푹푹 찌는 한 여름 열대야 속 7월 마지막 주 토요일 밤. 한강을 걷는 한강 나이트 워크에 참여했다. 그냥 서 있기만 해도 땀이 줄줄 나는 그 밤에 왜 그런 짓을 했냐고 묻지 마시라. 얼리버드 신청을 받던 3달 전에는 날씨가 선선했었고 7월 말이 무지 덥다는 사실은 30년을 넘어 이제 40년 가까이 살아가고 있는데도 매년 잊고 닝겐은 같은 실수를 저지르기 마련이다. 얼리버드라는 할인의 달콤한 유혹에 빠져 나는 또 저지른 것이다. 평소 달리기라면 질색하는 지인들이라 달리기 대회는 같이 갈 사람이 없었던 터였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밤에 한강을 걷는 거라 시원하고 이벤트도 많이 해서 선물도 준다고 밑밥을 깔았더니 보기 좋게 걸려들었다. 한두 명이 신청을 한다고 하니 걷는 것은 만만해 보였는지 10명 가까이 함께 하게 된 즐거운 상황. 얼리버드 신청할 때까지도 날이 이렇게 더울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지 뭐야.
행사 있던 날 당일은 오전부터 비가 죽죽 내렸다. 저번 트레일러닝 때도, 요가 페스티벌 때도 그렇게 비가 오더니 또 비야? 이제 그냥 그러려니 하기로 한다. 비가 아예 많이 오기를 내심 바랬다. 행사가 취소되면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안 가게 되는 거니깐. 하지만 비요정은 나의 마음을 몰라주고. 우리가 출발하기로 한 저녁 8시에는 비는 사라졌고 한강공원 곳곳에 물웅덩이와 젖은 잔디만 남기고 유유히 떠나버렸다. 야속한 비여~~ 나이트워크는 15K, 22K, 42K가 있고 오후 6시부터 밤 12시까지 출발시간을 정할 수 있다. 이 더위에 42K를 밤새 걷는 것은 대체 어떤 사람들이 하는 걸까. 세상에 무모한 사람들이 많다(나를 포함하여). 22K와 15K 중 고민하다가 대중들과 함께 하다 보니 15K를 선택했다.
코스는 여의도공원 녹음수 광장에서 시작하여 잠수교까지 가서 잠수교를 건너 돌아와 마지막에 원효대교를 건너면 된다. 처음 시작지점인 녹음수 광장에서부터 잔디밭이 이미 젖어 있어 신발에 물이 들어왔다. 러닝화를 신고 갔더니 신발 사이 구멍으로 물이 슝슝 들어왔고 신발은 시작 전에 이미 만신창이가 되어버렸다. 이벤트 부스에서 다양한 브랜드들이 마케팅을 펼치고 있었다. 인스타 팔로잉과 카카오톡 친구 추가를 하면 이것저것 작은 선물을 주고 있었다. 이 맛에 각종 대회에 참여하는 나다. 줄이 너무 긴 것은 패스하고 줄 없는 곳에 가서 치킨 샘플, 음료, 콤부차, 바디비누 등등을 수집하였다. 미리 왔어야 했는데 날이 더워서 늦장 부리는 바람에 이벤트 참여는 조금밖에 못했고(아쉽) 짐을 맡기고 바로 출발했다.
진흙바닥이 보이시나요.
시작하기 전부터 땀은 줄줄 났지만 오랜만에 한강을 걷는다는 생각에 신났고 평소에 이야기를 많이 나누지 못했던 친구들과 오손도손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행복했다. 모두가 같은 옷과 양말, 가방을 메고 동시에 많은 사람들이 한강을 걷고 있다. 혹자는 한강 그거 그냥 걸으면 되지 뭔 돈을 주면서 걷냐고 할 수도 있다(참가비:15K 기준 46,000원, 얼리버드는 43,000원, 기념티, 실내화가방, 양말, 완보 시 메달, 간식 등 증정). 그래서 평소에 걸으시나요? 이런 행사가 있는 김에 걷는 것 아니겠는가. 희소성이 있기 때문에 굳이 굳이 이 여름밤에 걷고 있는 것이다. 추후에 주관사(어반스포츠) 인스타를 보니 걷기 행사는 여름에만 하는 건 아니고 봄, 가을에도 있더라(스프링 워크, 브릿지 워크).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여름밤 걷기가 의미가 있지. 날이 선선하면 15K 걷는 거야 식은 죽 먹기 아니겠는가. 하지만 한 여름은 어떠한가? 사람은 고생을 할수록 기억이 미화되고 행복감이 더 커진다.
15K는 걷는데 3시간 정도 걸리고 중간에 쉬고 정리하다 보니 끝나니 12시가 넘어버려 막차가 뚝 끈기는 시간이더라. 출발시간과 끝나는 시간을 잘 계산해서 신청해야 한다. 걷는 동안 한강을 뛰는 많은 인파와 자전거족을 구경할 수 있었다. 중간중간 상의 탈의하고 뛰는 젊은 남정네들을 보며 눈 호강을 하기도 했다(여름 만세). 한강은 좋은 것이여! 잠수교까지는 지인들과 수다를 떨고 눈 호강을 하며 그럭저럭 힘들지 않게 왔다. 잠수교를 건너 간식(단백질바)을 받고 음료를 마시며 쉬는 시간을 가졌다. 이후 절반 코스는 조금 지루했다. 강북 쪽은 강 아래 쪽보다 한산하여 상의탈의족도 없고 주변이 공원이라기보다 계속 길만 이어진 느낌이었다.
온몸은 이미 땀에 절여져 있었다. 우리는 핸드폰으로 노래를 틀어버렸다. 주변 사람들에게 민폐적 행동이긴 하나, 같이 온 친구가 너무 힘들어해서 노래라도 틀었다. 강 아래쪽보다는 혼잡도가 덜해 민폐를 조금 덜 준 거라고 스스로 생각한다. 옛날 노래를 들으며 노래를 냅다 불렀다. 이미 시간은 11시가 넘어갔고 몸은 지치고 더우니 약간 정신을 놓아버렸는지도. 노래방을 왜 돈 내고 가나? 한강이 노래방이다. 마지막 원효대교를 돌아오는 구간은 다리가 끝나질 않더라.
아름다운 밤, 원효대교
빨리 집에 가서 샤워를 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노래에 의지한 체 겨우겨우 한 발 한 발 내디뎠다. 다리를 건너니 드디어 피니시 라인이 보였다. 기념 메달을 받고 무대에서 사진을 찍으니 도파민이 마구마구 샘솟는다. 힘들었던 기억이 미화되기 시작한다. 역시 이 맛에 고생하는 거지! 다들 땀에 절어 뒤풀이도 없이 집으로 돌아갔다. 내년에는 밤 12시에 출발해 해 뜰 때 돌아오는 22K를 가보기로 친구와 다짐했다. 지금이야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다. 온몸은 땀으로 샤워를 했고 머릿속은 도파민으로 샤워했다. 도파민에 취하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