나자 은희에게 눈길을 주지 않는다. 도대체 왜 이럴까 따져 묻는 은희에게 유리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언니. 그건.. 지난 학기잖아요.
사춘기를 지나오던 그 시기를 생각해보면 그렇다. 가족들 속에서 있는 그대로 이해 받기가 참 힘들다. 매일마다 부딪히고 직면해야 하는 외로움. 밤마다 방 안에 우두커니 앉아 한숨쉬는 어리고 순수한 영혼들. 그들은 어떻게든 연결되고자 애쓴다. 지금은 SNS를 통해 연결된다지만 1994년도에는 그런 도구조차 없었다.
그 시절의 순도 높은 외로움은 인간 관계를 시작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원료’가 되지만 가장 큰 ‘약점’도 된다. 그리고 때로는 ‘독’이 되기도 한다. 인간관계에 전적으로 마음을 쏟아보지만 관계에는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는 것을 그 때는 알지 못한다. 내가 힘들면 상대방도 힘들다는 것을 이해하기 어렵다. 외로움과 결핍의 공간이 크면 클수록 인간관계에 투입하는 에너지도 커지고, 실수도 잦아진다. 결국 시행착오를 겪을 수 밖에 없다. 인간관계에 적당한 거리를 두는 연습은 정말 힘들다. 비인간적으로 느껴진다. 진심으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이렇게 힘들단 말인가. 하지만 순수할수록 진심일수록 상처는 커지게 마련이다.
은희의 관계 맺기란 이렇게도 험난하다.
이 험난한 시기에 은희의 손을 잡아주는 유일한 존재는 바로 한문학원 선생님으로 등장하는 영지(김새벽 분). 한문학원이라고 해봐야 한 클래스에 은희와 지숙이 전부지만 그 접점을 통해 은희는 처음으로 진실된 마음의 교류를 경험하게 된다. 영지는 스스로도 어떻게 살아가야할지를 찾고 있는 구도자이지만 그 과정에 자연스레 은희를 편입시킨다. 한 번도 가져본 적 없는 성찰과 자아 성장의 기회, 영지와 눈을 마주치며 은희는 자신의 삶의 주체로서 처음 발을 딛게 된다.
영지가 은희에게 해주었던 이야기들 중에 수첩에 적어놓고 싶을만큼 좋은 이야기들이 있었다.
상식만천하 지심능기인(相識滿天下 知心能機人). 서로 얼굴을 아는 사람은 세상에 가득하지만 마음까지 아는 사람은 얼마나 있을까
힘들고 우울할 땐 손가락을 펴 봐! 그리고 움직이는 거야!
아무것도 할 수 없는데 손가락은 신기하게도 움직여져!”
그리고 1994년 10월 21일, 압구정동과 마장동을 이어주던 성수대교가 한순간에 무너졌다.
나도 그 날을 기억한다. 누나가 94년도에 결혼해서 신혼일 때였는데 성수대교는 매형이 출퇴근을 하는 통로였다. 아침에 뉴스를 보고 안부를 묻고는 가슴을 쓸어내렸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그 때 무학여고 학생들이 주로 타 있었던 시내버스 하나가 강으로 추락했고, 여고생들이 많이 희생되었다.
은희의 언니가 무학여고 학생이었다. 그녀는 아침에 뉴스를 접하고, 다급하게 공중전화로 집에 전화를 걸어 언니의 생사를 확인한다. 버스를 늦게 탄 언니는 그렇게 목숨을 건졌다. 하지만 영지가 보낸 소포의 주소를 따라 학원에서 만날 수 없게 된 선생님을 찾아나선 그녀는 영지의 어머니에게서 그녀의 사망 소식을 접하게 된다.
영지가 은희에게 남긴 편지는 마치 그 시절 대학생 누나가 우리에게 전해주는 손편지인 것만 같다.
어떻게 사는 것이 맞을까?
어느날 알 것 같다가도 정말 모르겠어.
다만 나쁜 일들이 닥치면서도 기쁜 일들이 함께 한다는 것.
우리는 늘 누군가를 만나 무언가를 나눈다는 것. 세상은 참 신기하고 아름답다.
어쩌면 중학교 2학년의 서사 치고는 너무 무겁고 방대할 수 있다. 하지만 가족 관계의 단절, 친한 친구의 배신, 이성교제의 실패,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등은 우리 삶을 가득 메우는 무거운 바위들 중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영지의 말대로 나쁜 일들이 우리 삶에 마구 닥쳐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삶에는 기쁜 일들이 함께 하며, 늘 누군가를 만나 무언가를 나눈다. 계속해서 속고, 마음에 상처를 입고, 신음하더라도 여전히 우리는 또 누군가를 만난다. 그것이 세상을 신기하고도 아름답게 만드는 특별한 이유인 것 같다.
은희는 지금 어떤 사람으로 성장했을까?
꼭 안아주고 싶었던 건 은희 뿐만이 아니었다.
중학교 때 뿐 아니라 여전히 삶의 무게로 신음하고 있을 세상의 수많은 은희들이 있다. 가부장적 권력에 눌려 제대로 숨쉬지 못했던 그들의 트라우마는 어른이 되어서도 쉽게 사라지기 힘들다. 여전히 순수하게 그리고 진심으로 사람을 사랑하고 싶지만 어린 시절의 실패의 기억은 ‘적당한 거리 두기’에 무의식적으로 더 신경을 쓰게 만든다.
어쩌면 ‘82년생 김지영’의 ‘비긴즈(begins)’ 역할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82년생 김지영이 김지영의 현재 서사를 보여준다면 벌새는 현재를 살아가는 30~40대 여성들의 어린 시절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82년생 김지영은 80년생 김은희의 어른이 된 모습일지도 모른다.
여전히 삶에는 나쁜 일들이 닥치지만 그 중에는 간간이 좋은 일도 있다. 하지만 그 한숨과 웃음의 이상한 균형이 삶을 아름답게 채색하고 있다. 멀리서 보면 무지개 빛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잿빛인 그러한 삶의 무게는 어쩌면 우리의 유년 시절부터 학습되고 있었는지도.
어떻게 사는 것이 맞을까? 은희는 그 해답을 찾았을까?
서른일곱살의 나는 영지가 필요하고, 또 그런 선생님이 되어주어야 한다.
삶은 그렇게 함께 답을 찾아나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