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설악 그란폰도의 여운
작년의 설악그란폰도를 완주하고 나서 Fun ride를 굳게 다짐하며 다음 설악에서는 메디오를 돌고자 마음을 다잡았지만, 결국 24년의 새해가 다가오자 나의 마음은 기록경신 쪽으로 마음이 쏠렸다.
23년 겨울을 스마트로라로 잘 보냈다고 생각했고, 올해에도 주말마다 한강, 동부고개를 다니며 열심히 체력을 다졌다고 생각했다.
저수령 그란폰도를 다녀오고, 홍천 그란폰도를 완주하면서 더욱더 설악 그란폰도가 기대가 되었고, 날짜가 점점 다가올수록 긴장감과 설렘으로 내 몸은 이미 상남에 있었다.
가능하면 보급소중에 1 보급소는 패스, 3 보급소에서 가득 때려 넣고 4 보급소에서 리버스 구룡령을 대비하여 크램픽스와 물을 보충하려 하였다. 특히 이번 라이딩은 200킬로가 넘기에 나의 고질병인 다리에 쥐가 나는 걸 대비하기 위한 준비를 철저히 하였다. 마그네슘 스프레이, 여분의 크램픽스, 고 카페인 음료 등과 함께 파워젤을 챙겼다. 특히 일본 여행 시에 구매한 카페인 음료의 효과에 대한 기대 또한 컸다.
제발! 제발! 제발에 쥐가 찾아오지 않기를 기도하며 ~
대회 전날, 구매한 배번을 어떻게 달지 고민고민 하다가 다이소 양면테이프로 붙이기로 결정하고 당일 입을 져지에 말끔히 부착했다. '제발 제발 나락으로 떨어지지 말기를', '제발 제발 내일 새벽에 시원하게 배출이 이루어 지기를', '제발 적당한 팩을 만나기를', '제발 제발 제발에 쥐가 찾아오길 않기를', '제발 제발 제발 ~~~ ' 기도하며 잠을 청했지만 잠은 올 생각이 없는 듯했다.
뒤척이다 겨우 잠들었지만 1시간 단위로 깨고 자고 한 것 같다.
새벽 4시 20분 출발하여 1시간여를 달려 도착 전 내린천 휴게소에서 마지막 화장실을 다녀온 후 오미재 터널을 지나 길가에 아슬아슬하게 주차를 할 수 있었다.
그럼 그렇지. 결국 큰 신호가 찾아온다. 다행히 주차한 곳 바로 근처에 이동식 화장실이 있어서 어렵지 않게 큰일을 치를 수가 있었다.
올해로 3년째 참여 중인데, 정말 참여자가 더 많아진듯한 느낌이었다.
출발선으로 이동하려 하는데, 누군가가 검문검색?을 하는 듯 보였다. '천천히 입장하세요. 기록칩 보여주면서 입장할게요'
올해 초 있었던 그란폰도에서 고스트로 출전하고 보급소에서 보급을 당당히 받은 라이더들이 조금 이슈가 되긴 했는데, 운영 주최 측에서 이를 바로 반영한 듯하다. 발 빠른 대응에 박수를 보내고 싶었지만, 결국 배번이 없는 고스트 참여자는 어디서 어떻게 기어 들어왔는지 대회 중에 간간히 볼 수 있었다.
출발선 근처까지 간 이후에, 뛰는 심장을 부여잡고 출발신호를 기다렸다. 내 일 년의 노력의 결실을 확인하라는 근엄한 신호는 7시에 맞춰서 폭죽소리에 함께 상남면에 퍼졌다.
출발과 함께 힘차게 자전거에 몸을 맡긴다. 페이스 조절을 위해 적당한 속도의 팩에 맞춰서 살둔고개를 지나고, 어느새 구룡령 업힐 구간이 왔다. 생각보다 쉽게 구룡령을 업힐 구간을 오르면서 보급소를 지나칠까 생각하다가 다음 보급지까지 50 킬로를 더 가야 하는 상황이라 물을 채우기로 하였다. 사람이 사람이 참 많다. 다른 보급을 하려면 줄까지 서야 할 판이라 계획대로 물만 후딱 채우고 다시 내달렸다. 위험한 곳에서는 안전요원들의 통제가 적적히 이뤄지고 있었지만 역시 중앙선 침범은 비일비재하게 보였다. 특히 다운힐 하면서 포토존에서 앞 자전거와의 일정 거리를 벌리기 위한 급브레이크로 인해 아찔한 순간도 있었지만 다행히 끝까지 안전하게 내려왔다.
작년에 비해 구룡령 업힐도 괜찮았고, 연이어 있는 조침령도 무난하게 내 페이스대로 오를 수 있었다. 조침령을 내려오면서 이번 설악은 10시간 이내로 찍을 수 있겠다는, 앞자리를 9로 바뀔 수 있겠다는 희망을 가졌었다. 이런 희망 때문이었을까? 그란과 메디오 분기점에서 당당히 우회전을 하면서 조금 의욕이 넘쳤다.
쓰리재를 오르면서 조금 허벅지가 잠기는 느낌이 있었지만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리고 좀 있을 보급만을 생각하며 힘찬 페달을 이어갔다.
한계령전 3차 보급지에서 약 10분 동안 실컷 마셨다. 몸의 수분이 부족하면 쥐가 날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지기에. 그렇게 보급을 마치고 한계령을 오르는데 , 작년에는 보이지 않던 풍경이 눈이 들어왔다.
와 여기 이렇게 멋진 곳이었구나. 계곡도 너무 좋다. 언제 가족과 와도 좋겠다.
경치가 보인다는 건, 여유가 있다는 것이고, 여유는 몸의 상태와 정신 상태가 좋다는 것이고, 고로 나는 그란 208킬로 완주를 무사히 할 것이고, 결국 앞자리 숫자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이겠지. 기분이 좋았다. 한계령을 다운힐 할 때까지만.
결국 한계령을 다운힐 하고 서림삼거리를 가면서 허벅지 안쪽부터 쥐가 나기 시작했다. 아 결국 내 다리는 온통 쥐로 가득 찼다. 준비한 크램픽스와 카페인 음료를 급히 마시고 조금 완화가 되었다. 그래서 꾸역꾸역 2차 컷오프인 서림삼거리를 1시 15분 정도에 통과는 하였다. 구룡령 본격 업힐이 시작되는 곳이 다다르면서 내 다리의 쥐는 다시 찾아오고 먹이를 찾는 하이에나처럼 내 다리의 이곳저곳을 움직여 다녔다.
다행히 작년에는 있었던 10km 팻말이 보이지 않아서 일단 한시름 놨다. 작년에 그 숫자를 보고 포기할 뻔했는데 차라리 없으니 심적으로는 부담이 덜했다.
약 3 킬로 오르다가 페달에 힘을 잘못 쥐서 근육에 상상을 초월하는 경련이 찾아왔다. 쥐가 나면 보통 페달링을 천천히 하면서 달래면서 돌리면 조금 완화가 되고 계속적으로 페달링은 이어갈 수 있다. 그러나 이번은 참을 수가 없어서 잠시 내리기로 했다. 클릭을 빼려고 힘을 주니 온 다리의 통증이 너무 심해져서 페달에서 클릭을 못 빼고 넘어질 뻔하였다. 역시 예상대로 내리니 통증은 더 심해졌고 움직일 수 도 없었다.
절대 다리에 쥐가 나면 살살 풀면서 페달링을 계속해야 한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다.
내려서 잠시 누워서 하늘을 볼 수밖에 없었다. 원치 않던 행동이었지만, 맑은 하늘을 보니 살 것 같았다. 약 10분여를 누워있다 보니 다시 자전거에 오를 수 있는 힘이 생긴듯하여 다시 리버스 구룡령 정상을 향해 페달링을 조심스럽게 하여 결국 5 킬로 푯말을 보고, 3 킬로, 1 킬로 푯말을 지나치면서 해탈을 경험했다. 다리, 엉덩이, 팔의 근육통과 완주를 하겠다는 집념, 시간을 단축하겠다는 집착의 고뇌로부터 해방됨을 느꼈다. 내가 정신이 나간 것인지 그냥 남은 1킬로의 이 순간에 나 자신이 진정 살아있음이 절실하게 느껴졌고, 그냥 오르는 지금이 편안하게 느껴졌다. 사막을 헤매다가 오아시스의 환영이 눈앞에 펼쳐지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리버스 구룡령 보급에서 이온음료를 가득 채우고 기쁜 맘으로 욕심 없이 내달렸다. 역시 리버스 구룡령의 다운힐은 다운힐이 아닌 평지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었지만. (바람 때문에 내가 다운힐을 하는 건지 업힐을 하는 건지 헷갈렸음)
10시 13분으로 피니쉬 하였다. 신기하게도 리버스 구룡령부터 피니쉬 라인까지 쥐는 사라진 지 오래였다. 마음을 비우니, 몸도 비워지고, 근육의 힘도 빠지고, 자연스레 쥐가 풀린듯한 느낌적인 느낌이었다.
24년 설악 그란폰도는 한마디로 나에겐 아직 부담스러운 존재지만, 이제는 아니 25년부터는 지금보다는 훨씬 즐기면서 편안한 마음가짐으로 탈 수 있을 것 같다.
완주도 하였고 작년보다도 기록은 좀 더 좋아졌지만 기록에 연연하지 않으리라.
다치지 않고, 완주한 나에게 '토닥토닥' 해본다.
매년 그란폰도 대회에 많은 이슈가 터져 나오고 올해 설악은 더욱 많은 이슈, 가십거리가 나온 것 같다. 도싸 게시판이 설악으로 물들었었다.
그래도 좋은 추억만 가져가련다. 내가 나와의 싸움을 위해 도전한 그란폰도였으니, 그냥 이대로 만족한다.
내년 설악은 또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