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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fe Designeer Aug 03. 2020

열아홉에게 배우는 인생

독서노트 #80 < 내가 학교 밖에서 떡볶이를 먹는 이유 >

'내가 왜 이렇게 살아야 하지?'


책의 제목 <내가 학교 밖에서 떡볶이를 먹는 이유>만 봐서는 어떤 내용이 담겨 있을지 예측할 수 없었다. 다만, 일반적이지 않은 청소년의 이야기가 담겨 있을 것 같긴 했다. 우리는 습관적으로 10대를 그냥 '학생'으로 부른다. 뭐 심지어는 20대 초반까지도 대학생이니 보통은 '학생일 때'라는 말을 자주 쓰곤 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은 뒤 '어휘' 선택에 있어서 굉장히 신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의 주제는 바로 학교를 다니지 않는 학교 밖 청소년의 자퇴 사용설명서이기 때문이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따로 있는데 왜 관심도 없는 분야를 공부해야 하는 건지, 남보다 덜 힘들다고 내가 더 힘들어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어디에 써 있기라도 한 건지 나는 대체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래서 결국 자퇴를 생각했다. 하루하루를 정신 건강을 소모해 가며 억지로 살아갈 바에는, 학교를 나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자유롭게 하는 게 나을 테니까.

- p37

저자는 열일곱 살의 나이에 자퇴를 했다. 그런데 자퇴의 이유가 매우 매력적이다. 바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있어서. 이렇게 살다가는 자신의 정신건강에 좋지 않을 것 같아서. 너무 놀라웠다. 지금 현재 20, 30대들이 퇴사를 하는 이유와 거의 맞물리기 때문이다. 회사에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꿈도 없이 돈을 벌기 위해 매일 쳇바퀴를 굴려야 하는 삶에서 벗어나고 싶은 것과 동일하게 느껴졌다. 학교라는 굴레를 벗어나 하고 싶은 일을 분명하게 갖고 있는 나은진 저자가 오히려 더 부럽고 대단해 보였다.


"거기 112죠?"
뒤늦게 울음이 터졌다. 하지만 꿋꿋이 주소를 밝히고 경찰을 불렀다. 집에 경찰이 들이닥치는 초유의 상황이 벌어졌다. ... 경찰까지 대동한 거대한 폭풍이 지나간 이후 나도, 부모님도 심리적으로 많이 지쳤다. 자퇴를 허락받고 난 뒤, 나를 걱정해 주는 부모님의 진심을 들었다. 그제야 그 진심이 들렸다. 나도 솔직한 내 심정을 밝혔다.
부모님과 자퇴 이후의 계획을 합의 하에 수정하고 자퇴 날짜를 잡았다. 결코 작은 소동이라고 말할 수 없는 설득 과정이었다. 실제로 자퇴하기 위해 부모님과 많은 갈등을 겪는 청소년들이 있을 것이고, 이러한 충돌이 두려워 말조차 꺼내지 못한 청소년들도 제법 있으리라 생각한다.

- p33

좀 놀랐다. 경찰을 부르다니?! 그것도 자퇴를 위해 부모님과의 몸싸움을 제지하기 위해! 그러나 그만큼 저자는 절실했던 게 아닐까. 저자의 부모님 역시 그만큼 간절했기에 자신들의 뜻을 굽히지 않고자 힘을 내둘렀던 것은 아닐까.


나는 저자와 완전히 비슷한 삶을 산 것은 아니지만, 나 역시 열일곱의 나이에 자퇴를 고민해 봤던 사람으로서 '자퇴'라는 주제에 대해 많은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물론 나의 자퇴 시도는 실패했다. 어쩌면 나는 실패할 수밖에 없었고, 실패한 게 다행일지도 모른다. 저자처럼 반드시 하고 싶은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으니까. 그저 학교의 수많은 비리와 일개 담임선생의 권력과 횡포에 기가 눌려, 그런 식으로 학교를 '다니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저자의 경험처럼 엄마보다는 아빠와의 진지한 대화를 하게 되었고, 내가 부모님의 이유에 설득이 된 건 아니지만, 내가 부모님을 설득시킬 수 없다는 현실을 깨닫고 자퇴를 포기한 것이다.



자퇴는 퇴사와도 같다. 내가 다니고 있는 곳이 나와 맞지 않으면 언제든 그곳을 떠날 수 있다. 다른 곳을 찾아 다시 입사할 수도 있다. 하고 있는 일이 아닌, 내가 배우고 싶은 일을 배워도 된다. 사람들은 퇴사 고민에는 이유를 들어주며 본인 스스로 선택하라 말한다. 반면 자퇴는 무슨 이유에서든 극구 말린다. 퇴사하면 경력이 쌓이지만, 자퇴하면 졸업장이 사라지고 학생이라는 자격을 잃는다고 말한다.

- p178

책의 초반부부터 저자가 자퇴를 결심한 이유, 자퇴를 진행하는 과정을 보면서 나는 시종일관 '퇴사'를 생각했다. 자퇴는 일종의 퇴사와도 맥을 같이 한다고 느껴졌다. 그렇게 한참을 생각하던 차에 중반부를 지나 저자 역시 자퇴와 퇴사를 비교한다. 하지만 결론적으로는 퇴사와 자퇴가 다르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나는 좀 다르게 생각했다. 물론 저자의 말대로 회사는 내가 다니다가 맞지 않으면 언제든 떠날 수 있다. 다른 곳에 입사할 수도 있고, 퇴사는 자퇴보다 좀 더 자유로워 보이고, 외부의 시선이 좀 더 유연해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당장 회사에 손실이 되지 않는 한, 퇴사하는 사람을 극구 말리진 않으니까.


하지만 어른들이 일반적으로 갖는 자퇴 후의 삶에 대한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과 거의 동일한 맥락으로, 퇴사 후의 삶에 대해 비슷한 불안을 보인다.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모를 경우, 회사 밖으로 나가는 것은 위험하다. 말 그대로 생존이기 때문에. 나이가 어리면 어리다는 이점이 있지만, 애매한 경력과 애매한 나이를 넘어서는 순간 그 두려움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학교는 정해진 기간을 졸업하면 그만이지만, 회사는 잘리기 전까지 다니다 정년퇴직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사람들도 많다. 요즘처럼 취업이 힘든 시기에는 더더욱 재취업이 안될까 두려워 '자퇴'와 같은 '자진 퇴사'는 웬만한 용기 가지고는 어림도 없다. 특히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입장이라면 말이다. 그래서 결혼을 하지 않은 사회 초년생들의 거침없는 퇴사 행열이 가능한 이유는 아직까지 자신의 몸뚱아리만 책임지면 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나이를 먹고, 책임져야 할 누군가가 있다면 퇴사를 극구 말려야 하는 이유는 수없이 증가하니까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저자가 자퇴를 결심했듯이, 퇴사를 할 때도 마찬가지로 자신이 원하는 삶이 있고 그것을 실천할 자신이 있다면 얼마든지 퇴사를 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무책임해 보이는 행동일지라도 그것은 개인 입장에서 보면 분명 스스로를 책임지는 행위라고 생각하니까 말이다. 내가 주체적인 삶을 살아야 내 가족도 주체적인 삶을 살 수 있다고 믿는다.



일단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어떤 진로를 갖고 싶은지 탐색부터 시작해야 하는데 그걸 도와주는 기관이나 검사를 전문적으로 받기가 어렵다. 학교 밖 청소년들에게 도움을 주는 기관이나 자퇴 정보도 찾기 힘든데 진로 문제는 어떻겠는가? 정말, 정말 어렵다. 찾아도 안 나오는 경우가 허다하다. 내가 하고 싶은 게 정해져 있어도 그걸 도와주거나 공부하게 해 주는 프로그램이 없으니 원하는 교육을 받을 수 없게 되고, 점차 꿈을 잃게 된다.

- p207

우리나라의 정규 교육 과정은 그냥 '대학 입시 전용' 지식 교육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10대 청소년들에게 다양한 경험을 하게 도와주고 자신의 적성에 맞는 꿈을 찾아갈 수 있도록 해주는 시스템은 거의 없다고 본다. 저자는 '작가'가 되고 싶은 꿈을 이루기 위해 학교를 나오지만, 나와서도 지원받기 어려운 현실에 좌절하기도 하고, 그를 극복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다. 어쩌면 저자는 본인이 하고픈 일이 명확하기에 그나마 나은 현실일지도 모른다. 만약 다른 이유로 학교를 나오게 되면? 경제적으로 어려워서 혹은 어떤 문제를 일으켜서, 아니면 어쩔 수 없는 상황상 학교를 나온 청소년이라면 어떨까? 최소한 학교 다니는 청소년과 비슷한 수준으로 지원을 받는 게 당연한 권리로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학교를 다니건 다니지 않건, 학교의 입시 교육을 제외하고 다른 경험을 하게 해주는 사회적 분위기가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의 교육 문화, 그리고 과거의 주입식 교육에 의한 부작용, 기성세대의 교육에 대한 경직된 철학이 변하지 않는 한, 빠르게 변화하는 지금 시대의 청소년에게 우리 교육 시스템은 결코 맞지 않다고 생각한다.



자퇴는 여전히 부끄러운 것일까? 학교를 그만두고 다른 교육 방식을 택하는 건 문제가 있는 아이들만 하는 일일까? 어쩌면 학교 밖 청소년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언론과 사회적 시선 때문에 자퇴의 본질적 의미를 외면하는 것은 아닐까?
대답은 오로지 자신에게 달려 있다. 나는 대답을 대신 건네주지 않으려 한다. 스스로 깊이 생각해 보고 답을 찾은 뒤, 앞으로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소리 내야 한다. 당사자들이 더욱더 목소리를 높이고 우리 또한 사회에 속해 있음을 알려야 한다. 자퇴생의 부모들도 입을 열어 목소리를 내야 한다. 내 아이가 자퇴를 고민하고 있거나, 자퇴했다는 사실을 부끄럽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학교 밖 청소년을 둔 부모로서 현 사회가 학교 밖 청소년을 바라보는 시선을 똑바로 인식하고 좀 더 자세히 살펴야 한다.  

- p252

저자는 자퇴생이라는 사회의 부정적인 시선 때문에 겪는 고충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불리한 입장에 선 사람으로서 옳지 않다고 생각되는 사회적 관습을 타파하기 위해 용기 있게 자신의 목소리를 높인다. 그러면서 자퇴생 당사자뿐만 아니라 그들의 부모들도 그러한 사실을 부끄럽게 생각하는 현상을 꼬집어 변화의 필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어찌 보면 사회적으로 약자의 입장에 선 사람들이 스스로 목소리를 내는 것은 정말 중요한 일인 것 같다.


나는 계속 퇴사와 연관을 지어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퇴사를 세 번 해본 사람으로서 그리고, 주변에 자의든 타의든 퇴사를 통해 경력이 단절된 여자들을 보았고, 20~30대의 젊은이들이 회사를 오래 다니지 않고 나오는 것을 많이 봤다. 그들에게 보내어지는 시선들을 느끼고 직, 간접적으로 경험하며 결코 자퇴생들이 느끼는 사회적 약자의 입장과 다를게 무엇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경제활동을 잠정적이든 영구적이든 중단한 사람들에게 잘못된 시선을 보내거나 색안경을 껴서는 안 된다는 것을, 퇴사자들이 직접 이야기하는 요즘의 상황이 오버랩된다.



2019년 기준으로 학교 밖 청소년의 수는 40만 명으로 추산된다. 매년 9만 명의 청소년들이 학업을 중단하고 있다고 한다. 전체 인구에서 청소년의 비율이 줄어 매년 학교에 진학하는 청소년들은 줄어들었지만, 그에 반해 학교를 떠나는 학교 밖 청소년의 비율은 높다. 특히 고등학교 시기에 학교를 그만두는 청소년들이 가장 많은 것으로 조사되었다.

- p140

학교 진학하는 청소년은 줄고, 학교를 떠나는 청소년이 늘고 있다니... 10대의 삶은 지금의 나의 삶과 약간 동떨어져 있어서 그런지 이런 부분들은 잘 모르고 지냈다. 앞으로도 학교를 떠나는 학생들은 늘어날 것 같다. 몇 년 전에 <학력 파괴자들> 책이 한 때 유행한 적이 있었다. 학교가 결코 인생을 성공적으로 책임져주지 않는다는 맥락은 어쩌면 계속 유효할 것이다. 내 아이가 커서도 정규 교육 과정 12년을 모두 마칠 거라는 생각을 나는 하지 않는다. 이것은 사회적으로 분명히 시사하는 바가 크다.


"너, 몇 학년이니?"
청소년을 향한 기본 질문이 이제는 좀 바뀌었으면 좋겠다. 어느 학교에 다니는지 몇 학년인지 사회가 정한 숫자로 질문하는 대신 "넌 뭘 좋아하니?"와 같이 청소년의 흥미와 취미 등을 물었으면 좋겠다. 청소년이라면 모름지기 학교에 다닐 거라는 인식이 사라지고, 자퇴가 특별한 선택이 아닌 것이 되었으면 한다. 다양한 교육 체계와 방식이 있음을 모두가 인정하는 사회가 오길 바란다.

- p252

 "너, 몇 학년이니?" 나도 어렸을 때 많이 들었던 말이고, 너무나 친숙한 말이며, 현재도 앞으로도 무심코 쓸 말이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나니 용어 선택에 정말 신중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난번 <다가오는 말들> 책에서도 은유 작가가 한 청소년에게 '요즘 친구들은 생각이 깊고 훌륭하다'는 표현을 잘못 썼다가, 되려 그 청소년에게 '여성이 글도 쓰고 대단하다'라고 하면 어떻겠냐는 반격을 받았던 것이 생각났다. 상대방이 어떠할 것이라는 고정관념, 사회적 편견은 아마 하루아침에 없애긴 힘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를 포함하여 세상 사람들이 다양한 생각을 가지고 각기 다른 삶을 살아가는 것이 지극히 당연하다는 것을 깨달으면, 그런 편견에서 나올 수 있을 거라 희망을 가져본다.



결국 모든 문제는 돈이 없어서 생기는 건가, 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제까지 열띤 토론을 하고 들은 게 탁상공론에 불과했다는 느낌도 있었다. ... "이 토론회가 탁상공론으로 끝나지 않고, 시의회 및 교육부 등 다양한 부서들과 연결해 새로운 정책을 마련하는 기반이 되길 바랍니다." ...

나의 역사를 부끄러워하지 않는 청소년, 나의 성장을 기대하는 청소년이 늘어갈수록 우리 사회는 고질적인 문제점이 사라지고 양질의 성장을 이룰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작지만 우선 나부터 그 첫걸음을 함께하고 싶다. 그것이 청소년으로서, 이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지금 내 앞에 놓인 가장 멋진 과제라는 생각이 든다.

- p281

회사의 중요한 의사결정을 하든, 국가에서 중요한 정책을 고민하든 우리는 살면서 탁상공론을 수없이 많이 보게 된다. 저자는 어린 나이에 이를 목격한 듯싶다. 하지만 좌절하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에 감명을 받았다. 우리 아이도 이렇게 당당하게 자신의 역사를 써 나가는 사람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굳이 미성년이 아니어도, 다 큰 성인이어도, 자신의 역사를 부끄러워하지 않는 성인으로서 당당하게 살아가는 것이 가장 중요할지도 모른다. 부모로서의 당당함, 사회의 일원으로서의 당당함이 함께 자라나는 자식과 후배들, 삶의 동료들에게 모두 좋은 영향을 끼칠 거라고 생각한다. 나부터 나의 역사를 부끄러워하지 말자. 나보다 인생을 10여 년을 덜 살았지만, 열아홉의 젊은 저자에게서 배워야 할 인생의 태도란 이런 것 같다. 나이가 많다고 항상 배울 점이 있는 것은 아니든, 나이가 어리다고 배울 점이 없는 것도 아니다.



틀에 맞는 교육은 없지만 각자의 틀은 있다. 그리고 자신의 틀을 넓히고 늘리며 세상을 향해 월드스쿨링의 자세로 공부하는 일, 이는 자퇴생이든 자퇴생이 아니든 세상을 공부하는 월드스쿨러라면 한 번쯤 깊이 고민해야 할 일이다. 이제 세상은 바야흐로 월드스쿨러를 기다리고 있다.

- p270

이제는 평생 배워야 하는 시대라고 말하지 않는가. 틀이 정해진 교육은 오히려 위험하다. 학교가 학교라는 권위를 사용해 자신들만의 틀에 갇혀 세상에 낙오되지 않기를 바란다. 그럴수록 똑똑하고 현명한 청소년들은 구시대적인 사상에 사로잡힌 학교라는 틀에서 벗어나고자 애를 쓸 것이니까. 배움은 학교라는 특정 장소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요즘 같이 수많은 컨텐츠와 그 컨텐츠가 유통되는 방식 역시 다각화된 시대에는 더 이상 학교와 같은 특정 시스템만 정답은 아니다. 세상은 평평해지고 사람들은 서로 연결된 지 오래다. 지식을 배우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닌, 세상을 알고 세상을 살아가는 법을 배울 수 있게 우리의 교육 시스템이 변화하기를 바래 본다.




이 책은 사실 큰 기대 없이 읽기 시작했다. 저자의 나이가 어리기도 했지만, 그보다 '자퇴'라는 주제가 나의 현재의 삶과 직결되지는 않기에 그저 멀찌감치 떨어져 새로운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려는 가벼운 마음가짐이었다. 자퇴 사용설명서이니 만큼, 실질적인 자퇴를 위한 준비와 그와 관련된 팁들을 상세히 설명해준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책은 나이가 어려도 자신의 삶에 대해 얼마나 주체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지, 자립심을 어떻게 기를 수 있는지가 분명히 나타난 책으로 저자의 생각과 실행력을 높이 평가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잊고 싶었던, 그래서 잊고 지냈던 나의 청소년기를 다시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고, 예전에 가졌던 자퇴에 대한 생각을 다시 떠올려 보게 되었다. 자식을 키우는 입장에서 부모 자식 간의 의사소통 방식에 대한 부분도 실용적이고 인상적이었다. 그러면서 왜 나는 어릴 때 이 저자처럼 행동하지 못했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으며 자기반성도 되었다. 어쩌면 자신의 삶을 책임질 줄 아는 그런 자세를 어린 나이에 갖게 됨으로써 저자는 나중에 큰 일들을 성취해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무엇보다 자퇴와 퇴사의 유사성을 발견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요즘의 퇴사는 거의 트렌드와도 같다. 퇴사해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일들을 꾸려나가는 젊은이들의 도전 및 시행착오와 관련된 이야기가 넘쳐나는 시대다. 나 역시 그러한 삶의 대열에 함께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저자는 자퇴를 이야기하고, 자퇴생으로서의 부당한 처사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그와 동시에 나는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 있는 학생들의 상태에 집중하게 되었다. 그들 역시 학교 안이 최선은 아니라는 걸 알 것이다. 내가 어떤 마인드로 학교라는 울타리를 버텼는지만 생각해도 금방 답은 나온다. 어른들은 자퇴하지 않은 학생들이 사회적 불리함을 덜 받는다는 사실에 그저 안도할 뿐인 것이다. 그것은 막연한 안심이다. 자퇴 후의 삶에 대한 불확실성에 대한 불안보다 학생 신분이라는 예측 가능한 상황에 대한 심리적 안정감을 추구하며 스스로 합리화하는 태도에 불과하다고 생각이 들었다. 학교 안에 있다고 해서 결코 안전하지도 않고, 결코 심리적으로 더 성숙하지도 않으며, 절대 먼저 독립적이거나 자립심을 기를 수 있는 유리한 위치에 있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는 모두 알아야 한다.

이 책이 놀라웠던 부분은 청소년 에세이로서 개인의 이야기의 약간 발전된 상태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 목소리를 낸다는 것이었다. 교육 제도의 불합리성, 학교와 정부의 역할, 돈에 얽혀 실질적으로 실행력이 더딘 우리의 시스템을 콕 집어낸다. 그리고 자퇴생이라는 입장으로 이야기 하지만, 내가 보기엔 사회적인 모든 약자와 소수자들을 대변할 수 있는 이야기이며, 이와 관련된 사회적 문제로의 관심에 트리거 역할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아쉬웠던 부분도 있긴 하다. 학교 밖으로 몰리는 학생의 수 등 사회 현상을 이야기하는 부분에서 수치적으로 뒷받침되면 훨씬 설득력이 있을 부분이 근거 데이터가 약간 부족해 보였다는 점이다. 물론 이 책은 개인 에세이이고 논리적으로 맞아야 하는 논문은 아니기에 상관없지만, 그래도 좀 더 학교 밖 청소년이 늘어나는 실태를 대변해줄 확실한 숫자들이 나오면 설득력을 더 얻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그리고 부모의 입장에서 해주면 좋을 일들이 내용은 좋지만 표현 방식에서 약간 어색하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었다. 또한 자신의 경험과 생각이 반복되는 부분이 많아서 그런 부분들을 자연스럽게 스킵하기도 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어떤 태도로 삶을 대해야 할지 한 번 고민해보게 만드는 책이었다. 나이가 어리다고 우습게 보거나 얕잡아 봐서는 안된다. 어리면 경험의 양이 약간 부족할 수는 있어도, 성숙의 질이 부족한 것은 결코 아니다.

이 책을 읽으며 '이 책은 과연 누가 읽어야 할 책일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십 대 청소년들? 십 대 청소년을 자식으로 둔 부모들? 자퇴를 한 학교 밖 청소년들?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 있는 어른과 학생들? 자퇴를 한 사람들에게 선입견이 있는 사람들? 맞을지도 모르지만 내가 생각한 답은 이와는 좀 다르다.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고 싶지만 현재 그러지 못하는 사람들. 변화하는 세상에 변화를 감지하지 못하는 기성세대들. 변화에 발맞춰 가장 앞서간다고 생각하지만 기성세대를 단순히 '꼰대'라 규정하면서 오로지 자신들만 옳다고 착각하는 십 대들. 주류, 통상적, 일반적, 정상적, 평범이라는 말로 포지셔닝된 대세의 흐름 뒤에 그저 숨어있는 사람들. 그리고 거기서 벗어나 소위 틈새시장에서 스스로 기가 눌려 눈치 보는 사람들이다.


읽으면서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책이었다. 이번 독서노트는 도저히 줄일 수가 없어서 내 생각을 그냥 담아내어 버렸다.




* 책 제목 : 내가 학교 밖에서 떡볶이를 먹는 이유

* 저자 : 나은진

* 출판사 : 라라의숲

* 출간일 : 2020년 6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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