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 승리하기

메신저에서 큐레이터로

by 삶에충

메신저에서 큐레이터로

어떤 날은 하루 종일 말을 옮기다 퇴근한다.

오전 회의에서 들은 내용을 정리해 다른 팀에 전달하고,
기획팀의 요청을 기술팀의 언어로 바꿔 설명하고,

현장의 불만을 본사 보고용 문장으로 정제해 메일을 보낸다.

메신저 창은 계속 깜빡이고,
메일함에는 '요청드립니다', ‘전달드립니다’라는 제목이 쌓여간다.

그날 내가 한 일의 대부분은 ‘무언가를 만들었다’기보다
‘누군가의 말을 대신 전했다’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팀과 팀 사이, 부서와 부서를 오가는 통로처럼 움직인다.
질문을 받고, 취합을 하여 답을 받고, 다시 건너편으로 넘긴다.
마치 사람 사이에 놓인 전선처럼, 신호만 통과시킨 채 스스로는 비워져 있는 느낌.

그 역할은 분명 필요하다.
정보가 흐르지 않으면 조직의 모든 움직임은 멈춘다.
누군가는 연결해야 하고, 누군가는 전달해야 한다.


메신저와 큐레이터의 차이

메신저는 수신된 메시지를 그대로 전달한다.
큐레이터는 수신된 메시지를 이해하고, 정제하고, 맥락을 부여하여 가장 가치 있게 전달한다.

메신저는 전달형이다. 큐레이터는 의미형이다.

메신저는 원문을 옮긴다.
큐레이터는 맥락을 읽는다.

메신저는 내용을 보낸다.
큐레이터는 의미를 만든다.


흐르게만 하는 사람과 흐름을 설계하는 사람. 이 둘의 차이는 명확하다.


단순 전달자가 아니라 가치의 전달자

누군가가 보내준 메시지를 그대로 적어 전달하는 것은 쉽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실무의 현장에서는 작은 문장의 차이 하나가 큰 혼선을 만들기도 한다. 또 때로는 메시지 자체가 명확하지 않아, 전달만으로는 상대가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그럴 때마다 각자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야 한다.


“이 말은 정말 무엇을 의미하는가?”
“상대방은 어떤 맥락에서 이 말을 이해해야 하는가?”
“이대로 전달했을 때 어떤 변화가 일어날 수 있는가?”


그 질문들은 단순히 전달을 넘어 의미를 꿰는 일이 될것이며, 점차 메신저로서 전달자의 역활을 넘어설 수 있다.


큐레이터로 일한다는 것

큐레이터로 일한다는 것은 단지 말을 바꾸어 쓰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맥락을 재구성하는 일이다.
그것은 가치를 찾아내는 일이고, 그것은 조직의 다음 방향을 고민하는 작은 철학이 깃든 일이다.


내용을 취합하고 전달하기 전에 메시지에 생명을 불어 넣어줘야 한다.
단순히 오타를 잡는 수준이 아니다. 말속에 담긴 맥락과 목적, 감정과 부서 간 관점을 헤아리는 일이다.

때로는 메시지 자체가 틀린 게 아니라, 어디에 초점을 두어야 할지를 분명히 해야 하는 순간이 있다.
그럴 때 나는 여러 부서의 관점을 다시 정리하고, 때로는 고민의 지점을 재배치해야 한다.
그 결과물은 단순한 전달 메모가 아니라, *가치 있는 안(案)*으로 바뀐다.


큐레이터로서의 고민과 책임

큐레이터는 메시지를 보내는 사람이 아니다.
큐레이터는 메시지를 만드는 사람도 아니다.
큐레이터는 메시지의 가치를 끌어내고, 조직의 방향에 맞게 다듬어 전달하는 사람이다.

이 역할에는 책임이 따른다.
그 책임감은 때로 무겁다.
왜냐하면 당신이 부여한 해석과 구조가 다른 부서의 업무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책임감은 당신을 성장시킨다.

메신저로만 남았을 때, 당신은 단지 흐름을 옮기는 사람일 뿐이었다.
큐레이터로 서보면, 당신은 메시지의 중심을 보게 된다.
그리고 메시지를 통해 조직의 흐름과 방향을 이해하게 된다.

업무의 깊이를 이해하고 방향을 제시함으로써 성장의 기회와 역량의 발전이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마침내

나는 오늘도 메시지를 받는다.
그리고 그것을 큐레이션 한다.

나는 오늘도 메시지를 전달한다.
하지만 단순히 보내지 않는다.
나는 그 메시지에 숨결을 불어넣는다.


직장에서 성장하는 사람은 정보를 많이 아는 사람이 아니다.

정보사이의 관계를 보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