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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fe Designeer Aug 06. 2020

별 볼일 있는 사람의 이야기

독서노트 #81 < 고작 혜성 같은 걱정입니다 >

하하. 그렇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망원경을 번쩍 들어
아이들 앞에 우주를 놓아주는 사람이다.


우연히 알게 된 이 책 <고작 혜성 같은 걱정입니다>를 접하며, 천문대에서 일하는 조승현 저자의 삶의 이야기가 어떤 식으로 전개될지 궁금했다. 별 보는 일을 좋아하던 나지만, 실제로 별에 대해 잘 알지 못하기에 어떤 내용일지 더욱 궁금했다. 주변에 대학 후배 중 한 명이 별 보는 취미를 시작했다. 모두가 잠든 밤마다 카메라를 들고 나서야 하는 이 취미가 굉장히 무서운 취미라면서 웃는 후배의 얼굴이 떠올랐다.


"쌤, 이런 걸 왜 이제야 보여주세요! 너무 이쁘잖아요!"
슈퍼문도 월식도 아니었다. 어느 평범한 날에 뜬 달이었다. 그러나 그 달이 나뭇잎에 가려지고 산등성이에 걸쳐지자 전혀 다른 풍경이 탄생했다. 아이들의 환호를 들으며 생각했다. 달이 더 크고 밝아야 하는 게 아니구나. 무언가를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아주 작은 변화로도 가능하구나.  

- p99

책 속 에피소드를 듣다 보면, 저자가 천문대에서 우리가 잘 모르는 밤하늘에 대해, 우주에 대해 이야기해주는 강사로서의 삶을 엿볼 수 있다. 그리고 아이들을 무척 좋아하는 사람인 듯 보인다.


평온한 밤하늘에 떠있는 반짝이는 별들과 둥글고 훤히 밝혀주는 달을 관찰하길 좋아하는 나는 크고 밝은 달만이 매력적이라고 생각했었다. 나에겐 망원경과 같은 장비가 없다. 그저 하늘의 날씨에 따라 운 좋게 잘 보이길 바래야 하는 평범하디 평범한 '맨 눈'이 내 장비다. 매일 같은 얼굴을 보여주는 달도 아주 사소한 변화로 이렇게 달리 느껴질 수 있다는 얘길 들으니, 앞으로 보게될 달은 왠지 이전과는 다를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삶은 그런 민망한 순간들의 연속인 것 같다. 나에겐 중요한 것이 누군가에겐 보잘것없는 것이 된다. 내가 건넨 것과 상대로부터 받은 것이 영 다를 때가 있다. ... 아무리 좋고 귀한 것을 주어도 결국 판단은 받는 쪽에서 하기 마련이다. 이것이 미래 인류의 존망이 달린 태양의 부재도 누군가에겐 '그래서요?'가 되는 이유다.
그러니 누군가에게 무엇을 줄 때는 곱게 싸서 주어야 한다. 아무리 맛 좋은 커피를 준대도 잔에 손을 데면 말짱 도루묵이다. 뜨거운 커피는 받침 위에 놓고 줘야 한다. 천문학 정보를 전달할 때 역시 재미난 상상과 이야기로 포장을 해야 한다. 그러니 심지어 사랑을 줄 때는 시간과 공을 들여 천천히 주어야 탈이 없다. 무엇이든 줄 게 있다면 조금 더 신중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 더 좋아하는 것일수록, 더 그렇다.

- p141

저자는 아이들에게 태양이 50억 년 뒤에 죽는다고 알려주지만, 아이들의 대답은 '그래서요?'였다. 소위 'So what?'인 셈이다. 저자에게 소중한 천문학이 타인에겐 그렇지 않을 수 있다. 나도 곰곰이 생각해봤다. 나도 과학적 원리를 발견할 때마다, 우리 주변 자연현상의 숨겨진 비밀을 발견할 때마다 즐거웠다. 그리고 신기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일상생활에 아무런 효용이 없다. 초승달이 초저녁에 볼 수 있고, 그믐달은 새벽녘에 관찰할 수 있다는 지식을 알고 있은들 사는 데에는 그다지 실용적이진 않다.


무엇이든 줄 게 있다면 더 신중해야 한다는 말이 콕 박혔다. 나에게 좋은 것이 남에게도 항상 좋은 것은 아니다. 아무리 좋은 것을 나누어 준다 해도 상대방에게 필요하지 않거나 원하지 않으면 그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다. 그래서 저자가 말하는 포장을 해야 한다는 것, 천천히 공을 들이고 신중할 필요가 있다는 말이 와 닿았다. 무엇을 전달하느냐보다 어떻게 전달하느냐에 따라 모든 것이 바뀔 수 있다.



잘 모르는 것은 두렵다. 이 사람과 지금은 행복한데 늙어가면 고통스럽지 않을까. 회사를 옮겼다가 괜히 더 힘들어지진 않을까. 김치찌개에 소시지를 넣으면 망하지 않을까. 이렇지 않을까. 저렇지 않을까. 답은 늘 껍질 안에 담겨 있기에 깨보지 전까지는 알 수 없다. 삶은 계란인 줄 알았는데 생계란일 수도 있고, 병아리가 몸을 웅크리며 부화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티베트 속담에 '걱정한다고 걱정이 사라지면 걱정이 없겠네'라는 말이 있다. 물론 걱정하지 않는다는 것이 말처럼 쉽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허나 걱정은 골리앗이고 긍정은 다윗인 것을. 체급 차이가 너무 많이 나서 자꾸 지게 된다. 그래도, 실체 없는 걱정이 또 다른 걱정을 물고 올 때마다 나는 나에게 말해준다. '고작 혜성 같은 걱정이야'라고.

 - p161

책 제목이 왜 '고작 혜성 같은 걱정입니다'일까 궁금했었다. 여기에 해답이 있었다. 옛날 로마 황제 네로가 무엇인지 알 수 없었던 혜성의 존재에 공포에 떨며 혜성이 나타날 때마다 후계자가 될만한 사람들을 죽였다고 한다. 혜성이 더러운 얼음덩어리에 불과하다는 것도 이 책의 내용을 통해 알게 되었다. 얼마 전 별 보는 취미를 가진 대학 후배가 요즘 혜성을 관찰하기 좋은 시즌이라는 말을 했던 것 같다. 하지만 관측이 어려워 아쉽다는 내색을 비춘 게 기억이 났다. 혜성 같은 걱정... 모르는 것에 대한 두려움. 어쩌면 우리의 삶은 두려움 투성이 일지 모른다. 


티베트 속담에 자꾸만 눈이 갔다. '걱정한다고 걱정이 사라지면 걱정이 없겠네'라니. 그러면 걱정한다고 걱정은 사라지지 않으니 걱정할 필요 없다. 뭐 이런 뜻이겠지? 하지만 걱정 없는 삶이 어딨겠는가. 그저 저자의 말처럼 혜성 같은 걱정이라고 이름을 붙여보련다. 그러면 한결 마음이 가벼워질 듯하다.



왜, 초콜릿도 카카오 함량 56퍼센트는 다소 달고 99퍼센트는 쓰기만 하지 않은가. 그러므로 72퍼센트쯤에서 적당히 만족하는 게 인류의 적절한 타협점일 게다. 그러니 자연을 바라보고자 하는 나의 열망도 '72퍼센트 정도의 관측지'로 만족해야 하는 게 아닐까 싶었다. ...

만약 지금 당신이 춥고, 더럽고, 불편함으로 가득한 관측지에서 실망하고 있다해도 100퍼센트 완벽한 관측지는 분명 존재한다. 그리고 어디선가 당신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 p167

최적의 관측지를 찾고 싶지만 잘 되지 않는 고충을 카카오 함량 초콜릿과 비유하다니 참신했다. '그렇지... 72퍼센트로, 세상에 완벽한 게 어딨겠어' 라며 공감하고 있었는데, 저자는 결국 끝까지 포기하지 말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해준다. 참 고맙게도, 분명 어딘가 100퍼센트 완벽한 관측지가 있다고. 어쩌면 우리 각자가 헤매는 삶에도 원하는 방향으로 계속 가다 보면 그래도 '그래, 이거야!'라고 생각하는 순간이 오지 않을까 간절히 희망을 가져본다.


내일은 또 어떤 기적을 만나게 될까? 
학교, 회사, 집, 거리 ... 세상 곳곳에 널린 이 경이로움을 우리는 일상이라고 부른다. 그렇지만 평범한 만남과 일상은 생각해보면 모두 기적이다. 견우와 직녀도, 우리도 모두 기적 같은 만남 속에 살고 있다. 

- p193

견우와 직녀별은 어떻게 생겼을까 내심 궁금해졌다. 우리의 일상이 기적이라고 딱히 생각해본 적이 별로 없었다. 내가 태어나 만난 사람들, 내가 경험했던 시간들, 내가 생각하고 행동했던 그 무엇들이 모두 기적과도 같은 일이라고 생각하니, 문득 주변에.. 그리고 사소한 일상에 감사함을 느낀다. 너무 평범하다 못해 너무 당연해서 잊혀졌던 일상 속 나의 삶을 한 번 되돌아보게 된다. 이렇게 글을 쓰는 것 또한, 기적이다.



신기했다. 똑같이 먹고 똑같이 경험해도 생각하는 바가 달랐다. 오로라를 보러 온 여행엔 95개의 단점과 5개의 장점이 있었다. 95번 즐겁다가도 5번 힘들면 실패한 여행이라고 여기는 나 같은 사람이 있고, 95번 힘들었지만 5번 즐거우면 뛸듯이 행복해하는 사람도 있다. 이 중 즐거운 세상에 사는 사람은 누구일까. ...

눈으로 볼 수 있는 우주의 모든 물질을 합쳐봐야 고작 우주의 5퍼센트다. 나머지 95퍼센트는 눈에 보이지 않는 암흑 물질과 암흑 에너지로 채워져 있다. 이름이 어렵듯 정체가 뭔지도 모른다. 있다는 사실만 알 뿐이다. 우주의 대부분은 인류가 잘 모르는 것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소리다.
그럼에도 우리는 눈에 보이는 5퍼센트의 우주에 감탄한다.

- p197

95번 즐겁다가도 5번 힘들면 실패한 여행이라고 여긴다는 저자의 말에 격한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그리고 95번 힘들었지만 5번 즐거우면 뛸듯이 행복해하는 그런 사람이고 싶다. 즐거운 세상에 사는 사람 말이다. 


물리학 교수 김상욱 저자의 책 <떨림과 울림>에서도 비슷한 내용을 접해서 대충 알고 있었다.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은 우주에서 봤을 때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고. 우주는 거대한 암흑으로 덮여있다는 것. 


우리는 정말 우리가 눈으로 보는 물질들을 발견하고 탐구하고 감탄하며 산다. 어쩌면 95퍼센트의 보이지 않은 실체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내가 95번 힘든 일이 있어도 그 힘든 일의 정체를 잘 모른다고 생각하고, 즐겁게 발견한 5번의 일에 초점을 맞추며 살면, 내 인생은 감탄사 연발이지 않을까 상상해본다. 무한 긍정 에너지로 무장하고 싶다.




이 책은 천문학과 관련된 지식을 전달하는 내용은 아니고, 별을 보는 사람으로서의 경험을 토대로 우리가 삶에 대해 고민하는 주제를 다시금 생각하게 해주는 에세이였다. 에피소드마다 별을 통해, 우주를 통해, 태양과 달을 통해 오버랩되는 우리의 삶이 한층 더 친근하게 느껴졌다. 때로는 솔직하기도 하고 때로는 따뜻함이 잔뜩 묻어나기도 했던 저자의 생활과 생각 속에 깊이 빠져들었다.


나는 어두운 밤하늘을 관찰하는 걸 좋아하기에, 중간중간 삽입되어 있는 별 사진을 보는 재미가 있었다. 하지만 사진을 찍어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가장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온전히 담을 수 있는 장비는 우리의 '눈'밖에 없다는 사실을. 사진을 아무리 잘 찍어도, 눈으로 보는 그 신비함과 경이로움은 사진으로 담아낼 수 없다. 그래서 더, 이 책을 읽고 천문대에 가서 별구경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시절 시험기간, 오밤중에 도서관에서 나와 청승맞게 밤하늘의 별을 올려다봤던 그때가 떠오른다... 




* 책 제목 : 고작 혜성 같은 걱정입니다

* 저자 : 조승현

* 출판사 : 마음의숲

* 출간일 : 2020년 7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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