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열처럼, 조용히. 점점 더.
수열이 마이너스 무한대로 발산할 때,
눈에 띄는 폭발은 없다.
그저 계속 작아질 뿐이다.
a₁, a₂, a₃ …
그 항들은 하나같이 기운이 빠져 있다.
정수도 아니고, 유리수도 아니고,
그저 마음의 크기가 조금씩 깎여나간 어떤 소수점의 나열.
그게, 내가 겪은 우울이다.
처음엔 슬펐다.
대학교 1학년 여름방학,
그녀와 헤어지고 돌아오는 길에 본 햇살이 유난히 눈부셨다.
"참, 혼자서도 세상은 잘도 빛나는구나."
그 말이 마음 한구석을 뚫고 지나갔다.
그날 밤엔 친구들과 술을 마셨고,
다음날엔 또 다른 친구에게 하소연을 했고,
그다음날엔 혼자 벤치에 앉아 울었다.
슬픔은, 말이 된다.
슬픔은, 눈물이 된다.
그래서 덜 무섭다.
내가 겪은 우울은, 그다음이었다.
대학교 2학년 말, 입영영장이 도착했다.
우체통에 담긴 얇은 종이 한 장이
나를 방 안에 가두는 데는 하루도 걸리지 않았다.
그땐 무기력이 아니라, 감전된 기분이었다.
아무것도 하기 싫었고,
심지어 아무것도 하기 싫다는 말조차 하기 싫었다.
나는 그때부터 수열이 되었다.
a₁ = 침대, a₂ = 냉장고, a₃ = 컴퓨터.
a₄ = 다시 침대.
a₅ = … 아무것도 없음.
우울은 그런 것이다.
기분이 나쁜 것도 아니다.
기분이 없다는 게, 더 맞다.
사람들은 말했다.
“야, 요즘 왜 이렇게 조용해?”
나는 웃으며 말했다.
“그냥 좀 피곤해서.”
하지만 그 웃음은,
나를 더 음의 극한으로 발산하게 만들었다.
표현하지 못하는 감정은
곱셈 수열이 된다.
하루의 무기력 x 그다음 날의 무기력 x 그다음 날의 무기력.
그 곱은, 음수로 내려가며 점점 더 작아진다.
그리고 끝내, 무의미에 수렴한다.
사람들은 자꾸 위로한다.
“넌 충분히 잘하고 있어.”
“지금 아니어도 괜찮아.”
하지만 그런 말들은
늘 나를 정수로 다룬다.
정확하게 나눠질 수 있을 거라는 가정.
그게 더 힘들었다.
나는 그저 수렴하고 있을 뿐인데.
그리고 이미 아주 많이, 잊힌 항이 되어 있는데.
지금은 좀 괜찮다.
지금은 어쩌다 보니 잘 버티고 있다.
하지만 문득 그런 생각은 든다.
“사람은 왜, 음의 극한을 막지 못하는가?”
“무너지는 기분은 왜, 항상 조용한가?”
“왜 우리 마음은, 점점 작아질수록 더 설명이 어려운가?”
나는 지금도 살아 있다.
그 말 안에 있는 감정이
aₙ의 다음 항이 될지,
아니면 새로운 수열이 될지는 아직 모르겠다.
다음 편 예고
10화. 치유는 점근선처럼 다가온다
언제나 가까워지지만, 닿지는 않는 선.
그래도 우리는, 그 선을 따라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