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ife Designeer Jun 16. 2020

어느새 맥시멀리스트가 되어있었다.

독서노트 #74 < 디지털 미니멀리즘 >

이 책 <디지털 미니멀리즘>은 지금 현재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꼭 필요한 책인 것 같다. 개인의 의지, 모호한 결의만으로는 우리의 삶을 파고드는 신기술의 힘을 컨트롤할 수가 없다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구조의 중독성과 이를 뒷받침하는 문화적 압력이 개인의 임시방편으로 막기에는 너무 강하기 때문이다. 칼 뉴포트 저자가 말하길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깊은 가치에 뿌리를 둔 성숙한 기술 활용 철학이라고 했다.

한쪽 극단에는 대다수 신기술을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신러다이트가 있고, 다른 쪽 극단에는 생활방식을 최적화한다는 목표 아래 디지털 기기를 삶의 모든 측면과 통합하는 자기정량화 애호가들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는 기술 과부하에 걸린 현재 상황에서 잘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위한 탁월한 답으로 디지털 미니멀리즘이라는 철학을 권하고 있다. 디지털 도구와 맺는 관계에서 더 적은 것이 더욱 나을 수 있다는 믿음을 말이다.



우리는 한 발 물러서서 과거 10년 동안 이뤄진 급격한 진전에서 우리가 진정으로 원한 것이 무엇인지 따져볼 기회를 갖지 못했다. 우리는 사소한 이유로 신기술을 우리 주변에 추가했다가 어느 날 아침 잠자리에서 일어나 그 신기술이 우리 삶의 핵심을 식민지화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다시 말해 우리는 현재 우리가 갇혀 있는 디지털 세계를 원한 적이 없다. 엉겁결에 그 세계로 빠졌을 뿐이다.

- p27

트리스탄 해리스, 숀 파커, 레아 펄먼, 애덤 알터 같은 내부고발자와 연구자들이 밝힌 대로 이런 신기술들은 행동 중독을 촉발하도록 여러 측면에서 특별히 설계되었다. 이런 맥락에서 충동적 사용은 성격적 결함의 결과가 아니라 대단히 수익성 높은 사업계획의 결과다.
우리는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디지털 라이프를 바란 적이 없다. 이 디지털 라이프는 넓게 보면 소수 투자자의 이익을 위해 기업들이 조장한 것이다.

- p44

요즘은 신기술이 발달해서 디지털 기기로 모든 일상을 아우를 수 있는 시대다. SNS와 무자비하게 생산되는 컨텐츠의 늪에 빠져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나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었는데, 이게 내 의지나 성격적 결함이 아닌, 수익성 높은 사업계획의 결과물이라고 하니 한편으로는 안심이 되면서도 한편으로는 너무나 씁쓸하다. 하나의 컨텐츠를 만들 때, 그것을 보여주는 방식, 제공하는 프로세스가 모두 철저하게 사용자들이 시간과 관심을 쏟을 수밖에 없도록 설계되어 있다. 하지만 그걸 모르는 유저들은 자신도 모르게 빠져든다. 내가 넷플릭스에서 드라마 정주행을 하고, 다양한 컨텐츠 쇼핑을 하는 것 역시 계산된 UX와 UI 안에서 점점 손발이 묶여 가는 것이었다. 이미 알고는 있었지만, 책으로 내부고발자들의 입으로 그 이야기를 명료하게 듣고 나니, 정신이 번쩍 든다.



< 디지털 미니멀리즘 >
온라인에서 시간을 보낼 때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것들에 도움이 되며, 신중하게 선택한 소수의 최적화된 활동에 초점을 맞추고 다른 모든 활동은 기꺼이 놓치는 기술 활용 철학

- p48

이 철학의 유효성에 대한 내 주장은 세 가지 핵심 원칙에 근거한다.
- 원칙 1 : 잡다함은 대가를 수반한다.
디지털 미니멀리스트는 너무 많은 기기, 앱, 서비스에 시간과 주의를 분산해서 얻는 개별적이고 작은 혜택보다 부정적 비용이 더 크다는 사실을 안다.
- 원칙 2 : 최적화는 중요하다.
자신이 중시하는 가치를 뒷받침하는 특정 기술만 선택하는 일은 첫 단계일 뿐이다. 디지털 미니멀리즘의 잠재적 혜택을 온전히 누리려면 그 기술을 어떻게 활용할지 신중하게 생각해야 한다.
- 원칙 3 : 계획성은 만족감을 안긴다.
디지털 미니멀리스트는 신기술을 계획적으로 활용하는 데서 상당한 만족감을 얻는다. 이 만족감의 원천은 특정한 결정과 무관하며, 디지털 미니멀리즘이 큰 의미를 제공하는 아주 중요한 이유 중 하나다.

- p55

한때 미니멀리즘, 미니멀리스트라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물론 지금도 그 말은 언제든 사용할 수 있지만, 그 개념이 처음 도입되었을 때, 나는 그다지 큰 관심을 갖지 않았다. 굳이 그러할 필요성 자체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디지털 미니멀리즘을 통해 소수의 진짜 필요한 도구와 기술만으로 내 삶의 만족도를 높여야겠다는 강한 욕구가 들끓었다. 또한 오프라인이자 아날로그적인 내 삶의 공간에서도 미니멀리즘을 도입해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이런 미니멀리즘은 대다수 사람이 기본적으로 따르는 맥시멀리즘과 극명하게 대비된다. 맥시멀리즘은 혜택을 볼 약간의 잠재력만 있다면 주의를 잡아끄는 기술을 사용하기에 충분하다는 태도다. 맥시멀리스트는 조금이라도 흥미롭거나 가치 있는 것을 놓친다는 생각을 아주 불편하게 여긴다.

- p48

카톡을 안 쓰면 간첩 수준이고, 한창 유행했던 페이스북에 이어 지금은 인스타 안 하는 사람도 드물다. 흥미로운 유튜브 동영상을 보며 하염없이 시간을 빼앗기기도 하고, 넷플릭스를 통해 다양한 드라마와 영화 속에 푹 빠지기도 한다. 정보 관리를 위한 에버노트, 노션과 같은 툴도 쓰고, 매일의 할 일 관리를 위해 투두 리스트를 관리 어플도 쓴다. 명상 어플, 집중 모드 어플, 쇼핑에 최적화된 각종 어플들도 많이 사용한다. 여기저기 생성된 메일은 관리가 되질 않고, 그러한 메일 계정으로 연결되어 있는 수많은 사이트들을 통해서 끊임없이 정보가 내게로 온다. 새로운 저널, 디자인 소스, 좋은 책, 시사 정보, 핫한 뉴스 등... 뭐 하나 놓치면 큰일 날 것 같이 홍보하는 기업들, 사용자 무리에 끼지 않으면 트렌드에 쫓아가지 못하고 도태될까 두려운 다수의 이용자들. 그렇게... 그렇게...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맥시멀리스트가 되어있었다. 그리고 그 끝은 없다. 계속 무한히 커져만 간다.


무언가를 좀 놓친다고 세상은 무너지지 않는다. 무언가를 좀 놓친다고 해서 내게 엄청난 불이익이 생기는 것도 아니다. 무언가를 좀 놓친다고 해서 사람들과의 연결이 뚝 끊어지는 것도 아니다. 아등바등 연결되기 위해 애쓸 필요 없고, 이것저것 다 사용해 가면서 뇌의 집중도를 굳이 떨어트릴 필요도 없다. 맥시멀리즘의 혜택이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크지 않다면 굳이 그런 태도를 취할 필요가 없다.



많은 사람은 고독이라는 용어를 신체적 고립과 연계한다. 이런 정의에 따르면 속세에서 멀리 떨어진 오두막에서나 고독을 누릴 수 있다. 이처럼 잘못된 정의는 대다수 사람이 꾸준히 충족할 수 없는 비현실적인 기준을 설정한다. 반면 케슬리지와 어윈은 고독과 관련해 환경이 아니라 뇌에서 일어나는 일이 중요하다고 설명한다. 그들이 정의하는 고독은 정신이 외부에서 입력되는 정보로부터 자유로운 주관적 상태다.
... 고독에 빠지려면 어디에 있든 다른 사람이 만든 정보에 반응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과 경험에 집중해야 한다.
왜 고독이 소중할까? 케슬리지와 어윈은 고독이 안기는 여러 혜택을 상술했다. 그중 대다수는 차분한 자기 성찰을 통한 통찰, 정서적 안정과 관련된다.

- p111

고독은 환경도 환경이지만, 외부에서 입력되는 정보로부터 자유로운 정신에 초점을 맞추는 게 맞는 듯싶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둘러보면, 사람들은 각자 자신의 핸드폰 세상에 빠져있다. 겉으로는 서로 연결되지 않고, 대화하지 않으니 고립되어 있고 고독한 상태로 보인다. 하지만 인터넷으로 연결된 세상에서 사람들은 끊임없이 연결 상태에 머물러 있다. 지금은 우리의 삶에 진정한 고독을 느끼기 어려워진 시대다. 고독을 자처하기 위해 과거보다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한 시대다.



가령 마크 저커버그는 2012년에 상장 계획을 발표하면서 "페이스북은 (...) 세상을 좀 더 개방적이고 연결된 곳으로 만든다는 사회적 사명을 달성하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라고 의기양양하게 밝혔다.
이런 연결에 대한 집착은 분명 지나치게 낙관적인 전망을 반영한다. ... 무엇보다 고독을 회피하면 고독이 안겨주는 긍정적인 혜택을 놓치게 된다. 복잡한 문제를 명확하게 파악한다거나, 감정을 다스린다거나, 도덕적 용기를 얻는다거나, 관계를 다지는 등의 혜택 말이다. 그래서 고질적인 고독 결핍에 시달리면 삶의 질이 나빠진다.

- p121

설문 결과를 분석해보니 소셜 미디어를 많이 쓰는 사람일수록 외로움을 많이 느낀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실제로 이용도 측면에서 상위 25퍼센트에 속하는 사람들은 하위 25퍼센트에 속하는 사람들보다 세 배나 더 외로움을 느꼈다. 연령, 젠더, 관계 상태, 가계 수입, 학력 같은 요소들을 대조한 후에도 결과는 같았다. 프라이맥은 인터뷰에서 이런 결과에 놀랐다며 "명색이 소셜 미디어인데 왜 사람들은 유대감을 느끼지 못할까요?"라고 물었다. 그러나 데이터는 명확했다. 그에 따르면 소셜 미디어 서비스에 더 오래 "연결될수록" 고립감을 더 많이 느낄 가능성이 높았다.

- p156

SNS가 처음 등장했을 때는 멀리 있는 사람끼리도 연결될 수 있음에 신기하기도 하고, 그 연결을 통해 많은 시간과 노력을 절감해주는 순기능에만 초점을 맞췄었는데, 이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명백히 보여주고 있다. 분명히 소셜 미디어가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소통을 하고 정보를 얻는 과정에서 분명한 이점이 존재한다. 하지만 문제는 필요 이상으로 과도하게 시간을 쓰게 만드는 사업적 기획과 설계로 인해 분명히 많은 것을 잃어간다는 것이다. 행복도를 약간 높여주지만 SNS를 사용하는 만큼 현실 시계의 가치가 높은 사교 활동이 줄어들어 그만큼 많은 가치를 잃어간다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연구자들은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을 때 디폴트 네트워크가 활성화된다고 생각하기 쉬웠다. 그러나 조금만 자신을 살펴보면 우리 뇌가 실제로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 때는 드물다는 사실이 명확해진다. 특정한 과제가 없어도 우리 뇌는 계속 소음을 일으키며 스쳐가는 생각과 관념에 고도로 활성화된다. 리버먼은 자기 성찰을 좀 더 깊이 해서 이런 이면의 활동이 소수의 목표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것은 바로 '다른 사람이나 자기 자신 또는 둘 다'에 대한 생각이었다. 다시 말해서 디폴트 네트워크는 사회적 인지와 연관된 것처럼 보였다. ... 다시 말해서 우리 뇌는 휴식시간이 주어지면 기본적으로 사회생활을 생각한다.

- p149

이 부분을 읽으면서 굉장히 공감이 되면서도 의아한 부분이 있었다. 무언가에 집중하거나 몰입하지 않은 상태, 즉 휴식 상태에 나는 줄곧 의식의 흐름대로 생각을 맡긴다. 가령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가면서 하나의 생각이 떠오르면, 그 생각이 내 의지와 상관없이 가지를 뻗어 새롭게 이동, 전개된다. 창밖을 보고 있어도 창밖 세상 구경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생각의 흐름 자체에 몰두되어 있다. 하지만 정신을 차리면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전체가 다 기억나진 않는다. 그 흐름이 너무나 빠르기 때문이다. 그러다 내려야 할 정거장에서 못 내릴 뻔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 생각이 어떨 때는 별 의미 없는 생각의 연속일 때도 있지만, 어떨 때는 과거에 지나간 일을 회상하며 반성하기도 하고 자책하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스스로 고통을 주기도 한다. 그것이 이 책에서 말하는 디폴트 네트워크 상태이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말하는 '멍때리기'는 과연 무엇일까? 나는 한 번도 멍때리기를 제대로 이해한 적이 없다. 어떻게 사람이 아무 생각도 하지 않을 수가 있단 말인가. 모니터를 보든 밖을 보든 사물을 보든 멍 때릴 때는 아무 생각을 안 한다는 지인들이 참 많다. 과연 멍때리기도 디폴트 네트워크 상태에 돌입하는 걸까? 그렇다면 사회적 인지가 시작될 텐데 왜 사람들은 기억하지도 인지하지도 못한다고 말하는 것일까? 이건 정말 미스테리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기원전 4세기에 펴낸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지금만큼 당시에도 시급했던 문제를 다루었다. 바로 어떻게 해야 좋은 삶을 살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

"가장 좋고 즐거운 삶은 지적인 삶이다. 이 삶은 가장 행복하기도 하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설명에 따르면 깊은 생각으로 가득한 삶은 행복하다. 그 이유는 숙고가 "그 자체로 가치를 지니기 때문이다. (...) 그 행위 말고는 숙고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 단호한 주장으로 아리스토텔레스는 이후 수천 년 동안 지속되었고 지금도 인간 본성에 대한 우리의 이해와 공명하는 생각을 사상 최초로 제시했다. 그 생각은 좋은 삶을 살려면 활동 자체가 주는 만족 외에 어떤 목적에도 기여하지 않는 활동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매사추세츠공과대학 철학교수 키어런 세티야는 <니코마코스 윤리학>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책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 난관, 필요의 존재에 그 가치가 좌우되는' 활동만으로만 삶이 구성되면 존재론적 절망에 취약해진다고 했다. 이 절망은 '인생이 이게 다야?'라는 불가피한 질문에서 생겨난다. 세티야가 제시하는 한 가지 해결책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조언대로 '내면의 기쁨을 안기는 원천'을 추구하는 것이다.

이렇게 기쁨을 안기는 일을 하는 것을 양질의 여가 활동이라고 하겠다.

- p181

*교훈1 - 수동적인 활동보다 적극적인 활동을 우선시하라.
*교훈2 - 기술을 발휘하여 물리적 세계에서 가치 있는 것을 만들어라.
*교훈3 - 사람들과 한데 모여 일정한 틀에 따라 교류할 수 있는 여가 활동을 찾아라.

- p204

결국은 우리의 소중한 시간이 디지털 세상에서 쓸데없이 흘러가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양질의 여가 활동을 통해 지적인 삶을 만들어야 한다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아직 지식도 지혜도 부족한 내가 반박할 순 없지만, '필요에 의한 일'들만 하다 가기엔 정말 인생이 허무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활동 자체가 주는 만족 이외에 어떤 목적에도 기여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 핵심인 것 같다. 보통의 일들은 '돈'을 벌기 위한 목적으로 뚜렷한 경우가 많으니까. 정말 여가 활동이 답인 걸까. 일을 돈벌이 수단으로 생각하지 않고, 진정한 만족감을 느끼기 위한 활동으로 여기거나 그렇게 바꾸면 더욱 의지가 생긴다는 말이 이렇게 연결이 되는 듯싶다.


당신의 시간 = 그들의 돈

나의 소중한 시간과 주의력이 엄격하게 설계된 수많은 기업들의 호주머니로 더이상 흘러가도록 가만히 두고 싶지는 않다.



디지털 미니멀리즘은 인터넷 시대에 이뤄진 혁신을 결코 배척하지 않는다. 그저 대다수 사람이 디지털 기기에 얽매이는 양상을 배척할 뿐이다. ... 나는 디지털 생활을 관리하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그 잠재력을 온전히 살릴 수 없다고 믿는다. 즉, 어떤 도구를, 어떤 이유로, 어떤 조건에서 활용할지 확신을 가지고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반동이 아니라 상식이다. ... 나의 바람은 디지털 미니멀리즘이 얼굴 없는 주의 경제 기업들이 아니라 우리에게 이롭도록 최신 혁신을 활용하는 건설적인 방식을 제공함으로써 현재 상황을 바꾸는 데 도움을 주는 것이다.

- p265

나의 관심, 주의, 행동이 무의식적으로 디지털 기기와 환경에 습관적으로 시간을 허비하도록 내버려 두지 말아야겠다. 진짜 나에게 필요한 도구들만 골라내야겠다는 다짐을 하고 또 하게 된다.




잠시 핸드폰이 없더라도 큰일이 나지 않는다는 걸 느끼자.

끊임없이 울리는 핸드폰 알람을 방해금지 모드를 이용해서 차단해버리자.

진짜 나에게 의미 있는 활동에 몰입함으로써 더 큰 가치와 행복을 누리자.




* 책 제목 : 디지털 미니멀리즘

* 저자 : 칼 뉴포트

* 출판사 : 세종

* 출간일 : 2019년 5월 28일


매거진의 이전글 설득하면 안 되는 이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