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노트 #2 카모미 비앙코 디 카모미, 미국, 2016, 화이트와인
얼마 전 엄마 생신을 맞이하며 집에서 식구끼리 오붓하게 저녁식사를 하기로 되어있었다. 주 메뉴는 해산물! 코로나19 때문에 밖에서 식사를 강하게 권하기도 애매한 상황... 밖에서 쓸데없이 낭비하는 것을 선호하지 않는 엄마는 자주 애용하시는 온라인 장터를 통해 저렴한 가격으로 신선한 해산물을 잔뜩 구매하셨다.
사실 해산물을 먹자고만 하셨지, 집에 가기 전만 해도 어떤 종류의 음식을 먹게 될지 잘 모르는 상태였다. 어쨌든 해산물이라고 했으니 잘 어울릴 만한 화이트 와인을 사려고 생각했다. 그래서 엄마 집으로 가기 전, 케이크와 와인 그리고 생신선물을 사러 백화점을 향했다. 보통 와인을 살 때, 아울렛에서 아이쇼핑을 실컷 즐긴 후, 고르고 골라 저렴한 와인을 득하는 즐거움을 선호하지만, 비싸더라도 백화점이나 마트에서 괜찮은 와인을 고르는 재미도 쏠쏠하다.
백화점 와인 코너에 갔을 때, 우리의 목적은 회와 엄청 잘 어울렸던 와인 "러시안 잭 소비뇽 블랑"을 찾는 것이었다. 수입사마다 취급하는 와인이 다르고 유통되는 곳마다 원하는 와인이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상태여서 불안했지만, 다행히 러시안 잭을 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가격이 문제였다. 4만 원이 훌쩍 넘은 것. 4만 5천 원인지, 4만 8천 원인지 기억조차 나질 않는다. 가격을 듣는 순간 사지 않고 차선책을 강구하기로 결심했으니까. 생각해보니 이전에 남편이 사 왔을 때는 할인가로 2만 후반대 정도의 가격으로 사 왔던 것 같았다.
러시안 잭 소비뇽 블랑을 본 우리에게 직원은 또 다른 뉴질랜드산 소비뇽 블랑을 추천해주었다. "킴 크로포드 말보로 소비뇽 블랑"이었다. 꽤 유명하며 자신 있게 추천할 만큼 인기 있다고 했다. 하지만 역시 3만 원이 훌쩍 넘는 가격에 흔들렸다. 엄청난 부를 소유한 부자가 아니기에, 항상 와인을 살 때면 가격 앞에서 고민한다. 직원에게 소비뇽 블랑이 회와 함께 먹기에 잘 어울려서 찾고는 있지만, 꼭 그 품종이 아니더라도 회랑 어울릴 만한 와인을 추천해줄 수 있는지를 물었다. 그리고 좀 더 저렴한 와인으로. 하나는 샤도네이, 또 하나는 블렌딩을 추천받았다. 둘 다 미국 와인이었다. 상큼하고 청량감이 강한 소비뇽 블랑이 더 들어갔을 법한 블렌딩을 골랐다. 전 세계에 널린 와인은 그 종류가 너무나 많고, 평생 그 와인을 다 먹어볼 수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항상 잘 모르는 와인을 고를 땐 모 아니면 도! 도박이다.
친정에 도착하니 맛있는 해산물이 준비되어 있었다. 엄마 생신인데 주인공인 엄마가 요리를 하게 만드는 못된 딸이라 죄책감이 심히 몰려왔지만, 현실적으로 엄마 손맛을 이길 수 없으니 그저 선물과 케이크로 미안한 마음을 최대한 덮어보는 수밖에. 흑흑.
상 차리는 것을 도왔다. 내가 좋아하는 회!! 싱싱한 광어회와 숭어회가 준비되었고, 쭈꾸미를 갓 삶아 초고추장에 찍어먹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쫄깃쫄깃한 꼬막무침에 살이 통통한 우럭 매운탕까지! 해산물 파티가 따로 없었다. 도착하자마자 와인을 냉장고에 1시간 정도 보관했다가 병을 오픈하게 되었다. 기대 기대~
색깔은 옅은 노랑. 딱 화이트 와인 다운 색이었다.
향을 맡아보았다. 첫 향은 Tree Fruit 계열의 향과 oak향이 주로 느껴졌다. 약간은 상큼한 향이 느껴졌지만 전혀 강하지 않았다. 달달한 열대과일향보다는 많이 달지 않은 나무 과일향이 느껴졌다.
맛을 보았다. 부드러움이 바로 느껴졌다. 단맛과는 거리가 먼 드라이함이 확실히 느껴졌다. 산도는 보통이었다. 그렇게 많이 상큼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블렌딩이어서 그런지 조화로움과 적당한 무게감이 느껴졌다. 회 한점 먹고 와인을 먹어보고, 꼬막무침을 한 번 먹고 한 모금 마셔보았다. 쭈꾸미도 역시. 매운탕을 제외하고 해산물과 함께 먹으니 꽤 괜찮았다. 러시안 잭 소비뇽 블랑을 먹었을 때만큼의 엄청난 탄성을 지르진 않았지만, 역시 잘 모를 땐 추천을 받거나 블렌딩을 선택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인 것 같다!
카모미 비앙코 디 카모미 와인에 대해 좀 더 찾아보니, 고기랑도 잘 어울리는 와인이라는 정보를 얻었다. 보통은 와인의 페어링 음식으로 재료도 중요하지만 양념이 훨씬 중요한 역할을 한다. 화이트 와인에 고기를 추천하는 경우는 자주 보지 못한 것 같은데, 양념이 덜 들어가는 스테이크나 바베큐 느낌의 고기와 먹으면 어울릴지 테스트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