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낮은 지점에서 그래프는 다시 올라간다
수학 시간, 나는 종종 학생들에게 함수의 최솟값에 대해 이야기한다.
곡선이 아래로 푹 꺾이는 그 지점.
우리는 보통 그걸 ‘실패’라고 부른다.
하지만 나는 다르게 설명한다.
“이 지점이, 그래프가 다시 올라가기 시작하는 출발점이야.”
자존감도 마찬가지였다.
내 삶의 그래프에서, 나는 몇 번이나 그 ‘최솟값’에 닿은 적이 있다.
고3, 꿈이 깨진 날
의대를 가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정확히 말하면, '가야 한다'고 믿었다.
좋은 성적, 착실한 생활, 그리고 ‘의대=성공’이라는 어른들의 공식.
하지만 1학기, 성적표를 받아본 순간
나는 그 공식을 부정해야 했다.
“현실적으로 어렵다.”
학원 선생님과 상담실에 앉아 그렇게 말했을 때,
나는 이상하게 울지도, 분노하지도 않았다.
그저 무력감이 내 어깨에 내려앉았다.
꿈을 놓는다는 건
그걸 이루려 애쓴 시간까지 놓는다는 느낌이었다.
가장 먼저 털어놓은 건, 상담 선생님.
그다음은 친구.
마지막은 어머니였다.
엄마는 조용히 말했다.
“하고 싶은 일과, 할 수 있는 일을 절충해봐.”
지금 생각하면, 그 말은 내게 첫 현실적 위로였다.
이상과 타협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길로의 회전이었다.
나는 컴퓨터를 전공하기로 했다.
처음에는 마지못해 시작했지만, 그 안에서 또다른 흥미와 재미를 발견했다.
자존감은 바닥을 찍은 뒤, 서서히 방향을 틀었다.
창조의 쓴맛
수년 후, 나는 또 다른 ‘최솟값’을 맛봤다.
보드게임 <신화창조>.
나와 아내, 동생이 기획하고, 디자인하고, 밤새워 만든 작품.
펀딩이 간신히 성공했을 때, 나는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다.
이제 진짜 ‘내가 만든 것’을 세상에 보여주는구나.
그게 돈이 아니라, 자존감의 수익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기대에 못 미쳤다.
판매는 저조했고, 반응도 미지근했다.
무엇보다 힘들었던 건
함께 프로젝트에 참여한 아내와 동생에게 느껴진 미안함이었다.
‘내가 괜한 꿈에 이들을 끌어들인 건 아닐까…’
아내는 말없이 미소 지었고,
동생은 “형, 다음에 더 멋진 거 만들자”고 말했다.
그 따뜻한 격려에도
나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했다.
“내가 능력이 없는 거지, 뭐.”
자존감은 그렇게 다시 한 번, 아래로 내려갔다.
곡선이 바닥을 찍는 그 특유의 속도감.
겸손과 자기혐오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드는 느낌.
‘쓰레기’라는 말
그리고 진짜 바닥은, <엘데니아>였다.
내가 직접 설계하고, 조각하고, 이야기까지 쓴
보드게임의 결정체.
그야말로 1년 넘는 시간을 갈아넣은 작품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누군가 댓글을 남겼다.
“이건 그냥 쓰레기입니다.”
그 한 줄.
그저 한 줄짜리 악플.
나는 댓글창을 닫았다.
그 뒤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제작을 중단했다.
내가 만든 세계가
단 한 줄로 무너질 수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가장 큰 배신감은
시간이었다.
그토록 애쓴 시간이, 아무 의미 없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날 이후, 보드게임 커뮤니티인 ‘보드라이프’를 보기도 싫어졌다.
좋은 평가도 있었지만, 나쁜 말은 더 오래 남는다.
사람의 자존감은, 언제나 부정에 더 예민하게 반응한다.
다시 올라간 이유
그래프가 다시 상승하기 시작한 건,
역시 ‘사람’ 덕분이었다.
엄마는 다시 말했다.
“네가 좋아하는 걸 계속해. 다만, 방식은 조금 바꿔보자.”
그 말은 내게 가능성의 여지를 남기는 위로였다.
친구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야, 너보다 상황 안 좋은 내가 보기엔, 넌 그냥 엄살이야.”
투박한 말이었지만, 그 속엔 묘한 존중이 있었다.
그는 내가 ‘더 나은 사람’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리고, 언제나 아내.
내게 좋은 말들은 모두 그녀가 먼저 말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만든 거야. 그걸로 충분해.”
“자기야, 당신은 이미 멋진 걸 만들었어.”
그녀의 말은 함수도, 공식도 아니었다.
그냥 감정의 상수였다.
변하지 않고 나를 지지하는 존재.
그래서 나는 다시, 쓰기 시작했고, 만들기 시작했다.
자존감은 어디서 다시 시작되는가
나는 지금 자존감의 최고점을 지나고 있다.
내가 하는 일에 자부심을 느끼고,
내가 만든 결과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때의 최솟값을 잊지 않는다.
왜냐면,
그래프는 늘 그 아래 지점에서 다시 시작했기 때문이다.
자존감은 높다고 끝이 아니다.
그건 ‘다시 올라갈 수 있는 힘’이 생겼다는 증거다.
그리고 그 힘은 대부분,
나를 믿어주는 단 한 사람에서 비롯된다.
아내가 그랬고, 엄마가 그랬고, 친구가 그랬다.
그리고 지금은 내가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되어주고 싶다.
다음 화 예고
12화. 호감은 기울기가 0보다 클 때만 유지된다
감정은 멈추는 순간 식는다.
관계는 유지하는 게 아니라, 미세하게 ‘움직여야’ 지속된다.
미분 가능한 감정만이 살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