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쳐 지나간 호감, 오래남은 흔적
수학 시간, 곡선과 직선이 만나는 순간을 배운다.
그것을 접선이라고 한다.
한 점에서 스치듯 만난다.
그 지점에선 닿지만, 이내 멀어진다.
같은 방향을 보는 것 같지만, 결국 다른 길을 간다.
나는 그걸 ‘썸’이라고 부른다.
고등학교 3학년.
입시라는 이름으로 모든 게 압축되던 시절,
나는 인생의 첫 접선을 만났다.
같은 열람실, 같은 시간, 같은 버스 정류장.
마주칠 이유가 없던 우리는 이상하게 자주 마주쳤고,
서로에게 조금씩 눈길을 주었다.
말 한마디 없던 일주일.
그러다 어느 날,
그 애가 내 필기구를 빌려 갔다.
사소한 접점.
사소했지만, 내 마음속 함수는 요동쳤다.
다음날, 나는 샤프심을 하나 더 챙겼고,
일부러 책상 위에 올려두었다.
그 애가 다시 말을 걸길 바랐다.
다시, 그 점에서 스쳐 가길 바랐다.
하지만 그날 이후,
그 애는 다른 시간에 왔다.
다른 자리에서 공부했고, 다른 노선을 타고 갔다.
그 짧은 순간이 끝이었다.
우리는, 접선이었다.
접선은 곡선과 한 점에서 만난다.
기울기는 같지만, 곡선과 직선은 결국 다른 성질이다.
만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게 전부다.
서로 스쳐 지나가는 ‘순간의 동의’일 뿐.
썸도 그렇다.
확인되지 않은 호감.
관심과 오해 사이를 오가는 긴장감.
가끔은 ‘이건 썸일까?’라는 질문이,
‘이건 함수일까, 그냥 그림일까?’만큼 어려울 때가 있다.
제자 하나가 내게 물었다.
“선생님, 그 애가 자꾸 저를 쳐다보는 것 같아요. 썸일까요?”
나는 조심스레 되물었다.
“쳐다보기만 해? 뭐라고 말하진 않고?”
“네… 근데 매일 그래요. 눈 마주치면 피하지도 않고…”
나는 마음속으로 속도 그래프를 그렸다.
기울기 없는 접선.
정지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감정은 계속 움직이는 곡선.
“그럼 너는? 너는 어떻게 생각해?”
“…모르겠어요. 좋은데, 겁나요.”
그래, 썸은 늘 그런 감정이다.
확신보다 두려움이 먼저 오고,
좋아하는 마음보다 ‘상처받을까 봐’가 더 크게 다가온다.
썸은 고백보다 복잡하고, 연애보다 불안정하다.
애매한 건 나쁜 게 아니다.
하지만 오래 머무르면 감정이 닳는다.
접선은 그래야 한다.
스쳐야 한다.
잠깐 닿고, 바로 이탈해야 한다.
그게 접선의 예의다.
썸도 그렇다.
기울기만 같으면 충분하다.
같은 방향을 바라보았던 그 순간,
그거면 됐다.
사귀지 않아도, 연애가 아니어도,
그 순간만큼은 진짜였다.
나는 이제
접선을 억지로 연장하지 않는다.
곡선과는 다르다는 걸 안다.
그때 그 샤프를 빌려 간 아이도,
버스 정류장에서 눈을 맞췄던 아이도,
결국은 내 곡선 위에 머무르지 않았다.
하지만 가끔은 그런 스침이 더 오래 남는다.
짧았기에 더 선명하고,
이탈했기에 더 소중하다.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은,
한때의 접선이 아니라
함수 위를 함께 걷는 사람이다.
그 점 하나를 지나,
다음 점으로 이어지는,
하나의 궤적을 그리는 사람.
그래서 나는,
썸을 사랑하지 않지만,
썸을 잊지 않는다.
잠깐의 접선.
그 스침으로,
나라는 곡선도 조금 바뀌었으니까.
다음 화 예고
14화. 화해는 부등호를 지우는 일이다.
크거나 작지 않게,
다시 같아지는 방법에 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