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음 Nov 15. 2021

인생 호캉스 실험

삶에 찍힌 뜻밖의 인생 쉼표

호캉스.


그런 말은 내가 어렸을 때는 없었다.


바쁜 현대인들은 멀리 여행을 떠나기가 어려워 잠시라도 일상적인 공간을 떠나고자 했었나보다. 처음에는 하나 둘 정도가 하는 특이한 여행이었을 것이나 이것이 보편적인 현상이 되니 신조어가 생겼다. 호텔과 바캉스를 합성한 단어, 호캉스.

바쁜 현대인들은 멀리 여행을 떠나기가 어려워 잠시라도 일상적인 공간을 떠나고자 했었나보다.


호캉스라는 말이 생기기 이전부터 아내는 ‘호캉스’를 즐기곤 했다. 무슨 대단한 호텔을 다닌 것은 아니었다. 그저 잠시나마 익숙한 환경을 떠나 이런저런 일상적 걱정을 내려놓고 휴식을 취하곤 했는데, 아마도 그녀는 ‘현대인’들보다 그 묘미를 일찍 알았었나보다. 나도 처음에는 호캉스의 효과에 대해 반신반의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호캉스의 효과를 몸소 경험하게 되었다. 적어도 호텔방에 누워있으면서는 나를 규정하던 사회적 맥락을 떠나 온전히 나로 존재할 수 있었다. 휴대폰까지 꺼놓으면 금상첨화. 나의 경우는 호텔방에 있는 TV조차 켜지 않는다. 그렇게 스스로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우리는 ‘휴식’이라고 불렀던 것 같다.


잠시동안의 휴식은 일상을 빛나게 한다. 그런데 이러한 ‘호캉스’의 개념을 인생 전체에 확장해보면 어떨까? 

하루 이틀 호텔방에 들어갔다 나오는 것이 나에게 온전히 집중하는 효과가 있다면 그 원리를 인생의 거시적 단계에 적용해본다면 삶은 어떻게 달라질까?



나의 경우, ‘인생 호캉스 실험’을 일부러 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너울성 파도처럼 어느새 눈 앞에 다가와 있었다. 피할 수 있다고, 피하면 된다고 생각할 즈음에 부드럽게 인파들을 삼키는 파도처럼, 나에게 인생 쉼표는 불현 듯 다가왔다.


나에게 인생 쉼표는 불현 듯 닥쳐왔다.


오래 살아오진 않았지만 그렇게 쉴 휴(休)자를 공식적으로 내 기록에 남긴 것은 처음이 아니었나 싶다. 그저 빠르게 사회적 급물살을 타고 살아왔었다. 스물여섯. 지금 생각해보면 무엇을 알았을까 싶은 나이에 대학의 교직원으로 일하게 되었다.


그리고 서른 일곱이 되던 해, 내 인사기록 카드에는 처음으로 공백이 생겼다. 그 자리에는 일하는 부서 대신 ‘휴직(休職)이라는 두 글자가 기록되었다.


- 다음 편에 계속 -

매거진의 이전글 다시, 글을 씁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