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음 Nov 19. 2021

회사 일이 제일 쉬웠어요

'보기 싫은 나'를 보지 않아도 되거든요

자아의 빈곤 현상


낯선 곳에서 시작된 여행과도 같은 삶. 


하지만 ‘나답게’ 존재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은 역설적이게도 ‘나’라는 장애물을 만나 조금씩 표류하고 있었다. ‘나답게’ 존재하고 싶은데 ‘나다운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는 눈앞의 현실. 자아가 있어야 실현을 할텐데 실현할 자아가 고갈되어있는 역설적 빈곤 현상. 가끔씩은 내가 속했던 조직과 공동체에 다시 속하고 싶다는 충동이 일어날 정도로 ‘자아의 빈곤’은 생각보다 심각했다. 여행과 같은 삶은, 자유로부터 도피한 채 만성적으로 살아온 사람에게는 자물쇠로 굳게 잠긴 보물상자 같은 것이었나보다.

‘자아의 빈곤’은 생각보다 심각했다.


조해리의 창


처음에는 이 상황을 스스로에게 설명하기가 쉽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춘기와 같은 진통을 겪는 과정 속에서야 나는 어렴풋이 이 역설적 상황의 실체를 희미하게나마 파악해가고 있다.   

  

내가 처했던 상황을 조금이나마 와닿게 공유하고 싶은 마음에 심리학의 매트릭스를 하나 빌려오고자 한다. 그 매트릭스의 이름은 ‘조해리(Joharry)의 창’. 이를 연구한 조셉 러프트(Joseph Luft)와 해리 잉햄(Harry Ingham)의 이름의 일부를 따서 이름이 붙여졌다.   

 


조해리의 창


이 매트릭스에서는


1. 나에 대해서 자신도 알고, 타인도 아는 영역을 ‘열린(open) 창’, 즉 ‘공개’된 영역이라고 부른다.

2. 나에 대해서 나만 알고 타인은 모르는 영역을 ‘숨겨진(hidden) 창’, 즉 ‘은폐’된 영역이라고 부른다.

3. 나에 대해서 자신은 모르고, 타인이 아는 영역이 있다면 이는 ‘보이지 않는(blind) 창’, 즉 ‘무지(無知)’의 영역이라고 부른다.

4. 나에 대해서 자신도 모르고, 타인도 모르는 영역이 있다면 이는 ‘미지(未知, unknown)’의 영역이라고 부른다.     


무지’와 ‘미지’의 영역은 자기 자신은 자각하지 못하지만 삶에 영향은 크게 미친다. 이 두 영역은 ‘무의식’의 영역이라고 불리운다.     


'좋은 모습'으로만 사는 삶


휴직 이전 생활의 경우, 나는 조직과 공동체에서 보내는 시간이 가정에서 보내는 시간보다 압도적으로 많았다. 회사에 가지 않는 주말에도 우리 가정은 주로 교회 공동체에서 시간을 보냈기 때문에 실제로 가정 단위로만 존재했던 시간은 그리 많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공동체 생활에서는 아무리 가까운 관계라도 해도 자기 자신의 여러 모습 중 ‘전체 공개’가 가능한 ‘좋은 모습’으로 살아가기가 쉽다. 이러한 ‘좋은 모습’은 ‘칭찬’과 ‘인정’이라는 순환으로 이어지면 더더욱 강화된다.   


하루 종일 까치발을 들고 산다면


‘칭찬’과 ‘인정’은 선순환 구조일까, 악순환 구조일까. 그것은 나 자신의 내적 동기에 따라 다른 것일 수 있다. 만약 ‘좋은 모습’이 아니었을 때 받을 수 있는 ‘비난’이나 ‘탈락’, ‘관계에서의 끊어짐’ 등이 두려워서 사회적으로 요구되는 모습에 자기 자신을 맞추려고만 한다거나 공개의 영역을 더 좁히려고만 하게 된다면 이는 행복할 수가 없는 삶이 될 것이다. 마치 키가 큰 사람이 되고 싶어서 상대적으로 키가 작은 사람이 까치발을 들고 다니는 것과 같은 삶이 될 수 있다. 백조가 오리 속에 있을 때, 오리 무리에서 탈락하거나 비난 받기가 두려워 오리와 똑같이 살려고 했던 모습도 이와 같은 맥락이 될 수 있다.     

자기 자신을 맞추려고만 한다거나 공개의 영역을 더 좁히려고만 하게 된다면 이는 행복할 수가 없는 삶이 될 것이다


나는 좋은 사람이었을까, 겁쟁이였을까


나의 ‘사회 생활’은 '공개된 영역'의 자아로 이루어졌다. 평판과 인정이 조직 속에서 쌓여가며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생활이 편해지고, 원만해졌다. 시간의 무게 중심이 사회 생활에 있으니 나의 공개된 영역 바깥에 무엇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별 고민이 필요 없었던 것 같다. 가정만큼은 깊은 관계가 필요한 곳이었고, 아내가 그러한 관계에 대해 SOS를 지속적으로 보내왔지만 나는 ‘사회 생활 모드’의 연장선으로도 충분히 해결 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나중에서야 이러한 생각이 큰 오판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사회 생활 모드가 정지되고 나서야 ‘공개 영역’이 아닌 내가 고의로 은폐했던 자아, 그리고 나 스스로도 인지하지 못했던 자아를 직면하게 되었다. 사실 그것들은 사회 생활을 할 동안에도 가장 가까운 사람들을 통해서  들어왔던 나에 대한 정보들이었다. 다만 자존심 때문에, 상대방이 나에 대해 모른다고 생각하거나, 내가 스스로를 잘 안다고 생각해서 부정해왔던 조각들이었다. 조직에 속할 때에는 의식의 수면 아래 놓여있는 빙산의 거대한 덩어리들을 차분히 살펴볼 필요가 크지 않았다. 직장에서든 교회에서든 나도 알고, 타인도 인정하는 영역만으로도 충분히 기능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정이나 정말 가까운 사람들과의 관계는 달랐다. 수면 위로 약간 솟아 있는 빙산의 일부만 보여주면서 살 수만은 없었다. 수면 아래 놓여있는 거대한 빙산 덩어리. 은폐와 무지 속에 방치되던 그 영역을 이제 눈 감을 수 없게 된 것이다. 말로만이 아니라 마음과 물리적 시간, 미래 계획에 대한 방향성이 가정에 집중되고 나서야 나는 이 심각한 문제를 직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시간이 더 지날수록, 나의 진짜 문제는 '무지'가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몰랐던 것이 아니라 어렴풋이 알면서도 나 자신의 어두운 실체를 받아들일 용기가 없어서 부정해왔는지도.

은폐와 무지 속에 방치되던 그 영역을 이제 눈 감을 수 없게 된 것이다.


나를 찾는 첫 번째 관문: 용기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용기’

그것이 내가 여행과 같은 이 시간동안, 내 정체성을 찾기 위해 통과해야 할 첫 관문이었다.     


-다음 편에 계속-

매거진의 이전글 면도를 하지 않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