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크로스오버 남성 4중창 경연을 하는 ‘팬텀싱어3’라는 TV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습니다. 음악 경연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참가자들은 서로 다른 백그라운드를 가지고 있지만, 하나같이 출중한 실력과 누구와도 견줄 수 없는 열정을 갖고 있기에 시청자들을 빨려들게 만드는 그런 신기한 마력이 있는 것 같았습니다. 각기 다른 배경과 재능을 가진 이들이 왜 ‘팬텀싱어3’에 도전하게 되었을까요? 누군가는 하는 일이 잘 안풀려서, 혹은 자신만의 꿈을 이루기 위해, 새로운 도전을 통해 성장하고 싶어서 등 분명 사람들은 저마다 각기 다른 이유를 가슴에 품고 있을 것입니다.
닉 수재니스의 저서 <언플래트닝>의 내용 중에 천 근의 무게를 짊어진 듯, 숨 막힐 듯 경직된 채 살아가는 규격화된 인간의 삶을 말하는 부분이 생각났어요. 철학자 헤르베르트 마르쿠제가 말한 ‘일차원적 사고와 행동’을 따르는 인간들의 단조로움에 문제를 제기합니다. 책에서 비유되는 우리의 삶은, 특정한 시스템의 기준대로 분류되고, 이미 방향이 정해진 트랙 위에 놓여 지정된 경로에 따라 앞으로 이동해 지시를 받습니다. 정교하게 구성된 수많은 과정을 통과하여 정해진 매뉴얼에 따라 정보를 주입받고, 공간뿐 아니라 시간과 경험도 상자 안에 넣어지는 형태이지요. 말하는 자는 듣는 자에게 일방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고, 외부에서 주입된 내용이 내면에 그대로 흡수되는 문화는 어쩌면 우리 삶의 문제를 보여주는 듯 합니다. 스스로 보지도 못하고 보이지도 않는 동떨어진 힘에 의해 인간은 자신의 가치를 평가받으며, 모두가 좁디좁은 틈에 끼워 맞춰져 누구나 대체 가능한 인간으로 규격화되는 행태에 대해 역설하고 있으니까요.
살아온 환경은 다르지만 노래에 열정을 다한 인생을 살아온 ‘팬텀싱어3’의 도전자들 역시 어쩌면 사회가 정해놓은 길대로 가다가 더이상 규격화되고 싶지 않았기에 자신만의 목표를 향해 새롭게 도전한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보통의 사람들처럼 정규 교육과정을 받고 자라왔습니다. 남들처럼 10대에는 어른들이 대학에 가야 한다고 해서 대학입시만을 위해 공부했고, 20대에는 돈을 벌어야 하니 취업을 위해 준비했고, 때가 되면 결혼은 하는 거라고 주입이 되어서 가정을 이루었고, 30대가 되니 집, 육아, 사회생활에 고군분투하며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평범한 사람이 되어 있습니다. 숨 막힐 듯 경직된 채 살아가는 규격화된 삶이란 이런 게 아닐까 싶었습니다. 공장에서 수없이 찍어내는 하나의 물건과 같은 삶이라면, 나라는 인간의 상자의 최종 목적지는 어디일지 궁금해지더군요.
<힘 빼기의 기술> 책을 쓴 김하나 작가는 책에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힘을 빼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줄 힘이 처음부터 없으면 모를까, 힘을 줄 수 있는데 그 힘을 빼는 건 말이다.” 저는 어쩌면 매일 매일 힘을 주기만 하는 삶을 살아왔는지도 모르겠네요. 알게 모르게 세뇌되어 정해진 틀 안에서 아등바등 살아남는 것만이 경쟁에서 이기는 길이라고 착각하고 살았는지도 모릅니다. 최고의 크로스오버 4중창이 되는 목표는 아닐지라도, 최근에는 기존 궤도에서 벗어나 새로운 길을 만들어가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마치 운동장에 그려진 트랙을 따라 달리듯, 언제까지 숨가쁘게 달려가야만 하는걸까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동안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아서 알지 못했습니다. 잠시 쉬어가도 된다는 것을요. 기나긴 인생의 여정, 가능성 넘치는 개개인의 다양한 삶에 ‘일시정지’ 버튼 한 번 눌러도 큰일이 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쉼’이란 무엇일까요? 바쁜 현대인들에게 휴식은 반드시 이수해야 하는 필수과목이 되어버린 것 같습니다. 휴식이라는 게 별 게 있을까요? 마음의 안정을 위해 명상하기, 여행하기, 마음 맞는 친구들과 술 한 잔 기울이며 수다떨기와 같은 것들도 휴식이 되겠지요. 회사에서 일하다가 잠시 짬을 내어 동료와 커피 마시기, 공부하다 말고 밤하늘의 별 구경하기, 취미 활동하기, 고단한 일과 육아 모두 퇴근 후 꿀같은 시간을 즐기기, 좋아하는 주전부리와 함께 하루종일 넷플릭스 정주행하기, 용기가 많이 필요하겠지만 휴직이나 퇴사하기 등 휴식의 방법은 무궁무진 한 것 같습니다. 사실 이것들은 제가 실제로 해 본 ‘쉴 수 있는 권리’였어요. 하지만 매번 효과가 있진 않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최근 한달 넘게 잠시 일상의 평정심을 잃고 흐트러져서, ‘지금은 휴식기간이라고 생각하자’하고 자기 합리화를 한 적이 있어요. ‘헝클어진 일상’을 ‘쉼’이라는 말로 가장해보았지만, 다시 정상 궤도로 올리지는 못했답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나에게 진짜 ‘쉼’이란 무엇일까’에 대한 답을 찾게 되었어요.
제가 정의 내린 ‘쉼’은 바로 ‘괜찮다고 다독여주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이유든 잠시 목표했던 길에서 벗어나 엉뚱한 일에 시간을 낭비하더라도 ‘괜찮다’고 스스로 인정해주고, 수용해주는 것이 제게 진짜 필요한 ‘쉼’이었습니다. 다시 스스로를 점검하고 가고자 하는 목적지를 생각하게 만드는 힘, 저에게는 ‘쉼’이 단순히 물리적인 공간도, 시간적인 투자도 아닌, 마음 속에 있었다는 것을 이번 기회에 알게 된 것이죠. 저는 생각보다 힘을 빼고 쉬어가는 일이 쉽지 않았던 사람인 것 같습니다.
‘팬텀싱어3’의 도전자들이 좋은 동료를 만나 새롭게 도전하고 실패도 하고 성취감도 맛보며, 실력으로나 내면적으로나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았습니다. 어쩌면 그 분명한 목표를 향해 가는 바쁜 와중에 자신만의 ‘쉼’을 잘 활용하지 않았을까 추측해봅니다.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힘을 조절해 가며 살아가겠지요. 오늘도 어김없이 정해진 길을 따라 허겁지겁 숨가쁘게 달려가기만 하는 일상을 보내고 있다면, 잠시만 멈추어 나를 위한 ‘쉼’을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요? 인생은 망중한, 바쁜 와중에 한가로움일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