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삶에충 Apr 19. 2024

나를 위해 오롯이 나로 살기로 했다

나를 위해 오직 나만을 위해 

지금까지 무탈하게 국민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내가 무얼 좋아하는지 무엇을 하고 싶어 하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덜컥 취직이 잘된다는 건축공학과를 택하고 졸업하였다. 

졸업 이후 직장인이 되어 뿌듯해하시는 부모님을 보며 나 자신에게 토닥토닥해주며 하루하루 바쁘지만 왠지 모른 허무함을 달래며 지냈다

이런 나에게 작디작은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2007년 그해 여름이었다. 


필리핀에서 일하는 친구를 만날 겸 찾아간 바탕가스에서 시작되었다.

필리핀 남부지역의 바다, 푸르른 바다, 어디까지 바다이고 어디서부터 하늘인 건가. 하루종일 항상 바다를 보며 멍 때리기 시작했다. 굽이굽이 좁다란 골목을 지나 나타나는 자그마한 철망이 쳐진 가게에서 차디찬 산미구엘을 사고 다시 바닷가로 와서 벤치에 앉아 먹던 그 맛은 지금까지도 종종 잊히지 않는 기억으로 남아있다. 

내가 바다를 이렇게 포근하게 느꼈었던가? 아니면 지금껏 살아오면서 이런 시간을 가지지 못해 모르고 지내온 것인가? 그날 이후 성난 태풍에 밀려오는 파도처럼 한순간에 바다가 내 안에 들어왔다.

먼바다를 계속 보다 보니 물속이 어떠한지, 동남아의 바닷속은 어떻게 다른지 궁금하기 시작했다. 누군가가 무겁고 커다란 공기통을 등에 메고 보트를 타고 나가는 것을 무상무념으로 간간히 쳐다보다가 처음으로 궁금증이 밀려왔다. 저게 스쿠버다이빙이라는 것인가?  

지금까지 부모님, 선생님, 할머니 그리고 친인척 말만 듣고 충실하게 요구사항 등을 이행했었는데, 스쿠버다이빙은 어느 누구도 해보라고 하지 않았지만 내 마음은 이미 바닷속을 헤매며 다이빙 흉내를 내고 있는 듯했다.  

라이선스를 취득해야만 스쿠버다이빙을 할 수 있고, 오픈워터, 어드밴스, 레스큐 등 다양한 종류의 라이선스가 있는 것도 그때 알았다. 한걸음에 다이빙샵을 찾아가 교육신청을 하고 2박 3일간의 엄격하고 타이트한 교육이 진행되었다. 

내 인생 첫 다이빙을 하던 순간, 몸의 부력을 조절하지 못해 다리와 팔은 계속 허우적대고 있고 수심이 깊어짐에 따라 귀는 더욱 아파왔다. 상상했던 다이빙은 이미 온데간데 없어진 지 오래였다. 

악몽 같았던 바다로의 일탈이 끝나고 돌아온 숙소에서 친구에게 연거푸 바닷속이 어떠했는지 거짓부렁을 하였다. 지금 기억해 보면 첫 다이빙에서 본건 오로지 나의 웻슈트와 허우적거리는 손, 그리고 오리발이 전부였다. 


이후 매년 4번 정도의 다이빙투어를 다니고 있다. 

스쿠버다이빙은 내 인생에서 나를 좀 더 알아갈 수 있었던 나의 오래된 친구와 같다. 

딥다이빙을 하고 수면으로 올라오기 위해 안전정지를 하며 고요한 바닷속에서 무중력상태로 가만히 있으면 오롯이 나만 생각할 수 있고 나만 느낄 수 있으며, 적막함 속에서 내가 뿜어내는 공기방울 하나하나의 떨림과 울림까지도 귀 기울여 듣게 된다.


다이빙을 하러 필리핀 이외에 팔라우,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태국 등 바쁘게 다녔다. 

20년 2월 말 팔라우 다이빙을 마치고 귀국길에서 코로나의 전파, 격리, 해외입국 금지라는 무서운 말들을 연달아 듣게 되었다. 설마라는 의구심은 진실이 되어 버렸다.  

그냥 잠시 지나가겠지 했는데 큰 착오였다. 

나에게는 아주 큰 악재가 아닐 수 없다. 코로나로 인해 그나마 나를 위로해 주었던, 1년에 단 4번만 허락된 약 15일간의 스쿠버다이빙을 갈 수가 없게 된 것이다. 무엇인가 대체할 만한 것이 필요했다. 

그때 나의 다이빙 버디였고 대학교 동창인 친구가 자전거를 추천했다. 처음에는 자전거나 타라고? 재미가 있으려나? 하는 찰나에 친구가 건넨 여권. 자전거를 타는데 여권이 필요하다? 자전거 여권에는 전국 곳곳에 설치되어 있는 스탬프를 찍게 되어 있고, 이걸 다 찍으면 살아오면서 받을 수 있다고 상상도 못 했던 국토부장관상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나와의 도전. 완전 내 스타일이 아닐 수 없었다. 

살아오면서 가족과 함께 캠핑을 다니고 트랙킹을 다니며 여행을 가는 것이 좋았었다. 그러나 결국 여행지에서 나는 가이드가 되기가 일쑤였고 투어의 불만족에 대한 컴플레인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래서 가끔씩은 나 혼자 원하는 곳으로 여행 가고 숙박을 하며 전국 곳곳을 누려보는 것도 좋겠다 는 생각을 종종 해왔었다. 

이제 자전거를 타고 전국 자전거 도로를 누비며 여행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중고나라, 도싸등 사이트를 알아보면서 로드 자전거를 중고로 질렀다. 


나의 첫 애마로 트렉의 에몬다를 구매하고 자전거 국토종주의 시작점을 향해 달려갔다. 

친구와 함께 사진을 찍고 대망의 국토종주 라이딩이 시작되었다. 이때는 아무것도 모른 체 자전거는 그냥 페달만 잘 굴리면 알아서 잘 굴러간다 생각했다. 그러나 그건 마실 정도의 동네에서 타는 자전거를 일컫는 말이었다. 그걸 인지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허리의 근력, 허벅지와 종아리의 지구력, 어깨와 팔의 근력이 상당히 요구하는 운동이었다. 2시간 이상 타면 나타나는 엉덩이의 찢어질듯한 아픔을 비유하자면  곤장을 맞아 죽지 않을 정도의 아픔이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도(일반 자동차 도로)를 달리고 자전거 도로를 달리는 희열은 뽕 맞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힘들어 지쳐 쓰러지기 전에 항상 나타나는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빨간 박스. 바로 스탬프를 찍는 곳이다.


자전거 국토종주를 하며 추억이 많이 남은 곳은 제주도 환상종주를 할 때다. 아마 쇠소깍을 지나 표선해변으로 라이딩을 할 때 마주한 바다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2박 3일의 제주도 환상종주를 마치고 찾은 비양도에서 캠핑을 병행하였다. 


결국 나는 2021년 따스한 봄날 국토부장관상을 받게 되었다. 뭔가 큰일을 하고 난 듯한 느낌에 나 자신이 그렇게 자랑스러울 수가 없었다. 대학교 입학 때보다도 더 큰 희열이 있었다면 거짓말일까. 나는 이런 나를 더욱 부채질하기 시작하였고 급기야 자전거 대회를 알아보고 있는 손 안의 마우스를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저수령 그란폰도와 가평 그란폰도 대회를 접수하고 퇴근 후 강동구인 집에서 한강을 따라 한남 나들목을 거쳐 남산타워를 오르고 광화문을 지나 청와대를 거쳐 북악 스카이웨이까지 (남북코스라 지칭함) 라이딩 훈련을 하게 되었다. 퇴근 후 야라(야간 라이딩)를 남북코스로 타는 초인적인 힘이 어디서 나왔는지 지금 생각해 봐도 아이러니하다. 그렇게 연습을 하면서 생각처럼 잘 풀리지는 않았다. 2번의 큰 시련이 찾아온 것이다. 21년 7월 자전거로 삼막사를 오르고 집에 오는 길에 공도에 뿌려진 엔진오일에 미끄러지면서 어깨를 다쳐 쇄골골절이 되어 약 두 달간 치료를 받으며 자전거와는 이별을 할 수밖에 없었고 22년 1월에는 오른발 발목을 다쳐서 수술까지 하게 되었다. 수술 후 3월 말부터 다시 저수령 그란폰도를 위해 라이딩을 조심스럽게 시작하였고 22년 4월 30일 발목 보호대까지 차고 대회에 출전하는 열정을 보이기까지 하였다. 



코로나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답답하고 힘겨운 하루하루를 보냈을 것이다

나도 코로나로 자유롭지는 못했지만, 나를 위로해 줄 수 있는 자전거라는 친구를 만들게 해 준 계기가 되었다. 

2007년 이후 다이빙을 계기로 촉발된 나의 취미생활은 나를 지탱해 주고 나를 위로해 주는 나만의 안식처가 어느 순간 되어 있었다. 2007년 이전에는 한해를 되돌아보면, 일상으로 꽉 찬 하루하루의 연속이 일 년을 지탱하다 보니 365일이 하루같이 짧게 느껴졌다. 

2007년 이후 한해를 떠나보내며 드는 생각은, 1년 365일이 각기 다른 색으로 채워진 컬러북을 보는 것 같았다. 한 해가 길게 느껴지는 이유는 결국 일상에서의 자극적인 기억의 피크를 자주 만들고 이를 지속함으로써 가슴속 추억의 앨범이 컬러북 마냥 꼼꼼히 칠해지는 것이다. 


일상에서 기억의, 경험의 피크를 찍기 위해 이제는 또 다른 색깔의 경험을 해보려 한다.

자연과 함께하며 나만을 오롯이 느끼며 나에 대해 성찰할 수 있는 시간. 그게 무엇이든 상관은 없다. 자전거를 타며 펼치지는 풍경과 바람소리를 느끼며 나에 대해 생각했던 시간을, 바닷속 심해에서 나의 호흡과 공기방울의 소리를 느끼며 나에게 집중했었던 컬러풀한 시간을, 새하얀 도화지에 또 다른 물감으로 물들이고 싶은 생각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