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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fe Designeer Jun 25. 2020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독서노트 #75 <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

삶을 알고자 한다면
주변의 수많은 사물을 느끼고 감상하라.
아름다움은 그것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졌을 때만 볼 수 있다.


아마도 누군가의 추천이 없었더라면 이 책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는 내가 쉽사리 접하기 어려운 책이었을지도 모른다. 이 책의 저자인 주광첸은 현대 미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저명한 미학자이자 존경받는 교육자다. 동, 서양 미학의 융합을 지향하는 깊이 있는 연구를 통해 현대 미학의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고 한다. 이 책은 일본의 중국 침략이 노골화되었던 1932년, 주광첸 선생이 청년들을 위해 쓴 열다섯 통의 편지를 책으로 엮은 것이라고 하는데, 복잡한 시대 상황에 갇혀 괴로워하는 청년들에게 진심을 담아 '아름다움'에 대해 이야기한 책이다.



이쪽저쪽 바쁘게 뱅뱅 돌아보지만 여전히 '이해'라는 두 글자에 발목 잡히기 일쑤다. 이해관계에 있어서만큼 사람들은 절대 타협하려 들지 않는다. 자기 자신이 늘 1순위니 말이다. 사기, 학대, 갈취 등 온갖 악행이 벌어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심미적 세계는 이해관계를 초월한 독립된 세상이다. 의지의 세계라고 해두자.

예술을 창조할 때나 감상할 때, 사람들은 이해관계가 얽힌 현실세계에서 이해관계가 전혀 존재하지 않는 이상세계로 옮겨가고자 한다. 예술 활동이란 '무소위이위無所爲而爲', 즉 목적 없이 하는 행위에 해당한다. 나는 학문을 하건 사업을 하건, 사람이라면 누구나 '목적 없이 하는 행위'에 대한 기대를 갖고 있다고 믿는다. 자신이 하고 있는 학문이나 사업을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품처럼 여기는 것이다. 이는 이해관계에 얽매이지 않고 이상과 감정에 대한 만족을 추구할 때 진정한 성취감을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멀리 내다볼 줄 아는 뛰어난 안목과 대범한 마음가짐이 있을 때라야 사업도 성공하는 법이다. 이러한 안목과 마음가짐이 없다면 이 사회엔 출세에 눈이 먼 정치꾼, 경제범들만 득실거리게 될 것이다. 이런 인종들이 많아질수록 사회는 점점 더 부패할 수밖에 없다. 당과 직위를 악용하는 정치가, 경제학자 그리고 사이비 철학자와 과학자들이 주는 인상을 딱 한마디로 정의하면 바로 '저속함'이다.

... 세속적인 사람은 '심미적 세계에 대한 소양이 없는' 사람이다.

내가 이 편지를 쓰는 목적은 아주 단순하다. 바로 세속적인 것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기 위해서다. 사실 이 문제는 개인의 성격, 성향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어서 말로 표현하기 쉽지만은 않다.

- p8

살면서 예술에 대해 그렇게 깊이 있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내게, 이 책의 서론 부분은 생각보다 많은 영감을 주었다. 세속적인 사람의 정의를 구더기처럼 더럽고 냄새나는 곳에 기생하며 자기 배나 채울 뿐 목적 없이 하는 행위의 숭고하고 순결한 정신에 대한 기대가 없는 상태 즉, '심미적 세계에 대한 소양이 없는' 사람이라 지칭하는 부분이 깨나 인상적이었다. 주광첸 저자가 말하려는 세속적인 것을 피하는 방법이 무엇일지 더욱 궁금하게 만드는 서론부였다.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은 천차만별이다. '아름다운가, 추한가'의 관점에서 보는 것은 하나의 시각이다. 그것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를 보는 것 역시 하나의 시각이며 '선한 존재인지, 악한 존재인지' 눈여겨보는 것도 또 다른 시각이다. 같은 사물을 두고도 보는 시각은 제각각이며 이를 통해 발견하는 현상 역시 다양할 수밖에 없다.

- p16

듣고 보면 뻔해 보일 수 있지만, 우리가 너무나 쉽게 간과하는 내용이다. 바로 '관점'이라는 것. 다양한 관점으로 사물을 혹은 상황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다들 자신만의 안경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그 안경을 벗고 새로운 안경을 쓰기는 쉽지 않다.


책에서 예시가 하나 나온다. 바로 정원에 한 그루의 '노송'을 보고 사람들마다 어떻게 다르게 보는지 그 현상을 이야기한다. 노송의 이미지는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의 성격과 정서를 고스란히 방증한다고 한다. 노송 이미지의 절반이 본디 타고난 것이라면 나머지 절반은 인위적인 성향이 짙은 것이라고. 목재상과 식물학자와 화가의 시각차를 예를 들어 설명하는데, 실용적 태도와 과학적 태도로 봤을 때 진정한 아름다움의 감상의 한계를 이야기한다. 화가만이 미적 태도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는 예시였다. 처음에 이 부분을 읽었을 때는 너무 지나치게 극단적인 예시라고 생각했다. 화가가 감상할 능력과 태도가 준비되었을지 모르지만, 사물을 이해하고 더 깊은 교감을 나누려면 기본적인 지식 역시 갖춰줘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화가라고 해서 그러한 지식과 역량을 다 갖추지 않은 예외들이 생각난 탓이다. 하지만 책 후반부로 갈수록, 그리고 이 책을 정리하며 여러 번 읽으면서 점차 저자의 의도에 가까워지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사람은 자신이 처한 환경 속의 사람과 사물에 대해 애증의 감정을 갖기 마련이며, 이를 추종하거나 또는 벗어나려는 의지와 행동도 보인다. 이것이 바로 실용적인 태도이다. 실용적인 태도는 실용적인 인식에서 비롯되며 실용적인 인식은 개인의 경험에서 우러나온다. ...
'인식'은 어떤 사람이나 사물을 접했을 때 마음속에서부터 그 의미를 이해하려는 작용이다. 의미에 대한 이해는 처음에는 단지 그 사람, 또는 그 사물이 갖는 실용적 가치에서 시작된다. 실용적 가치에 대한 이해를 하고 나면 그 사람이나 사물에 대한 개별적 반응과 행위가 수반된다. ...

과학적 태도는 실용적 태도와 완전히 다르다. 매우 객관적이며 이론적이다. 객관적 태도라 자신의 선입견과 감정을 완전히 배제하고 '목적 없이 하는 행위'에 근거해 진리를 탐구하는 자세를 말한다. 이론은 실용성, 즉 실제와 상반되는 개념이다. 이론은 본래 실용성에서 출발했지만 과학자들의 목적은 단순히 실용성을 찾는 데 있지 않다. ...
과학적 태도에는 감정과 의지가 배제되며 추상적 사고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과학자들은 혼돈스러운 상황 속에서 사물의 관계와 질서를 찾아내 개념을 정의하고 원리로부터 사례를 도출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원인과 결과를 규명하고 고유성과 우연성을 가려낸다. ...

실용적 태도, 과학적 태도를 통해 찾아낸 사물의 이미지는 독립적이지도 절연해 보이지도 않는다는 특징이 있다. ... 모든 정신을 집중해 독립적이고 절연한 이미지를 찾아내는 과정, 이것이 바로 심미적 태도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
의지와 추상적 사고를 벗어난 심리 행위를 '직감'이라고 한다. 그리고 직감으로 보는 독립적이고 절연한 모습을 '형상' 또는 '이미지'라고 부른다. 심미적 경험은 직감으로 이미지를 찾아내는 과정이다. '미'는 직감을 통해 발현된 사물의 이미지라는 특징이 있다.
실용적 태도에서는 '선善'을 최고의 목적으로 삼는다. 과학적 태도에서는 '진眞', 즉 진리가 최고의 목적이다. 그렇다면 심미적 태도에서 최고의 목적은 무엇일까? 바로 '미', 아름다움이다.

 - p22

어릴 때부터 들어온 미스코리아 진, 선, 미 때문에 마치 진이 제일 좋고, 그다음은 선, 마지막이 미라는 개념이 고정관념처럼 박혀 살아오며 성인이 되었다. 그저 진선미를 해석한다 한들, 한자의 뜻을 이해할 뿐이었다. 참되고, 착하고 아름답다는 일차원적 의미. 그런데 얼마 전 다시 재독 한 <미움받을 용기2> 책에서 진선미라는 말이 불쑥 튀어나왔다. 이 책의 내용과 오버랩이 되는 순간이었다.


실용적인 태도, 과학적인 태도, 심미적 태도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책에서 말하는 진(과학적 태도)과 미(심미적 태도)를 추구하는 것이 정신적 갈증이라는 내용이 사색에 잠기게 만들었다. 실용적인 가치 즉, 선을 추구하는 것이 어쩌면 가장 기본적이고 생명과 직결되는 부분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살아가면서 '필요'에 의해 선택하게 되는 행위, 쓸모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가장 낮은 수준의 가치 추구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메슬로우의 5단계 욕구의 가장 아래를 차지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다음 과학적인 원리, 이론을 이해하고 싶은 갈망은 실용에서 시작되었지만 한 차원 어려운 단계의 공부가 필요한 영역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몰라도 살아가는 데 문제는 없지만 알면 더욱 충족감을 느끼는 단계. 그런데 '미'라는 영역은 참으로 애매했다. 특히나 우리나라에서 '아름다움'이라는 영역, 예술이라는 영역의 가치가 그렇게 높게 평가받지 못해 왔다는 것을 얼핏 알고 있다. Art 선진국들에 비하면 우리나라에서의 예술에 대한 인식은 활자를 통해 공부한 사람보다 훨씬 못 미치는 기술자 취급을 하는 경우를 더 많이 봐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진정한 예술가의 위치에 선 사람들은 과학적 탐구만을 하는 사람이 보지 못하는 것들을 본다는 생각을 하니, 결코 경중을 쉽게 따질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디자인 대학원에서도 느꼈지만(물론 Art와 Design은 다르지만, 그러한 이론은 잠시 접어두고), 예술의 영역이라고 해서 단순히 어떤 기술력 즉 장인의 능력만을 요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역사적 지식 배경과 명확한 이론을 겸비하면서도 감상적 태도를 갖추어 창작을 이루어낼 수 있는 사람이 진정한 진가를 나타낼 수 있음을 확인했다. 단순히 사고력이 높다고 해서 갖출 수 있는 영역은 아니라는 것이다.



'생명'과 '행위'는 동일한 의미를 지닌다. '행위'가 자유로울수록 '생명'은 더욱 의미 있다. 인류의 실용적 행위는 모두 '유소위이위有所爲而爲', 즉 '무언가를 하기 위한 행위', '목적이 있는 행위'에 해당한다. 이러한 행위는 삶을 영위하기 위해 필요한 행위이다. 하지만 인간의 심미적 행위는 '무소위이위', 즉 '목적이 없는 행위'라고 볼 수 있다. 필요에 의해 움직이는 행위가 아니므로 온전히 자신의 소망에 따라 이뤄지는 행위다. 목적이 있는 행위를 하다 보면 사람은 환경에 좌우되는 노예가 되기 쉽다. 이에 반해 목적이 없는 행위를 하는 사람은 자신의 정신까지 자유로이 주재하는 존재로 거듭난다. ... 과학의 세계에서는 고립되고 절연 관계에 있는 사물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 반면 심미적 세계에서는 오히려 고립되고 절연한 존재가 그 본연의 가치를 인정받는다. 즉 '미'는 사물의 가장 가치 있는 일면을 부각시키고, '심미적 경험'은 인생에서 가장 가치 있는 순간에 해당하는 것이다.

- p24

'목적이 없는 행위'라는 말에 눈이 갔다. <디지털 미니멀리즘> 책에서도 소개되는 내용 중에,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인용하여 '좋은 삶을 살려면 활동 자체가 주는 만족 외에 어떤 목적에도 기여하지 않는 활동을 해야 한다'는 내용과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철학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삶의 진정한 행복, 진정한 아름다움, 진정한 만족을 느끼기 위해서는 '목적에 얽매이지 않는 행위'가 중요하다는 큰 맥락으로 다가가는 듯싶다.



정신분석학의 창시자 프로이트는 예술을 '성욕의 구현'이라고 보았다. 그는 성욕이 가장 원시적이고 강렬한 본능이며 사회의 도덕, 법률적 제약으로 충분히 만족되지 못하여 '무의식' 속에 잠재되어 있고, 이로 인해 콤플렉스가 생긴다고 주장했다. ... 종합해보면 프로이트의 예술관은 쾌락주의에 포함시킬 수 있을 것이다. ...

그런데 나의 원칙에서 보자면 프로이트 역시 쾌감과 미감을 혼동하고 있다. 예술적인 필요와 현실적인 필요를 헷갈리고 있는 것이다. 심미적 경험의 특징은 '목적 없이' 그 이미지를 감상하는 것이다. 창작 또는 감상의 순간에는 표현하고자 하는 감정에서 반드시 빠져나와 객관적인 입장을 견지해야 한다. 마치 스스로 감상하는 자의 입장에 서 있듯 해야 한다. ...

미적 경험은 직관적이며 따지지 않는다. 예술품에 정신을 집중하다 보면 자신마저 망각하게 된다. 내가 감상하는 이미지를 좋아하는지 어떤지 따지지도 않는다. 또 이미지를 보고 쾌감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따지지 않는다. 예술품을 감상하는 집중력이 클수록 자신이 그것을 감상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게 되며, 이때 생기는 감정이 쾌감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만약 쾌감을 느꼈다면 그것은 직관적 감상이 아니라 무수한 생각이 반복과 성찰을 거듭해 형성된 '반성'의 감정이 변질된 것이다.

- p62

정신분석학과 철학 등 이 분야에 대해 지식이 많지는 않지만, 일반적으로 가장 유명한 프로이트의 사상과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는 경우를 아들러의 심리학과 빅터프랭클의 저서에서 느꼈지만, 미학의 관점에서 저자가 이러한 반박을 하니 매우 흥미로웠다. 쾌감과 미감을 구분한다는 것 자체가 매우 흥미로웠고, 그에 대한 설명을 주저 없이 하는 저자는 역시 미학의 대가인 듯싶었다.



비평적 태도는 '감상적 태도' 즉 '심미적 태도'와 상반된다. 비평적 태도는 냉정하고 감정의 개입을 허용하지 않는다. 이 책의 서두에서 사려본 '과학적 태도'와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이 책의 서두에서 살펴본 '과학적 태도'와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감상적 태도는 나의 감정과 사물의 형상이 서로 교류하는 것이다. 비평적 태도는 반성과 이해를 요하지만 감성적 태도는 오로지 직감에 의존한다. 비평적 태도는 아름다움과 추악함에 대한 보편적 기준이 확립되어 있다. 그래서 작품 밖에서 그것을 판단하도록 요구한다. 감상적 태도는 그 어떤 편견과 선입견도 배제한 채 작품 안에서 작품의 생명을 함께 나눈다. 문학예술 작품이 비평적인 태도만을 견지한다면 나는 나, 작품은 작품일 뿐이므로 작품에 깊이 도취될 수도 없고 진정한 심미적 경험도 영원히 할 수 없다.

- p86

비평과 감상에 대한 정의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책의 내용대로라고 한다면, 학교에서 배우는 예술 작품에 대한 감상은 진짜 감상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정해진 이념과 기준의 잣대로 예술품을 평가한다.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기 때문에 이러한 가치가 있다는 식이랄까. 답정너 같다. 특히나 우리나라 교육 시스템 울타리에서 더 그렇게 느꼈을지도 모른다.


문득 내가 책을 읽고 난 뒤 이렇게 독서노트를 정리하는 내용과 행위는 비평적 태도에 가까울까 감상적 태도에 가까울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평'의 사전적 의미는 '사물의 옳고 그름, 아름다움과 추함 따위를 분석하여 가치를 논함'이다. '감상'의 사전적 의미는 '주로 예술 작품을 이해하여 즐기고 평가함'이다. '서평'의 사전적 의미는 '책의 내용에 대한 평'이다. '감상문'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사물이나 현상을 보고 느낀 바를 쓴 글'이다. 사실 서평이라는 말에는 약간의 부담감이 있었다. 서평은 아무나 쓰는 게 아니라고 생각해왔다. 책을 평해야 하는데, 내가 타인과 타인의 작품을 평할 만큼 그보다 지식이 많은가, 그보다 지혜로운가, 그보다 실력이 탁월한가 라는 측면에서 나는 고개를 끄덕일 수 없었다. 그래서 항상 나의 생각, 감정, 하고 싶은 말을 비록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진 못해도 느낀 바를 적는 쪽을 택했다. 독후감 내지는 독서 감상문이라는 말에 더 어울릴 법하다. 어릴 때는 독후감 또는 독서 감상문을 쓰고, 어른이 되면 서평을 쓰는 줄 알았다. 그런데 꼭 그건 아닌 것 같다. 학문적 소양이 뛰어나다면 평해도 좋지만, 그게 아니어도 어떠랴 싶다.



'미감'이란 무엇인가? 능동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미감은 이미지에서 비롯된 직감이고, 이러한 이미지는 독립적이며 현실적인 삶과는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다. 심미적 경험 가운데 자신과 사물의 관계에 대해 알아보았고, 자신의 감정과 사물의 형상이 서로 교감할 때 진정한 미의 이미지를 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소극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미감은 의지와 욕망이 수반되지 않으므로 실용적 태도와 다르며, 추상적 사고를 거치지 않았으므로 과학적 태도와도 다르다. 보통 사람들은 쾌감과 연상, 고증과 비평을 심미적 경험으로 여기는 경우가 있으나 이는 큰 착각이다.
'미', 즉 '아름다움'은 심미적 경험에서 생겨난다.

 - p90

미감에 대한 요약 내용이다. 실용적 태도도 과학적 사고도 아니고, 쾌감과 연상 작용에 따른 감정도 아니고, 고증과 비평을 일삼는 것이 결코 심미적 경험이 아니라는 것이다. 너무나 애매한 경계라 느껴지기에 나 같은 보통 사람들은 아마 이 책이 아니었더라면, '미'에 대한 생각을 그렇게 깊이 있게 할 기회는 별로 없을 것 같다.



철학자들은 대개 이성을 믿는 약점이 있다. 하지만 예술을 감상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감정이지 이성이 아니다. 사물이 아름답다고 느끼는 건 온전히 직감에 의해서지 칸트가 말한 것처럼 판단에 따른 것이 아니다. 또 헤겔이나 톨스토이의 주장처럼 각각의 사물에서 보편적 원리를 찾아내는 것도 아니다. 이러한 행위는 모두 과학적 또는 실용적 행위에 해당하는데, 심미적 경험은 이들 행위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름다움은 온전히 사물에 있는 것도 아니지만 사물과 무관한 것도 아니다.
... 아름다움은 사람의 마음과 사물이 결합해 탄생한 신생아와 같다.

미감은 이미지에 대한 직감이다. 이미지는 사물에 속하지만 사물의 것만은 아니다. 내가 없다면 이미지를 보는 주체가 없기 때문이다. 직감은 내 것이지만 온전히 내 것이라고만 보기 어렵다. 사물이 없다면 직감이 동요할 리 없기 때문이다. 아름다움 속엔 사람의 감정과 사물의 이치가 있다. 둘 중 하나만 없어도 아름다움은 나타나지 않는다.
- p93

칸트, 헤겔, 톨스토이의 생각도 모두 반박하는 저자의 주장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항상 인과관계, 논리성, 추론, 이성적 사고에 익숙했던 내게 직감이라는 영역은 굉장히 조심스러운 단어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살아오면서 직감이 이성보다 잘못된 선택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은연중에 세뇌되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이미지에 대한 직감, 예술작품을 보며 한껏 느껴보고 싶은 충동이 든다.


예술가는 절반은 시인이요, 절반은 장인이다.
시인의 오묘한 언어와 장인의 솜씨가
함께 발휘되어야 한다.
장인의 솜씨만 있고 시인의 언어가 없다면
창작이 불가능하다.
또 시인의 언어만 있고 장인의 솜씨가 없다면
완벽한 창작이라 하기 어렵다.


이 부분이 너무나 마음에 들었다. 우리는 모두 예술가가 아닐까 싶었다. 그리고 절반은 시인이어야 하고, 절반은 장인이어야 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단순히 기술력이 좋은 장인이 더 뛰어난 예술가가 되기 위해서 시인스러운 언어적 표현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시적 언어의 영감은 뛰어난데 장인의 솜씨가 없다면 역시 창작의 한계를 느낄 것이 분명하기에 너무나 공감한 부분이다.



'현실적 삶'은 인생을 다소 편협한 시각으로 본 것이다. 현실적 삶이 인생이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은 예술과 현실적 삶은 서로 동떨어져 있다고 여기며 자신의 삶에서 예술에 큰 가치와 비중을 두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예술의 가치와 지위를 보호하려는 사람들은 예술을 억지로 현실적 삶 속에 끼워 넣으려 한다. 이는 모두 예술을 오해하고 인생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행위이다. 현실적 삶은 인생 전반을 놓고 볼 때 하나의 단편적인 단계에 불과하다. 따라서 예술과 현실적 삶의 거리를 인정할 때 예술과 인생의 장벽을 무너뜨릴 수 있다.

엄격히 말해 인생을 떠난 예술은 무의미하다. 예술은 감정과 감흥의 표현이다. 인생은 감정과 감흥의 원천이다. 따라서 예술을 떠난 인생도 무의미하다. 창작과 감상은 모두 예술 행위이며 창작도 감상도 없는 인생은 모순투성이다. 인생은 넓은 의미의 예술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개인의 삶의 역사는 그 자신의 작품이다. 이 작품은 예술일 수도 있고 예술이 아닐 수도 있다. ... 삶을 이해하는 사람은 예술가이며 그의 삶은 예술 작품이 된다. 삶을 사는 것은 글을 쓰는 것과 같다. 올바른 삶에는 훌륭한 문장에서 발견되는 아름다움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 p183

예술이라는 말은 내 인생과는 멀찌감치 떨어진 분야라고 생각하곤 했다. 하지만 개개인의 인생이 하나의 예술로 승화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고, 각자가 모두 예술가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드니 가슴이 벅차오른다. 필요에 의한 행위, 쓸모에 의한 행위, 목적이 분명한 행위만 하는 것이 아니라 창작과 감상을 일상에 스며들게 만드는 인생으로 만들고 싶다는 욕심이 고개를 든다.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감상하라!




이 책은 겉으로 드러나는 '미'의 기준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이 아니었다. 인생 자체에 깊숙이 파고들어 진정한 '아름다움'을 느끼게 도와주는 그런 책이었다. 부록에는 색채의 미학, 형태의 미학, 소리의 미학이 나오는데 굉장히 전문적인 용어와 연구 내용이 나온다. 어떤 명확한 정의를 내리기보다는 여러 측면의 관점을 소개해주는 것에 가깝다. 저자의 엄청난 지식과 통찰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책이었다. 고정관념에 얽매인 '미'의 관점이 아닌, 인생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싶은 분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 책 제목 :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 저자 : 주광첸

* 출판사 : 쌤앤파커스

* 출간일 : 2018년 11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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