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19는 우리의 일상 속에서 많은 것들을 빼앗아갔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아마도 (오프라인의) 인간관계일 것이다. 코로나 19의 예방책으로 가장 권장 받은 방법이 다름 아닌 ‘사회적 거리두기’였던만큼 오프라인에서의 만남은 온라인으로 이전했고, 온라인으로 이전되지 않거나 그럴 수 없는 만남들은 더 이상 영위하지 못하는 것이 2020년과 2021년의 현실이다.
심리적 저항: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은
사회심리학자 잭 브렘(Jack Brehm)은 어떤 대상에 대한 자유로운 선택이 제한을 받으면 그 자유를 유지하려는 욕구가 강해지면서 이전보다 그 대상을 더 가치 있게 여기거나 더 강렬하게 원하게 된다고 설명한다. 꼭 잭 브렘의 설명이 아니고서라도 부모의 반대에 부딪힌 연인은 더욱 더 사랑이 불타오르게 마련이며, 시험 기간의 드라마 시청은 그렇게도 재미있지 않던가. 이렇게 비자발적인 결핍은 더 큰 보복적 반등을 가져오듯, 코로나로 인하여 일상적인 사교 모임이나 대면 접촉이 희소해지는 것으로 인해 사람들은 오프라인 만남을 이전보다 더 가치 있는 것으로 여기게 될 가능성이 더 높다고 생각했었다.
'안 만나도' 불편하지 않다는 사람들
하지만 시장조사 전문기업인 트렌드모니터가 전국 만 19세~59세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의 결과를 참고하면 우리의 예상과는 반대의 결과가 나온 것을 확인해볼 수 있다.
‘나는 오프라인에서 사람을 만나지 않아도 별로 불편하지 않다’는 반응이 전체 중 68.2%를 차지했으며 ‘나는 사람들과의 만남이 적어져서 불편하다’는 응답은 불과 32.1%에 불과했다. 심지어 종교활동을 했던 사람들 중에서도 ‘나는 종교 활동이 줄어들어서 불편하다’는 응답은 16.6%에 불과했던 반면, ‘의무적으로 종교 활동을 하지 않아서 오히려 좋다’고 응답한 비율은 54.2%에 달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우리의 관계는 과연 '자발적'이었을까
심리적 반발 이론의 설명력이 현저하게 떨어지는 이 역설적 상황은 아마도 한국 사회의 ‘끈끈한 인간 관계’의 실체를 잘 설명하고 있는 듯 하다. 대면모임이나 대면 소통을 전제로 한 끈끈한 인간관계는 사실 자유로운 선택으로만 이루어진 것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맺고 있던, 만나면 즐겁고 웃음이 떠나지 않는 모임들 중 어떤 경우는 어쩌면 억지 웃음과 피상적 관계에 불과했지만 멈출 수 있는 명분이 없어 영위하던 모임들도 있지 않았을까. 만약 오프라인에서의 모임과 대면 상황의 소통에 조금이라도 억압적 요소가 깔려있었다면, 코로나 19는 만나고 싶지 않은 ‘기존의 인간관계’를 피하게 해주는 ‘아주 좋은 명분’이 되었을 수도 있다.
코로나가 쏘아올린 관계의 다이어트
대한민국 지난 1년을 지나오면서 예상치 못한 관계의 다이어트에 돌입했다. 수많은 공식적인 행사가 취소되었으며, 회식도, 미팅도, 가족간의 만남조차 4명이라는 숫자로 제한 받는 시간을 지내고 있다. 이러한 맥락 속에 사람들은 혼자 있는 시간이 많이 늘어났으며 예상치 못하게 얻어진 혼자만의 시간을 지혜롭게 써야 하는 과제를 함께 떠안게 된 셈이다.
만남이 줄어서 외로우신가요?
이 지점에서 또 하나의 조사 결과를 인용하자면 위와 같은 기관인 트렌트모니터의 조사에 따르면 2019년의 경우 10명 중 6명 가량이(59.5%) 일상적인 외로움을 경험한다고 응답한 반면, 코로나 19가 우리의 일상에 강력한 영향을 미치던 2020년 4월 초의 조사에서는 외로움을 느낀다고 응답한 비율이 10명 중 4명 가량(39.6%)으로 다소 줄어들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것은 또 무슨 연유일까. 일상에서 혼자 보내는 시간도 늘었고, 친구를 맺는 데도 소극적인데 오히려 외로움은 덜 느끼는 이유는 무엇일까?
만남이 줄어도 외롭지 않은 이유
외로움의 문제를 연구해 온 심리학자 아미 로카흐 박사는 외로움은 사회적 경험이 사회적 기대를 충족하지 못할 때 생긴다고 설명한다. 예를 들어 결혼을 해야 하는데 하지 못하거나, 친구들과 어울려야 하는데 어울리지 못할 때, 외로움을 느낀다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우리를 둘러싼 환경은 나에 대한 문화적 기대감을 가지고 있는데, 실제 생활이 이 기대감을 충족시키지 못할 때 우리는 외로움을 느끼는 경향이 커진다는 것이다.
이 주장에 비추어보면 조사의 결과가 어느 정도 이해할만하다. 코로나 19의 영향을 받고 있는 지금의 상황은 문화적 기대감을 억제하고 있는 셈이다. 이 시대를 살고 있는 ‘모든 사람이 외로워한다’는 자각이 드는 순간, 역설적으로 사람들은 ‘덜 외롭게’ 느낀다는 것이다.
이렇듯 코로나 19는 인간관계의 비중 축소라는 묵직한 변화를 가지고 왔지만 이에 대해 사람들은 생각보다 불편함과 외로움을 별로 느끼지 못하고 있다. 코로나 19는 인간관계와 공동체 속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평가했던 중심 축을 많은 부분 흔들어놓았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 앞에 내 주변 사람들 속 어딘가에서 답을 찾았던 사람들은 이제 자기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 볼 기회를 얻고 있다. 이러한 조용한 움직임은 지금까지 한국 사회에서의 만남과 모임, 소통에 근본적으로 깔려있던 문화적 전제들을 하나둘씩 붕괴시키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러한 조용한 움직임은 지금까지 한국 사회에서의 만남과 모임, 소통에 근본적으로 깔려있던 문화적 전제들을 하나둘씩 붕괴시키고 있는지도 모른다.
코로나가 쏘아올린 인간관계론
분명 사람과 사람과의 단절은 슬픔을 동반한다. 필자도 지난 주말, 건강에 대해 서로 배려하기 위해 창문을 통해 아내의 할머니를 뵙는데 마음이 참 애잔했던 것이 사실이다. 코로나로 인해 ‘가족의 중요성’을 재발견하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동안 우리가 맺던 관계에 대해 돌아볼 기회라는 점에서도 부정적으로만 볼 현상은 아닌 것 같다. 자기 자신에 대한 성찰보다 비자발적으로 누군가의 신념에 맞추어 ‘관계 중심’으로 살아가는 것이 더 우선이었다면 이번 코로나 상황이 자유를 가져다줄 수 있는 선봉장이 될 수 있지는 않을까.
비자발적 관계들을 청산해내고 나면 오히려 자기 자신이 선명하게 보일 수 있을지 모른다. 처음으로 거울에 비친 자신과 악수를 청하노라면 밤까지 술잔을 기울이며 타인에게 쏟던 관심이 자신에게 이전해오는, 그래서 더 자신을 사랑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관계가 축소되는 대신, 정말 인생에서 중요한 사람들과 ‘질적’으로 더 깊은 관계에 들어가는 복을 얻을 수도 있다.
가족과 자신의 내면에 귀 기울일 수 있는 복(福)
이처럼 지금의 코로나 19 상황은 관계의 위기이자, 기회일 수 있다. 나도 이번 기회를 살려서 나 자신을 더 찾아야겠다. 사회적으로 가장 많은 요구를 받을 30대의 시기,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이 사치처럼 느껴지던 그 순간, 코로나는 다시 본연의 질문 앞에 서게 해 주는 것 같다. 나 자신을 다시 찾고, 사회적 요구보다 내 내면의 목소리와 사랑하는 가족들의 목소리에 더 귀 기울일 수 있게 되는 행복을 찾는다면, 코로나로 잃어버린 것들을 아쉬워할 필요마저 없을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