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감은 기울기가 0보다 클 때만 유지된다

감정은 멈추는 순간 식는다

by 작가 윤영진


수학 시간, 나는 종종 학생들에게 그래프의 기울기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선의 기울기가 0이면, 아무 변화가 없는 상태야.”

그리고 이어 말한다.

“기울기가 0보다 커야, 감정도 관계도 유지돼.”


고등학교 1학년, 내가 다니던 수학학원에 나를 좋아하던 여학생이 있었다.

작고 귀여운 아이였다. 밝고 성격도 좋았다.


언제나 내 뒷자리에 앉았고, 수업 전후로 말을 걸었다.

발렌타인데이엔 초콜릿과 손편지를 내밀며 고백했다.


나는 그 고백을 거절하지도, 받아들이지도 않았다.

싫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마음이 움직이지도 않았다.

내 감정의 기울기는 0이었다.


이상하게도, 마음은 정지된 상태에서 머물렀다.

움직이지 않는 감정은 자라지 않았다.


나는 그 아이에게 친구를 소개해달라고 했다.

지금 생각하면 잔인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땐, 그 감정을 감당할 이유도 능력도 없었다.


소개받은 친구는, 달랐다.

예쁘고 똑똑하고 유쾌한 아이였다.

내 말에 웃었고, 먼저 연락했고, 나를 기다려줬다.


그녀의 기울기는 분명 양수였다.

그리고 나의 감정도, 그에 반응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단순한 호기심이었다.

하지만 매주 만나면서, 감정선은 점점 상승 곡선을 그렸다.

지수함수처럼 급격히.


학교 앞에서 떡볶이를 먹고,

도서관에서 문제집을 나란히 펼치고,

번화가에서 붕어빵을 사먹으며 걷던 밤거리.


야간자습이 먼저 끝난 날,

그녀는 내 학교 앞에서 날 기다렸다.

교복 재킷을 움켜쥐고 추위에 떠는 모습이 지금도 기억난다.


그날, 나는 확신했다.

내 감정의 기울기는, 분명 양수였다.


그때의 감정은 살아 있었고, 움직였고, 자랐다.

하지만 고3이 되면서, 그래프는 변했다.


성적은 마음처럼 따라주지 않았고,

진로는 모호했고, 현실은 무거웠다.


고2 겨울, 마지막 기말고사 성적표를 받아든 날,

나는 결심했다.

“이래선 안 되겠다.”


주변을 정리했다.

연락을 줄이고, 약속을 끊었다.

SNS 알림을 끄고, 대화는 짧아졌다.

만남도 줄었다.


감정선은 점점 평평해졌다.

기울기는 0으로 수렴했다.


그녀는 조용히 사라졌다.

연락도, 원망도, 작별도 없었다.

그건 이미 식어버린 감정에 어울리는 퇴장 방식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그 관계를 다시 꺼내본 적 없다.

다만 가끔 생각했다.

그때, 내가 조금만 더 움직였더라면 어땠을까.


기울기를 유지하려고 애썼더라면.

감정은 정적인 상태에서 살아남지 못한다.

‘좋아하는 마음’은 늘 변화 속에서만 존재한다.


표현하고, 만나고, 반응하고, 기억하는 행위들.

그게 기울기를 만든다.

그게 감정을 살린다.


나는 그 이후로 알게 되었다.

호감은 유지되는 게 아니라,

유지되도록 만들어야 하는 감정이다.


지금 사랑하고 있는 사람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매일 사랑하지 않는다.

하지만 매일, 조금씩 움직인다.

작은 말 한마디, 커피 한 잔, 가벼운 안부.


그 사소한 것들이 감정의 기울기를 살린다.

그리고 그 기울기가 0보다 클 때,

우리는 여전히 사랑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기울기가 멈춘 감정은, 언젠가 사라진다.

호감은 기울기가 0보다 클 때만 유지된다.


다음화 예고

13화. 썸은 접선이다, 잠깐 스치고 이탈한다

관계라는 곡선 위에,

잠깐 지나가는 접선처럼 존재하는 감정.

그게 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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