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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음 May 18. 2020

'인간수업': 미화하지도, 정죄하지도

새로운 배우들로 엮어낸 새로운 이야기

넷플릭스에서 최근 공개한 ‘인간수업’이라는 드라마를 우연한 기회에 정주행하게 되었다. 주행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꽤나 몰입도 있게 몰아쳐 주는 덕분에 다음 회를 클릭하지 않을 수 없는 신박한 경험을 했다. 아마 드라마를 본 사람들은 하룻밤에 다 시청한 사람들도 부지기수일 터이다.      


※ 본의 아니게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을 수 있습니다. 작품을 감상하실 분들은 작품을 감상하고 읽어보시는 것을 권장드립니다.


조금 쌩뚱맞은 이야기부터


조금 쌩뚱맞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나는 참여하고 있는 배우들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이미 만족스러웠다. 드라마 속 주인공들은 고등학생들이다. 고로 드라마의 주연 배우들도 그 나이 대이거나 적어도 그 정도로 보이는 사람들이었다. (‘최고령자’는 ‘배규리’ 역의 박주현 배우로 실제 나이는 스물 여섯살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녀조차 얼굴을 아직 본 적 없었던 신인이었다.)

       

사회가 점차 고령화되면서 사회 전반적으로 무게 중심이 많이 움직였다. 1990년대만 해도 모든 문화 영역에서 가장 활발한 사람들은 10~20대였다. 아무리 전성기를 구가하던 연예인이라도 20대에서 30대로 넘어가는 순간, 거의 수명을 다 한 것으로 여겨지던 것이 현실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사회의 고령화 현상이 심화되었고, 이에 따라 시청자들의 주된 연령대도 대폭 상향되었다. 정확한 통계를 본 적은 없지만 지금 브라운관의 메인을 차지하고 있는 예능 연예인이나 가수, 배우들은 90년대에 데뷔했던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가족 드라마 속에서도 어린 배우 또는 신인 배우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굉장히 적다. 만약 내가 배우 지망생이라면 예전보다 오히려 등용문이 많이 좁아졌다는 생각이 들 것 같다.      


물론 연예계에서 나이에 관계 없이 활동하게 된 것은 분명 좋아진 환경이다. 개그맨 유재석이나 이영자, 배우 이병헌이나 김혜수 등의 사람들이 사십대를 지나오면서 오히려 더 큰 반향을 몰고 온 덕분에 우리는 다방면에서 ‘끼’로나 ‘연기’로나 양질의 컨텐츠들을 접하게 된 것이 사실이다. 다만 우려되는 것은 다름 아닌 ‘청소년 소외’이다. 청소년의 이야기들이 자취를 감추게 된 것이다. 청소년의 이야기를 청소년의 시각에서 풀어내는 컨텐츠들이 공중파나 스크린에서 자취를 감추었고, 결국 청소년들은 어른들의 관심을 받지 않는 사각지대, 온라인 공간으로 흘러들어 가 버린 듯 하다. 청소년 배우들은 시니어들의 간택을 얻어야 하는 수동적인 존재가 되어 스스로의 잠재력을 발산할 수 있는 기회가 오히려 예전보다 많이 없어진 것으로 보이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내심 어른들의 입김이 많이 닿지 않은 새로운 컨텐츠가 나와주기를 바라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한국 드라마의 도전적인 실험


10부작 드라마 ‘인간수업’에 등장하는 배우들은 스카이캐슬에 나왔던 김동희 배우(오지수 역)가 그나마 익숙하다. 정다빈 배우(서민희 역)는 옛날에 배스킨라빈스 광고에 나오던 아기가 벌써 이만큼 큰 것이라고 한다. 튀어나올 것처럼 큼직한 눈망울을 보면 그 때 광고에 나오던 그 아이가 맞구나 생각이 들기도 한다. 박주현 배우(배규리 역)의 발견이 매우 놀라운데, 거의 데뷔작에 가까운 이 드라마를 연기로 압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배스킨라빈스 광고에 나오던 눈망울 큰 아기가 이렇게 컸다


새로운 이야기를 새로운 배우들을 데리고 시도했다는 것만으로도 이 작품은 절반의 성공을 거두었다고 본다. 물론 ‘새로운 이야기’에 해당하는 소재가 꽤나 파격적이기에 많은 논란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작품 속에서 주인공들이 벌이는 범죄는 온라인 성매매로서 최근 'N번방 사건'과 오버랩되기에 충분하다. 이러한 범죄자들에게 일종의 ‘서사’를 부여하는 것에 대한 불편함을 호소하는 분들이 많다. 하지만 작품을 정주행해보면 작품을 제작한 사람들이 범죄를 미화했다고 보여지지는 않는다. 다만, 그 누구라도 범죄에 늪에 빠져들 수 있다는 경각심을 준다고 보는 편이 더 맞을 것 같다.     


악(惡)의 평범성


악은 평범하다. 범죄의 유혹은 악마의 얼굴을 하고 오지 않는다. 드라마 속 지수(김동희 분)은 ‘내 꿈은 비싸다’고 말한다. 그의 범행 동기는 ‘평범한 삶’을 살기 위해서이다. 그저 남들처럼 평범하게 대학에 진학하고, 평범한 직장에 취업해서, 평범한 가정을 꾸려 그렇게 살아가기 위해서. 그에게는 적지 않은 돈이 필요하다. 부모에게 버림 받은 지수는 집의 월세를 감당하고, 학교와 학원에 가는 돈을 벌기 위해 이른바 ‘4차산업혁명’으로 이미 일구어진 온라인 공간을 파고든다. 

평범한 삶을 살기 위해 범죄를 시작한 평범한 빌런, 오지수(김동희 분)


그와 공범이 되기를 자처하는 규리(박주현 분)는 그와는 정반대의 유복한 환경이지만 마음 속 공허함은 비슷하다. ‘내 숨냄새가 너무 토 나온다’고 짜증 섞어 고백하는 그녀는 틀에 갇힌 집 환경에서 지원받으며 사느니 일탈하는 것이 훨씬 나은 방법이라고 여긴다. 그녀는 이미 그 길을 열어놓은 지수와 협력해 잘못된 길에 불을 붙이는 역할을 기꺼이 감당한다. 그녀의 개입으로 인해 드라마는 점점 더 헤어나올 수 없는 파국으로 치닫게 된다.     


'빌런 서사'의 딜레마


이러한 작품일수록 어쩔 수 없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권선징악’이라는 뻔한 프레임에 넣자니 ‘선과 악의 불분명한 구도’라는 고차원적인 설정에 위배될 뿐 아니라 주인공들에게 감정이입된 관객들을 배신하는 처사가 된다. 그렇다고 그들을 조금이라도 미화하거나 통쾌하게 범죄에 성공하는 모습을 보여주게 되어도 이로 인해 미치는 사회적 반향이 부정적이다. 그 어느 엔딩도 적합하지 않기에 아마 각본을 쓴 사람들도 많은 고민이 있었을 것이다.     


드라마는 그래서 더더욱 죄를 짓는 지수(김동희 분)에게 하염 없는 죄책감을 부여한다. 그의 고뇌는 마치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을 보는 것 같다. 하지만 고뇌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없다. 본디 거짓말은 또 다른 거짓말을 낳게 되고, 죄는 또 다른 죄를 불러오게 된다. 그렇게 그는 수렁에 빠지고, 빠져나오려고 할수록 더 깊은 심연에 빠지게 된다. 죄책감은 죄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니다.     


'빌런 교화'에 나선 어른들


자신의 내면과 비행을 그 누구와도 소통하지 않으려하는 주인공들과 대조적으로 이 드라마에 나오는 어른들은 비현실적으로 느껴질만큼 헌신적이다. 지수와 규리의 담임인 조진우(박혁권 분)는 아이들의 삶 깊은 곳에 개입해서 잘못된 것들이 있다면 기꺼이 수술하려고 든다. 여성청소년계 경위로 등장하는 해경(김여진 분)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냥 단순 사건으로 치부하고 넘어가도 비난 받지 않을 일들에 그녀는 깊숙이 관여하여 해결하려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개입은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 작품 속 청소년들의 세계는 어른들의 생각과 추론으로 이해되지 않는 별도의 세계로 그려진다. 특히 일탈의 길을 걷기로 한 그들의 언어와 생각, 행동들은 어른들의 가장 기본적인 전제마저 쉽사리 무너뜨린다. 작품은 청소년들의 비행을 심도있게 다루면서도 그들의 문제가 단순한 어른들의 애정과 개입만으로는 풀어낼 수 없는 문제임을 현실적으로 경고하는 듯 하다.      

헌신적인 어른 중 하나인 해경(김여진 분)


결국 비행을 선택한 작품 속 아이들이 유일하게 마음을 터놓고 의지하는 어른은 이미 손에 피를 잔뜩 묻혀버린 왕철(최민수 분) 밖에 없다. 이미 강을 많이 건너버린 아이들은 멀쩡한 모습을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꺼낼 수 없다. 아무리 강 건너에서 건너오라고 손짓을 해도 이미 발이 빠지기 시작한 아이들을 손짓과 언어로 건지기에는 한계가 있다.      


영화 ‘박화영’이 생각이 났다. 마음은 한 없이 여리고, 자신을 필요로 하는 누군가에게 헌신할 준비가 되어 있는 애정결핍 박화영은 결국 자신을 친구로 여기지 않는 또래 그룹에 의해 철저하게 소비당하지만 정작 자신을 도울 수 있는 어른들에게는 욕을 퍼부으며 저항하지 않았던가.      


아이들은 정말 혼자가 아닐까?


청소년의 범죄가 왜 무서운 것이 되는가. 어쩌면 어른들과의 어긋난 소통이 그들의 비행에 불을 붙이고 있는 것 아닌지. 그들의 일탈과 범죄는 앞으로 날이 갈수록 더욱 심화될 것이다. 한국에 사는 10대 인류들은 전 세계에서 컴퓨터와 인터넷을 제일 잘 다루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가치관이 흔들리고 있다. 무엇이 옳은지, 무엇이 그른지 드라마 속의 주인공들은 그나마 구분하고 있었지만, 이제는 그것마저 흔들리고 있다. 그들은 무엇이 옳은지 알지 못한 채, 가장 영리하게 세상의 도구들을 다룰 수 있다. 그들이 붙잡을 수 있는 마지막 보루는 무엇일까? 드라마 말미에 다음과 같이 등장하는 안내 문구가 더욱 더 아이러니컬하게 보였던 것은 나의 기분 탓이었을까.     


“어려움을 겪고 있는 청소년을 알고 계신다면 혼자가 아니라고 말해주세요” - 사이버 1388 청소년 상담센터     





드라마 속 어른들을 최대한 관찰자로 배제 시킨 상태에서 아이들의 세계를 직접 인용으로 그렸다는 부분에서 드라마는 흡인력이 꽤나 강했다. 더불어 과하지 않은 급식체 덕분에 30대도 거의 알아들을 수 있는 대사가 고마웠다. 범죄를 저지르는 아이들을 미화하지도, 그렇다고 정죄하지도 않는 드라마의 중립적 스탠스에 감탄하면서도 밋밋한 결말은 좀 아쉬웠다. 시즌 2를 염두에 둔 것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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