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노트 #80 < 내가 학교 밖에서 떡볶이를 먹는 이유 >
'내가 왜 이렇게 살아야 하지?'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따로 있는데 왜 관심도 없는 분야를 공부해야 하는 건지, 남보다 덜 힘들다고 내가 더 힘들어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어디에 써 있기라도 한 건지 나는 대체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래서 결국 자퇴를 생각했다. 하루하루를 정신 건강을 소모해 가며 억지로 살아갈 바에는, 학교를 나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자유롭게 하는 게 나을 테니까.
- p37
"거기 112죠?"
뒤늦게 울음이 터졌다. 하지만 꿋꿋이 주소를 밝히고 경찰을 불렀다. 집에 경찰이 들이닥치는 초유의 상황이 벌어졌다. ... 경찰까지 대동한 거대한 폭풍이 지나간 이후 나도, 부모님도 심리적으로 많이 지쳤다. 자퇴를 허락받고 난 뒤, 나를 걱정해 주는 부모님의 진심을 들었다. 그제야 그 진심이 들렸다. 나도 솔직한 내 심정을 밝혔다.
부모님과 자퇴 이후의 계획을 합의 하에 수정하고 자퇴 날짜를 잡았다. 결코 작은 소동이라고 말할 수 없는 설득 과정이었다. 실제로 자퇴하기 위해 부모님과 많은 갈등을 겪는 청소년들이 있을 것이고, 이러한 충돌이 두려워 말조차 꺼내지 못한 청소년들도 제법 있으리라 생각한다.
- p33
자퇴는 퇴사와도 같다. 내가 다니고 있는 곳이 나와 맞지 않으면 언제든 그곳을 떠날 수 있다. 다른 곳을 찾아 다시 입사할 수도 있다. 하고 있는 일이 아닌, 내가 배우고 싶은 일을 배워도 된다. 사람들은 퇴사 고민에는 이유를 들어주며 본인 스스로 선택하라 말한다. 반면 자퇴는 무슨 이유에서든 극구 말린다. 퇴사하면 경력이 쌓이지만, 자퇴하면 졸업장이 사라지고 학생이라는 자격을 잃는다고 말한다.
- p178
일단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어떤 진로를 갖고 싶은지 탐색부터 시작해야 하는데 그걸 도와주는 기관이나 검사를 전문적으로 받기가 어렵다. 학교 밖 청소년들에게 도움을 주는 기관이나 자퇴 정보도 찾기 힘든데 진로 문제는 어떻겠는가? 정말, 정말 어렵다. 찾아도 안 나오는 경우가 허다하다. 내가 하고 싶은 게 정해져 있어도 그걸 도와주거나 공부하게 해 주는 프로그램이 없으니 원하는 교육을 받을 수 없게 되고, 점차 꿈을 잃게 된다.
- p207
자퇴는 여전히 부끄러운 것일까? 학교를 그만두고 다른 교육 방식을 택하는 건 문제가 있는 아이들만 하는 일일까? 어쩌면 학교 밖 청소년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언론과 사회적 시선 때문에 자퇴의 본질적 의미를 외면하는 것은 아닐까?
대답은 오로지 자신에게 달려 있다. 나는 대답을 대신 건네주지 않으려 한다. 스스로 깊이 생각해 보고 답을 찾은 뒤, 앞으로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소리 내야 한다. 당사자들이 더욱더 목소리를 높이고 우리 또한 사회에 속해 있음을 알려야 한다. 자퇴생의 부모들도 입을 열어 목소리를 내야 한다. 내 아이가 자퇴를 고민하고 있거나, 자퇴했다는 사실을 부끄럽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학교 밖 청소년을 둔 부모로서 현 사회가 학교 밖 청소년을 바라보는 시선을 똑바로 인식하고 좀 더 자세히 살펴야 한다.
- p252
2019년 기준으로 학교 밖 청소년의 수는 40만 명으로 추산된다. 매년 9만 명의 청소년들이 학업을 중단하고 있다고 한다. 전체 인구에서 청소년의 비율이 줄어 매년 학교에 진학하는 청소년들은 줄어들었지만, 그에 반해 학교를 떠나는 학교 밖 청소년의 비율은 높다. 특히 고등학교 시기에 학교를 그만두는 청소년들이 가장 많은 것으로 조사되었다.
- p140
"너, 몇 학년이니?"
청소년을 향한 기본 질문이 이제는 좀 바뀌었으면 좋겠다. 어느 학교에 다니는지 몇 학년인지 사회가 정한 숫자로 질문하는 대신 "넌 뭘 좋아하니?"와 같이 청소년의 흥미와 취미 등을 물었으면 좋겠다. 청소년이라면 모름지기 학교에 다닐 거라는 인식이 사라지고, 자퇴가 특별한 선택이 아닌 것이 되었으면 한다. 다양한 교육 체계와 방식이 있음을 모두가 인정하는 사회가 오길 바란다.
- p252
결국 모든 문제는 돈이 없어서 생기는 건가, 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제까지 열띤 토론을 하고 들은 게 탁상공론에 불과했다는 느낌도 있었다. ... "이 토론회가 탁상공론으로 끝나지 않고, 시의회 및 교육부 등 다양한 부서들과 연결해 새로운 정책을 마련하는 기반이 되길 바랍니다." ...
나의 역사를 부끄러워하지 않는 청소년, 나의 성장을 기대하는 청소년이 늘어갈수록 우리 사회는 고질적인 문제점이 사라지고 양질의 성장을 이룰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작지만 우선 나부터 그 첫걸음을 함께하고 싶다. 그것이 청소년으로서, 이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지금 내 앞에 놓인 가장 멋진 과제라는 생각이 든다.
- p281
틀에 맞는 교육은 없지만 각자의 틀은 있다. 그리고 자신의 틀을 넓히고 늘리며 세상을 향해 월드스쿨링의 자세로 공부하는 일, 이는 자퇴생이든 자퇴생이 아니든 세상을 공부하는 월드스쿨러라면 한 번쯤 깊이 고민해야 할 일이다. 이제 세상은 바야흐로 월드스쿨러를 기다리고 있다.
- p2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