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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음 Aug 26. 2020

대놓고 한참 선배를 질책한 신참

그리고 잘못을 인정하고 수정한 선배

나, 저 사람들과 친구 아니에요!


안디옥의 외국인들과 함께 식사하던 베드로는 갑작스레 들이닥친 예루살렘의 신자들을 맞닥뜨렸다. 유대인이 아닌 외국 사람들과 함께 식사하는 것이 처음은 아니었지만 예루살렘에서 온 사람들은 다름 아닌 야고보, 바로 예수님의 친동생이자 예루살렘 교회 최고 권위자가 보낸 사람들이었다. 안타깝게도 예루살렘에서 온 손님들은 베드로의 이러한 행동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함께 식사하던 외국인들과 언제 그랬냐는듯 서먹한 거리를 두는 베드로, 그리고 베드로를 따라 바울과 오랜 시간을 동고동락한 바나바마저 외국인들과의 자리를 피한다. 안디옥을 방문한 동족의 신자들과 합석하여 간만에 선민(選民)으로 존재하던 그들을 보며 사도 바울은 화를 참을 수 없다.

     

“이봐요, 베드로 형제님! 진짜 유대인처럼 살며 율법을 지킨다는 것이 어떠한 무게인지 당신도 알지 않습니까? 이미 우리는 그 기준을 충족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지 않았습니까? 베드로 당신조차 그러한 기준을 채울 수 없으면서 이제 겨우 믿음 생활을 시작하는 외국인들에게 이런 차별을 하니 어째, 기분이 좋습니까? 이 순수한 사람들한테까지 우리 동족들의 ‘경건한 척’하는 문화를 꼭 전해야 하겠습니까?”   

  

바울은 바나바와 안디옥에서 첫 사역을 시작했었다. 초대교회의 헤드쿼터라고 할 수 있는 예루살렘의 신자들에게 바울은 아직 '신자'보다는 ‘악명 높은 박해자’로 더 각인되어 있던 풋내기에 불과했다. 연공서열로 볼 때, 베드로를 꾸짖을 수 있는 항렬이 아니었다는 의미이다. 베드로를 따로 불러 화를 낸 것도 아니고, 무려 당대의 최고의 권위자 야고보가 보낸 손님들 앞에서 마치 보란 듯 화를 낸 바울의 행동은 이유를 막론하고 어떤 조직에서 볼 때도 장려받을 행동은 아니었을 것이다.      

베드로와 바울


유대인 신자들의 필수템, 우월감과 배타성


사도 바울은 베냐민 계열의 유대인이었고, 그 누구보다도 유대인들의 습성과 관행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거듭났다고 고백했지만 수천년 넘게 유전된 그들의 우월감을 버리기 힘들었다. 할례는 그들이 여호와로부터 선택받은 사람들이라는 징표였고, 그 징표가 없는 사람과는 말을 섞지 않았다. 바울은 그들의 우월감이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았다.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교회에서 신자로서 함께 어울리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도 많은 것들이 필요했다. 그들에게는 여전히 기념일과 절기가 중요했고, 외국인이 신자의 그룹 안에 들어오려면 모세가 알려준 할례를 해야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꽤나 있었다. 사실 모세가 할례를 행하기 전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도 원래는 할례받지 않은 이방인이었다는 사실을 생각하는 유대인은 거의 없었다. 예루살렘에서 처음 열렸던 초대 교회들의 공의회에 함께 참석한 그리스인 디도라는 신자는 다수의 유대인들에 의해 강압적으로 할례 받을 뻔한 웃지 못할 해프닝도 있었다.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교회에서 신자로서 함께 어울리기 위해서는 예수의 십자가 외에도 많은 것들이 필요했다.


바울은 뼛속까지 배어있는 동족들의 우월감과 배타성을 짚어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유대인이었다.(매주 보는 사람들끼리는 당연한 것이었으므로 인지조차 하고 있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이러한 우월감과 배타성이 복음의 확장에 얼마나 큰 해가 되는지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 때만 해도 명성이 부족했고, 신자 그룹의 헤드쿼터와도 같은 예루살렘에서 ‘지지’보다는 ‘의심’을 더 받고 있었다. 그는 ‘경건’이 학습된 오래된 신자들 속에 있는 것보다 다른 신을 섬기며 예수의 존재조차 모르고 살던 이들 속에 있는 것이 더 잘 어울렸다. 제우스와 헤르메스를 추앙하던 사람들은 예수의 십자가 앞에 삶의 축이 무너졌고, 갈라디아 지역의 가난한 노예들은 복음을 듣고 진정한 자유를 얻었다. 비록 현실의 삶은 더욱 고생이었지만 말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그 어느 때보다 ‘교회’라는 키워드가 부정적인 워딩으로 검색되고 있는 오늘, 나는 이러한 일들을 생각하다 문득 베드로를 향한 바울의 일갈로 거슬러 올라가게 되었다.

      

사도 바울은 유대인들 속에서도 인정받을만한 혈통과 학식이 있었고, 다소에서 태어나 그리스의 문화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으며, 그 무엇보다도 로마의 시민권을 지닌 사람이었다. 그야말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더불어 다른 ‘코드’를 불어넣을 수 있는 적임자였다. 하지만 그는 교회의 시작 지점에서 ‘십자가’ 외의 다른 ‘코드’가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잘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는 가말리엘에서 배운 유창한 설법을 쓰지 않았다. 유대인들의 문화를 이식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처음 세워지는 외국인 교회에 자신이나 동족의 ‘문화’나 ‘색깔’이 입혀질까봐 전전긍긍하며 오로지 담백하게 때로는 무식하게 ‘그리스도의 십자가’만 이야기했다. 그 결과, 처음 갈라디아 지방에 생겨나기 시작한 신자들의 무리는 정해진 지도자도, 글로 정리된 교리집도 없었지만 ‘생명력’이 있었다. 그들의 심장에 예수 그리스도가 심어졌을 때, 그들은 인위적으로 학습된 방식이 아니라 그들 고유의 문화와 열정을 통해 유대인들에게는 볼 수 없었던 창의적이고, 독창적인 열매를 거두었다. '본질'에 충실할 때, '가공'될 수 없는 다양성이 생겨났다. 물론 그 다양성은 유대인들에게 수용될 수 있는 형태가 아니었고, 결국 이 갈등이 문제가 되어 ‘갈라디아서’가 쓰여진 배경이 되고 말았지만 말이다.      


교회가 휘청거리는 이유


얼마 전 만난 친한 동생이 남긴 말이 인상적이었다.


“형, 요즘 교회의 특징이 뭔 줄 아세요? 바로 ‘정치’에요. 나라의 정치적 이슈 하나에 교회가 휘청인다는 뜻이에요.”     


그의 넋두리를 들으며 사도 바울이 전한 복음으로 세워졌던 순수한 외국인 교회들이 생각났다. 때로 강대국 황제가 도시에 불을 내고, 그 배후로 지목하여 괴롭히기도 했지만 그들은 정치 세력화되지도 않았고, 그저 핍박을 견디며 선한 삶을 살아내는 그룹으로 남아주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하나면 되었고, 그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그 강대국이 되려 그들을 인정하고 높여주면서 초기 유대인 신자들에게 있던 우월감과 배타성이 똑같이 그들 중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지금까지 교회는 늘 복음의 순수함으로 돌아가기를 투쟁했던 사람들과 십자가 외에 ‘무엇’이 더 필요한 사람들의 싸움터가 되어 왔던 것 같다.


오늘 바울이 우리 옆에 있었다면


지금, 한국의 교회들은 중대한 기로에 놓여 있는 것 같다.

사도 바울이 지금 이 시대를 살았다면 어떻게 했을까.

아니, 그보다 예수님이 이 시대에 오셨다면 어떤 자들에게 칭찬을, 어떤 사람들에게 일갈을 하셨을까.

그나마 야고보와 베드로 사도는 바울 같은 아웃 사이더이자 신참 신자의 핏대 서린 이야기도 잘 들어줄 뿐 아니라 유대인들의 잘못을 인정하고, 수정하였다.

 

오늘날 격전이 벌어지고 있는 교단의 총회에서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아무 것도 알지 않겠다고 하면 어떻게 될까? 

 

어디에서, 무엇으로 불리우고 있는가


여전히 나는 교회에 대한 꿈을 꾼다. 그 어떤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든지,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않기로 작정한, 그리스도의 사람들이 모이는 곳. 그리스도의 심장을 이식받은 사람들이 각자의 고유한 방식으로 삶을 살아내는 현장이자 그 에너지를 수혈받는 근거지로서의 교회.


바울과 바나바가 사역했던 그 교회를 본 안디옥 시(市)의 사람들은 도시의 신자들을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오늘날의 신자들은 과연 어떠한 이름으로 불리우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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