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는 점근선처럼 다가온다

닿지 않아도, 계속 가까워지는 마음

by 작가 윤영진

수학 시간, 아이들에게 점근선을 설명하면 늘 물어보는 질문이 있다.

“선생님, 이 선은… 끝내 닿지 않아요?”


나는 대답한다.

“응, 닿지 않아. 하지만… 끝없이 가까워져.”

아이들은 고개를 갸웃한다.

그게 무슨 의미냐고 묻는 눈빛이다.


나는 마음속으로 중얼거린다.

‘치유도 그래.’


한때 나는 무너졌었다.

잘나가던 학원.


출석부는 늘 꽉 차 있었고,

부모님들에겐 ‘믿고 맡기는 학원’이라는 말을 들었고,

강의실마다 웃음이 흘렀다.


그 시절, 나는 자만했다.

이 시스템은 무너지지 않을 거라 믿었다.

하지만 세상은 아무런 예고 없이 꺾인다.


학생이 줄었다.

강사가 떠났다.

임대료는 올라갔고, 통장은 비어갔다.


나는 책상을 멍하니 바라봤다.

사무실 바닥에 앉아,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그때였다.

걸레질하던 아내가 조용히 말했다.

“괜찮아. 이 바닥도 우리 집이야.”


그 말이 들리는 순간,

나는 다시 출근하고 싶어졌다.

책상을 닦고, 칠판을 지우고, 공지를 붙이고 싶어졌다.


곡선이 움직였다.

나는 다시, 점근선을 향해 가고 있었다.


출판사에 원고를 보냈다.

스무 군데가 넘는 곳.

그때 나는 꿈을 믿고 있었다.


하지만 돌아온 말은 늘 같았다.

“저희 출판사와는 결이 맞지 않아서요.”

“방향성이 조금 다릅니다.”


메일을 열 때마다,

나는 조금씩 작아졌다.

나의 문장도, 나의 이름도, 나의 꿈도

무한소처럼 작아졌다.


그때 아내가 말했다.

“자기야, 걱정하지 마.

내가 먹여 살릴게.”

“진짜로. 자기를 돈 많은 백수로 만들어줄 거야.”


웃음이 터졌다.

그리고 눈물이 났다.

그 말은 공식도, 함수도 아니었지만

내 감정의 그래프를 움직이게 한 최초의 상수였다.


나는 첫 이별을 ‘시간’으로 치유했다.

대학교 1학년, 여름방학.

사랑이 떠난 자리에

나는 술을 채웠고, 밤을 밀어 넣었고, 게임으로 덮었다.


그땐 그렇게 해야만

내가 무너지지 않을 것 같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시간이 지나가기를 바랐다.

그리고 정말로, 시간이 해결해주었다.


수렴.

그건 ‘닫히는 곡선’이 아니라

‘점점 덜 아픈 마음’이었다.


가장 늦게 회복되는 건

언제나 불안이다.


학생들이 웃으며 수업을 듣고 있어도,

가끔은 강의실이 너무 조용해 보인다.

텅 빈 책상이 미래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예전에 무너졌던 순간이,

다시 재생되는 듯한 느낌.

“또 무너지면 어쩌지?”

“이번엔 더 깊이 주저앉으면 어떡하지…”


그리고

어느 날 통장을 들여다본다.

또 바닥이다.


그때 아내가 등 뒤에서 안아준다.

말없이, 가만히.


그 한마디가 없는 안아줌은

말보다 더 많은 위로가 된다.

그제야 안다.

불안도 수렴한다는 것을.

함수처럼, 아주 천천히.


완전히 사라지진 않지만,

예전만큼은 아니게 된다.

더 이상, 나를 끌어당기지는 않는다.


치유는 언제나

점근선처럼 다가온다.


절대 닿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계속 가까워진다.


그리고 어느 날,

나는 아침에 일어나 운동화 끈을 묶는다.

사무실 바닥을 닦는다.

새로운 책을 쓴다.


그건 ‘완치’가 아니다.

그건 ‘다시 움직일 수 있는 마음’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살아간다.

상처 위에 하루를 쌓는다.


그리고 아주 조금씩,

나의 그래프는

행복이라는 선과 가까워진다.


다음 편 예고

: 자존감은 언제나 최솟값에서 출발한다.

수학에서 함수의 최솟값은 곡선이 가장 아래로 꺾인 지점이다.

우리는 종종 그 지점에서 삶을 다시 시작한다.

자존감이 바닥을 칠 때, 그래프는 거기서 다시 올라간다.

이전 09화우울은 음의 극한으로 수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