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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fe Designeer Jul 09. 2020

남자의 휴직, 그 두려움을 엿보다.

독서노트 #78 < 퇴사 말고 휴직 >

나중에 후회할지라도
현재의 삶이 최고의 순간이라고 생각하자.


이 책 <퇴사 말고 휴직>은 모범생으로 사회가 정한 길대로 착실하게 살아온 금융맨의 이야기이다. 직장생활 15년 차의 남자가 진짜 '나'를 찾겠다고 돌연 휴직을 한 이유와 과정이 들어있었다. 무엇보다 돋보였던 부분은 두 아이를 데리고 70일간 캐나다로 여행을 간 부분이다. 한 명도 아닌 두 명의 아이를 데리고 '아빠 어디가'를 해외에 가서 찍은 느낌이랄까. 대단한 모험심이 아닐 수 없다. 어쩌면 아무나 하기 힘든 도전일지 모르지만, 한 사람의 이야기가 바쁘고 치열한 우리의 인생에 어떻게 '쉼'을 만들어갈지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었다. 



답답해하던 내게, 지인은 그가 대학생 시절 했던 버킷리스트 프로젝트를 소개시켜 주었다. 일명 '버킷리스트 100' 프로젝트. 올해가 내 인생의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하고 싶은 일 100가지를 적어보는 것이다.
처음 들었을 때에는 다소 황당했다. 100가지 버킷리스트를 적는 것도 쉽지 않아 보였는데 1년이라는 제한 요건은 큰 장벽처럼 느껴졌다. ... 그는 1년 동안 하고 싶은 일 100가지를 적어 보면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 수 있다고 했다.

- p51

버킷리스트 100 프로젝트라니. 버킷리스트라는 말이 한창 유행할 때, 나는 굳이 작성해본 적이 없었다. 목표 리스트도 아니도 단순 위시리스트도 아니고 버킷리스트는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을 적는 거라고 들었는데, 사실 죽음이라는 것이 나에게 멀게만 느껴져서였을까 작성해 본 적이 없었다. 세상에 나오는 순서는 있어도 떠나가는 데에는 순서가 없다는데... 오늘내일이 마지막일 수도, 올해가 마지막일 수도, 우리의 삶은 그 끝을 알 수가 없는데... 갑자기 버킷리스트를 작성해야 할 것 같았다. 그리고 나를 알기 위해 100개까지 작성해 보기로 결심했다. 



<트렌드 코리아 2018>에서 처음으로 케렌시아(Querencia)라는 단어를 접했다. 케렌시아는 마지막 일전을 앞둔 투우장의 소가 잠시 숨을 고르는 자기만의 공간을 의미한다. 회사생활과 육아에 쫓겨 지내던 나 또한 잠시 숨을 고를 나만의 케렌시아가 필요했다.

- p83

케렌시아라는 말을 접하긴 했지만 무슨 뜻인지 정확히 몰랐다. 궁금하지도 않아서 그냥 넘겼다. 그런데 이 책에서 다시 마주했다. 저자가 친절히 설명해 주어서 '잠시 숨을 고르는 자기만의 공간'이라는 의미를 알게 되었다. 나 역시 저자처럼 나의 갑갑한 생활 속에서 나만의 케렌시아가 필요한 사람이었다. 그것이 공간이든, 시간이든, 마음이든 어떠한 형태로든 케렌시아가 필요했다.



비를 맞으며 뛰고 있는 나를 보니 미친 것 같았다.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 비를 맞고 뛰고 있나 싶었다. 매일 달리기를 한다고 상을 받는 것도 아니고, 하루 거른다고 누가 뭐라고 하는 것도 아닌데 매일매일에 집착하는 내가 미친 것 같았다.
달리고 있는데 나 같은 이들을 몇 명 더 볼 수 있었다. 그들도 나처럼 미친 걸까? ...  멀리서 다가오는 그들의 표정을 볼 수 있었다. 비와 상관없다는 듯이 한 발 한 발 내딛는 무심한 표정들. 비는 내리는 거고, 달리는 건 달리는 거라는 듯. 그 순간 '멋지다'라는 감탄사가 나왔다. 묵묵히 제 길을 가는 미친(?) 사람들이 멋져 보였던 것.

- p87

저자는 강박적으로 보일 정도로 자신이 목표한 행동을 '매일 하는 것'에 집착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왠지 모르게 내가 떠올랐다. 나 역시 매일매일 하는 것에 집착하는 타입이다. 하루라도 거르면 큰일이 날 것 같은 느낌에 압박을 자주 받는 사람이다. 물론 요즘은 반드시 매일 하는 행동과 매일 하지 않더라도 여유를 두는 행동을 나누어서 나에게 틈을 좀 주고 있다. 저자처럼 매일 달리고 싶지만 나는 비가 오면 비를 피해 지하주차장을 달려본 적도 있고, 집 안에서 달리기를 하거나 심지어 제자리 달리기를 한 적도 있다. 저자만큼 미치지(?) 못하고 몸을 사리는 사람인 것 같다. 모두가 매일매일 묵묵히 제 갈 길을 가는 미친(?) 사람이 되지는 못할지도 모른다. 그것이 더 잘한 것이라고 혹은 더 잘못된 것이라고 평하고 싶진 않다. 자신만의 철학으로 그 길을 빠르게 혹은 천천히 가더라고 가고자 하는 길을 응원하는 사람이고 싶다. 매일 하든, 삼일에 한번 하든 그 길을 가는 사람은 언젠가는 자신만의 나무에 열매가 맺히는 것을 보게 되지 않을까.



마라톤이 인생과 참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쭉 펼쳐진 오르막길을 달릴 때 꽤 부담스러웠다. 언제 다 올라가야 하나 끝이 없어 보였다. 순간 김민식 PD의 <내 모든 습관은 여행에서 만들어졌다> 속 이야기가 생각났다. 김 PD는 자전거로 산을 오를 때 시야를 저 멀리 산 정상에 두지 말고 아스팔트에 고정해야 한다고 했다. 그래야 힘이 빠지지 않고 순간에 집중할 수 있단다. 산 정상만 바라보면 진도가 나지 않고 멀게만 느껴지기 때문이다.
... 인생도 마찬가지였다. 너무 큰 목표 때문에 좌절할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그 목표를 좇기보다는 지금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하고 집중할 필요가 있겠구나 싶었다. 내 목표가 흔들리지만 않는다면, 그렇게 순간순간 집중하다 보면 어느새 목표에 닿을 수 있을 것이다.

- p98

저자는 42.195km 마라톤을 완주한 진짜 독한 사람이다. 4시간을 넘게 걸렸다고 하는데, 나는 4시간을 넘게 달릴 수 있을까? 나는 마라톤을 뛰어본 적이 아직 없다. 항상 언젠가 10km 마라톤에 도전하고 싶은 욕심은 있다. 지금은 건강이 좋지 않아서 10km까지도 턱없이 부족하지만 언젠가 반드시 달리고 싶다. 많은 사람들이 인생을 마라톤에 비유한다. 내가 10km의 마라톤이라도 완주하면 그 비유를 좀 더 와닿게 느낄 수 있지 않을까?


김민식 PD의 말처럼, 산을 오를 때 시야를 저 멀리 산 정상에 두지 말고 아스팔트에 고정해야 한다는 말에 너무나 공감이 되었다. 나는 학창 시절 체육대회가 열리면 단거리 달리기 또는 계주 선수로 줄곧 나가곤 했다. 하지만 오래달리기는 가장 취약점이었다. 그래서 체력장에서 1200m를 달려야 할 때면, 기록보다는 완주에 목표를 두곤 했다. 그때의 핵심은 앞사람의 발과 바닥만 보는 전략을 취했다. 앞사람의 발자국과 약 세 발자국 정도의 차이로 달리면 아무 생각 없이 달릴 수 있는 효과를 알아냈다. 앞을 보거나, 경치를 보거나, 관중을 보면 힘이 드는데, 이상하게 앞사람 발자국만 보면 마음이 편했다. 그게 나만의 전략이라고 생각했지만, 너무나 이상해서 입 밖으로 내본 적은 없었다. 그런데 그러한 방법이 나에게만 유효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통하는 방법이라는 것을 알게되니 갑자기 무한 공감대가 펼쳐졌다. 그리고 얼마 전 지난 상반기를 결산하고 반성하며 새롭게 계획을 짜는 데 있어서 이 부분을 십분 반영했다. 원래 자주 접하고 잘 알던 내용이지만, 지금 이 순간의 목표에 순간순간 집중할 수 있도록 계획을 전면 수정하니, 하루하루가 즐거워졌다. 인생에는 다 때가 있는 것일까.


두려움은 두려움에 대한 두려움으로만 증폭된다. 


구본형 작가 저서 <나는 이렇게 될 것이다>에 나오는 말이라고 한다. 우리는 살면서 '두려움'을 빼고는 말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매 순간이 두려움으로 휩싸이는데 이것을 얼마나 잘 수용하고, 잘 다루고, 어떻게 함께 하느냐에 따라 달라질지 모른다. 생각해보면 나는 두려움과 불안감에 쉽게 흔들리는 사람이다. 정말 내가 만든 두려움은 진짜가 아니라 내 두려움이 만들어낸 증폭된 가짜 두려움이 더 많이 차지했을지도 모른다. 두려움이 찾아올 때면, 저자처럼 그 실체가 무엇인지 하나씩 구체적으로 나열해보는 방법을 써 봐야겠다. 



그때부터였다. 너무 애쓰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나에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기보다는, 스스로에게 괜찮다고 이야기해 줄 수 있는 틈새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게 쉼의 시작이었다. 그렇다고 글을 안 쓴 것도, 운동을 안 한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하루쯤 못한다고 애태우지 않는 것, 아등바등하지 않는 것 자체가 휴식이 되었다. 혹자는 그게 무슨 쉬는 것이냐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잘 쉬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나에게, 편안해지면 언제나 찾아오는 '불안감' 때문에 괴로워하는 나에게, 마음의 여유를 준다는 것 자체가 큰 쉼이 되었다.

- p202

저자와 성향이 비슷했던 것일까. '잘 쉬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나에게'라는 말, '편안해지면 언제나 찾아오는 불안감 때문에 괴로워하는 나에게'라는 말이 너무나 공감이 되었다. 그래서 자기 합리화를 하는 연습을 하기도 한다. 스스로에 대한 잣대가 너무나 엄격한 나이기에, 자기 합리화를 연습하지 않으면 스스로에게 아픈데 또 때리는 채찍질을 미친 듯이 하는 나이기에, '쉼'이라고 하는 단어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해 주었다. 나에게 '쉼'은 '너무 애쓰지 않는 것', '괜찮다고 다독여주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을 보면서 '의미를 찾아야 한다는' 의무에서 벗어나야겠다고 생각했다. 굳이 '본전' 생각하고 애쓰며 다니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금 이 순간을 잘 즐기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 p214

저자가 여행을 다니며 성인 입장에서 당연히 생각할 수밖에 없는 '본전 뽑기'에 대해 아이의 답변과 비교하며 말한 부분이다. 나 역시 매 순간 '본전 찾기'에 대해 집착을 해 왔던 것 같다. 사람들이 가성비를 따지는 이유는 결국 내가 지불한 비용 대비 얻는 가치가 얼마나 높은가를 말한다. 그런데 그 가치의 기준이 터무니없이 높다면? 그럼 아무리 다른 사람이 가성비가 좋다고 말해도 내 입장에서는 가성비가 좋다는 말이 쉽게 나오지 않을 것이다. 여행을 갈 때면, 자주 가는 장소가 아니기에 간 김에 이것도 보고 저것도 보고,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해야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여기까지 왔는데...'라는 생각. 하지만 그냥 그 순간을 즐기는 아이들이야말로 그 장소에서 '해야 하는' 의무감이 아닌, '하고 싶은' 것들, '할 수 있는' 것들에 집중하는 쿨한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 필요한 것 역시 아이처럼 느끼는 것이 아닐까. 늘 어렸을 때부터 '해야 하는' 일만 세뇌당해서 그런지 이게 쉽지 않겠지만, 아이를 보고 배워야 할 것이 많은 것 같다. 



팀장이 어떤 사람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팀장을 바라보는 선배의 태도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선배는 먼저 팀장을 인정했기에 팀장 복이 많았던 것이다.
결국 내가 팀장 복이 없었던 것은 내 마음가짐의 문제였다. 나는 인정받고 싶으면서도 남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 나의 문제 말이다.

- p264

초, 중, 고까지 함께 나온 친한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는 내게 '나는 참 인복이 많은 것 같아.'라고 말한 적이 있다. 나는 그 친구에게 '좋겠다. 나는 참 인복이 없는 것 같은데... 만나는 담임샘마다, 들어가는 반마다... 이러쿵저러쿵...' 10여 년이 훌쩍 지난 지금이지만, 그때의 말이 아직도 기억이 나는 이유가 어쩌면 내가 계속 이런 마인드로 살아왔기 때문이지 않을까. 8명의 팀장을 겪어봤지만, 탐장 복이 딱 1번뿐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은 저자처럼 내 마음가짐의 문제였을지도 모른다. 남을 쉽게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 문제, 혹은 내가 생각하는 기준치가 너무나도 높았던 문제, 아니면 내가 남을 좋게 평가할 만큼 마음의 여유가 지독히도 없었던 문제. 전부 다일지도. 그래서 다시 생각해보니, 나는 참 인복이 많은 사람인 것 같다. 내가 그때 그런 사람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그런 도움을 받지 않았더라면, 그런 실패하는 경험을 그때 하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내가 있었을까.



어쩌면 한계는 내가 만든 것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처음부터 못한다고 정의를 내리고, 쳐다보지도 않았던 것들이 어쩌면 할 수 있는 것들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아쉬움도 들었다. 벽을 치는 것도, 제한을 두는 것도 그리고 한계를 설정하는 것도 결국 나였다. 실상은 아무도 모르는데 말이다.

- p277

내가 안된다고 생각하면 한없이 안 되는 일이고, 내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어떻게 해서든지 되게 만들 수 있는 게 우리의 일이지 않을까. 늘상 들어오던 뻔해 보이는 좋은 말들이지만, 늘상 들어도 내가 실천하지 않아 새롭게 반성하게 만드는 말들이기도 하다. 결국 내가 변하면, 세상은 변한다.




제목부터가 퇴사가 아닌 휴직에 초점이 맞추어진 책이라 기대 반, 우려 반이었다. 나는 이미 휴직도 경험해 보았고, 퇴직도 경험해 보았다. 책 표지 앞뒤에 적힌 내용과 책날개 내용을 꼼꼼히 읽고, 서론부인 저자의 글을 읽으면서 그러면 안되지만 불편한 마음과 기대감이 교차했다. 이 책을 읽는 나의 지금 상황과 마음가짐이 열려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 경험과 내 환경을 비교하며 읽을 수밖에 없음을 잘 알기에.


하지만 우려와 달리 생각보다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아서 술술 읽어나갔다. 남자의 휴직을 말했지만, 실상 여자가 읽더라도 충분히 함께 공감할 수 있는 부분도 많고, 적용해볼 만한 아이디어도 많이 떠올랐다. 자기계발을 가장한 에세이라고 해야 할지, 에세이를 가장한 자기계발서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분명 직장에 다녀본 사람이라면 어떤 식으로든 자극을 받을 수 있는 책이었다. 또한 육아에 대해 실질적인 고민을 해본 사람이라면 아이를 어떻게 키워나가야 할지, 부모로서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지에 대해서도 함께 생각해 볼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었다. 


자기계발에 별로 관심이 없거나, 열심히 혹은 노오력을 하는 것에 대한 회의감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반감을 가질 수도 있다. 결국은 나를 알아가고 무언가를 시도해야 하는데, 일상에 지쳐버리면 당장 그런 마음을 갖기 어려울 테니까 말이다. 그리고 이 책은 결국 휴직이 키워드이기 때문에, 돌아갈 곳이 있는 사람의 이야기이다. 이미 퇴사를 해서 돌아갈 곳이 없어 자신만의 길을 개척해야 하는 사람이라면 단순 부러운 감정이 들 수도 있고, 머나먼 남 얘기처럼 느낄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결국 어떻게 바라보느냐 태도의 문제로 귀결될 것이다. 나에게 영감을 주는 부분을 취해서, 내 인생을 취하게 만들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이 책은 휴직을 고려하거나 휴직 중이어서 실질적인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또는 사회가 정해준 길대로 바쁘디 바쁘게 살아왔지만 삶의 '쉬어가기'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 책 제목 : 퇴사 말고 휴직

* 저자 : 최호진

* 출판사 : YH Media

* 출간일 : 2020년 6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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