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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fe Designeer Feb 21. 2020

지금 나는 누구로 살고 있는가

독서노트 #69 <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 >

보통의 존재가
내가 아닌 것을 시기하지 않으며,
차가운 시선을 견디고,
있는 그대로의 나로서 살아가기 위하여.


이 책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는 꽤 오랜 기간 동안 베스트셀러 칸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제목만 봐서 추측할 수 있듯이, 최근 몇 년간 타인이 아닌 '나'에 관한 생각이 하나의 엄청난 이슈이자 트렌드였던 것이다. 그만큼 우리는 타인의, 타인에 의한, 타인을 위한 삶을 살아왔다는 방증이지 않을까. 김수현 저자는 현재를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에게 전하는 위로와 응원을 이 책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를 통해 전하고자 했다. 세상이 우리 자신의 존재를 무가치하게 여길지라도 나 스스로를 존중하고 나로서 당당하게 살아가도 된다는 메세지를 강력히 전하고 있다.



부모님의 기대를 충족하기 위해서 살아가는 건
사랑이 아닌 채무감이자 강박일 뿐.
내 삶을 책임지는 것이 나의 몫이라면
자식이 부모 마음대로 살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건 부모님 몫이다.

우리를 짓누르는 것이
부모님에게 받은 경제적인 지원에 대한 채무감이라면
살며 최선을 다해 갚으시라.
하숙비를 내야 하숙생이 되는 거다.
하지만, 우리 삶까지 저당 잡혀 살지는 말자.

우리가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애써야 할
유일한 존재는 나 자신뿐이다.

- p91

우리는 나보다 타인을 더 배려하도록 교육받으며 길러져 왔다. 여기서 안타까운 것은 나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먼저 깨우치지 못한 상태에서 항상 남을 먼저 생각하도록 가르침을 받은 점이다. 그래서 가족이라는 굴레에서도 나보다 항상 부모나 자식을 먼저 생각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 우리의 현실인 것 같다. 학교에 가면 나보다 친구를, 회사에 가면 나보다 동료와 상사를 먼저 생각하는 게 일반적 사고방식처럼 프로그래밍되어 버렸다. 하지만 저자의 말처럼, 어쩌면 우리의 삶에서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애써야 할 존재는 부모도 회사 상사도 아닌 나 자신일지도 모른다. 나는 얼마나 많은 세월 동안 가족을 위해 내 삶을 저당 잡혀 왔는지 생각하게 다. 내가 내 삶에 내 방식대로 충실하게 산다는 것과 예절을 지키고 효도를 하는 것은 별개의 부분이다. 흑백논리로 무장한 이것 아니면 저것이라는 법칙의 삶은 없다. 나를 사랑하고 책임지는 삶을 더욱 현명하게 살기 위해 한 번 더 생각에 잠겨 본다.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우리가 남이야?'라는 (당연히 남인데) 말로
경계를 침범하는 관계에 익숙해졌고,
그 경계를 침범하는 것을 친밀함으로 여기기도 했다.

하지만 모든 그늘을 낱낱이 확인하고,
경계를 잃는 것만이 좋은 관계는 아니며,
친구라는 이름으로 경계의 통행권을 요구할 수는 없다.
설사 누군가의 경계가 너무 두텁다 해도,
그걸 타인이 밖에서 깨고 말고 할 것은 아닐뿐더러,
개인의 사적 영역을 완전히 헤집는 관계는 폭력적이기까지 하다.
그렇기에 좋은 관계란, 서로의 경계를 존중하는 것이며,
좋은 우정이란, 친밀감을 느낄 수 있고,
한편으론 안정감이 담보될 수 있는 거리에서
애정으로 함께 하는 것이다.

- p161

말은 무섭다. 말은 사람의 생각을 세뇌시키고, 말은 사람의 행동을 유도하기도 한다.

'우리가 남이냐'는 말은 은연중 인간관계에 꽤 많은 심리적 불안감을 유발했음에도 그 말을 뿌리칠 용기를 크게 내지 못했었다. '부부는 일심동체'라는 말을 어렸을 때부터 주변에서 자주 들어왔고, 사회에 첫 발을 내디뎠을 때도 제조업 특유의 단합을 위한 구호는 '우리가 남이가'였다. 속으로 '우리는 남인데'였지만, 회식자리에선 술잔을 들고 같이 '우리가 남이가'를 외쳐야 했던 그 시절. 그러다 2012년도쯤이었을까, <내 딸 서영이>라는 드라마에서 서영이 역을 맡은 이보영이 '부부는 이심이체'라고 말했던 것을 기억한다. 충격이었지만, 똑 부러지는 서영이에게 완전히 몰입한 나는 부부는 이심이체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게 현명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일촌도 아닌 무촌 지간인 부부 사이도 이심이체인데, 일촌 관계인 부모와 자식을 포함한 사돈에 팔촌까지, 친구며 동료며 상사며 지나가는 그 누구여도 남은 남인 것이다. 그것을 받아들이는 순간 마음이 편했다. 부모가 자식 속을 어떻게 모르냐는 말도 많이 들었다. 부모는 다 큰 성인인 자식의 속을 더 이상 알 수 없는 것이 현실이고, 자식 역시 부모의 속을 알기 어렵다. 아무리 친한 사이에도 '친밀함'이라는 명분으로 상대의 사적 영역에 허락 없이 '침범'하는 행위를 막을 '사리분별력'을 키우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10년째 깨닫고 있다.

관계 속에 어떤 식으로든 존재하는 문제에 대해 잘 대응하려면, 저자의 말처럼 서로의 경계를 존중하고 안정감이 담보될 수 있는 거리에서 애정으로 함께 하는 태도를 갖추어야 할지도 모른다.


변화를 위해 가장 필요한 자질은 지치지 않는 것이다.

주어진 삶은 견딜 수 없고, 자신이 원하는 삶은 도저히 살 수 없을 때
사람은 절망하는 것이다.

어느 정신과 의사는 헝가리, 일본, 우리나라의 공통점으로
'방황이 허락되지 않는 사회'를 이야기했다.
그리고 이 세 나라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더 있는데
바로 높은 자살율이다.

우리나라에서 방황은 인생을 망치는 지름길이자 금기에 가깝다.
오죽하면 방황 청소년이라는 말까지 있을까.
대학진학, 취업, 결혼, 출산, 내 집 마련 등 일련의 과정을
[적령기]라는 데드라인에 맞춰 완수해야 하고,
이를 위해선 잠깐의 방황조차 용납하지 않는다.
그러지 못했다간, 실망하는 부모님과 실패자로 규정짓는 수군거림과
사회적 고립에 대한 두려움을 피하기 어렵다.
...
많은 이들은 높은 행복도를 보이는 북유럽 국가를 이상적으로 생각한다.
그런데 레오 보만스에 따르면 북유럽 국가들의 높은 행복감은
높은 소득이나 복지시스템의 결과가 아니라,
넘치는 자유, 타인에 대한 신뢰, 다양한 재능과 관심에 대한
존중에 있다고 한다.

- p235

'방황이 허락되지 않는 사회', 이 말이 너무나 공감이 갔다. 우리는 대개 청소년기에만 방황할 수 있음을 허락하곤 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성인이 되어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방황을 하고, 졸업하고 사회에서 경제활동을 시작하자마자 방황을 한다. 결혼 적령기에 들어서면 남들처럼 결혼을 해야 하는 것인지 고민하며 삶에 또 방황하기 시작하며, 들어간 직장을 얼마나 다녀야 할지, 이직을 해야 할지, 무엇을 하며 먹고살아야 할지 끊임없이 방황한다. 제2, 3, 4, 5 이상의 질풍노도의 시기가 반복되어 찾아오는 게 우리의 삶이지만 이러한 방황을 드러내면 마치 문제아, 사회 부적응자, 남들보다 부족한 사람처럼 치부되는 분위기에 눌려 자신이 방황하고 있음을 당당히 드러내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요즘은 대놓고 방황을 드러내는 시대가 된 것 같기도 하다. 예전에 비해 빨라진 퇴사 시기, 20~30대의 자신만의 삶을 위한 새로운 도전들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내 아이에게 마음껏 방황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주고 싶다. 내가 10년째 방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유로운 방황이 아닌 내 주변인들을 고려한 방황이어서 많이 힘들지만, 이 시기가 너무도 행복하고 이 기회를 발판 삼아 더 성장할 수 있음을 믿고 있기 때문이다. 더 당당하게 많은 이들이 방황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만들어지기를 바래어본다. 북유럽 국가의 높은 행복 지수가 단순 복지 시스템 때문이 아니라 개인에 대한 신뢰와 존중에서 온다는 점을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기를 희망한다. 하나의 문화로서 서로를 존중할 수 있다면 지금보다는 좀 더 행복도를 높일 수 있지 않을까.



선택에서 '무엇을 얻느냐'보다 중요한 건,
'무엇을 포기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다.

줄어드는 연봉과 또라이 상사를 견디는 일 사이에서,
커리어의 단절과 아이와 함께 하지 못하는 것 사이에서,
해보고 싶은 일을 포기하는 것과 고정적인 월급이 없는 생활 사이에서,
어떤 것을 더 견딜 수 없는지,
어디까지 감수할 수 있는지에 대해 스스로 대답해야 한다.

늘 손해 보는 것만 생각하면 언제나 후회 속에 살 뿐이다.
어떤 것도 감수할 수 없다고 말하는
어리광을 들어줄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 p259

우리의 삶은 선택의 연속이지 않은가. 선택은 무언가를 택하는 것이 아니라 둘 중 하나를 포기하는 일인 것이다. 내가 무엇을 포기할 수 있는지를 인정하는 것은 선택 후 후회를 덜 할 수 있는 방법인 것 같다. 우리는 보통 가보지 못한 다른 한 길에 대한 막연한 로망이 있고, 자연스레 환상 속에서 비교 후 스스로 자괴감에 빠지는 인생을 살고 있지 않나 생각해 본다. 내가 포기하는 다른 한쪽을 손해라고 가정하는 것은 애초에 계산법이 틀린 것이다. 그것은 사실 1대 1 비교가 불가능하지 않은가. 내가 선택한 길에서 얻을 수 있는 것에 집중하는 삶을 살기 위해 오늘도 나는 연습 또 연습하는 것 같다.



무엇이 삶을 의미 있게 하는가?
많은 질문 끝에 내가 찾은 답은 개인의 영역에서 공공의 영역으로 나아가
사회 안에서 자신의 가치를 실현하는 것이다.
...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끝나지 않던 질문, 아니 언제나 끝나지 않을 질문.
내 나름의 답을 이야기 하자면 우리 좋은 삶을 살자.
너무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열심히 일하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대화하고,
함께 맛있는 것을 먹고, 좋아하는 노래와 좋은 책과 함께하며
날씨가 좋은 날 햇볕을 쬐는 것.
나는 그 일상의 따스함이 좋은 삶의 전부라 생각한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의미 있는 삶을 향해 한 걸음 나아가자.
비록 이 우주에서 먼지처럼 작은 존재일지라도
우리는 삶의 허무를 이겨내고 스스로의 존엄함을 지킬 수 있다.
세상이 규정하는 성패와 상관없이, 나는 그런 삶에 자부심을 느끼고 싶다.

- p277

저자가 하고 싶었던 말이 어쩌면 이 부분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책 제목은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고 말하지만, 사실 그것은 단순히 개인주의적인 삶을 말하는 것이 아닌 것이다. 그 이면에는 지금보다 더 나은 사회를 만들고 더 좋은 사회에서 살기 위해, 과거의 불필요한 관습에 대면하기 위해 '어떻게 살 것인지'를 얘기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에 대한 답이 '사회 안에서 자신의 가치를 실현하는 자신만의 삶'으로 표현되지 않았나 생각이 다.




이 책은 베스트셀러로 유명하다 보니 내용이 궁금하면서도 동시에 내용이 예측 가능한 에세이일 것 같은 느낌이 강해서 처음에 손이 쉽게 가질 않았다. 그러다 올해 1월 신문에 교보문고 기준으로 2010년에서 2019년 10년간 가장 많은 사람들이 읽은 책 중 2위를 차지했다고 하니 너무나 궁금해서 안 읽어볼 수가 없었다.


이 책은 매너리즘에 빠져 하루하루를 회의적인 감정 속에 힘들어하는 20~30대 직장인들에게 위로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 특유의 강한 어조와 맛깔나는 최신 표현들이 독자들의 답답한 마음을 통쾌하게 뚫어주는 측면도 없지 않아 있다. 그래서 오랜 기간 베스트셀러로 인기를 유지해온 것은 아니었을까.




* 책 제목 :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

* 저자 : 김수현

* 출판사 : 마음의숲

* 출간일 : 2016년 11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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