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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fe Designeer Sep 08. 2020

병원에 가는 진짜 이유

[신문연재]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2020년 9월호 - 인생단상 #4

우리는 아프면 병원에 갑니다. 어딘가 치료해야 할 때 혹은 예방을 해야 할 때 병원에 갑니다. 요즘은 마음이 아파 심리치료를 위해 병원을 찾기도 합니다. 얼마 전에는 정신의학과 의사를 주인공으로 한 <저녁 같이 드실래요>, <영혼수선공>과 같은 드라마가 나올 만큼 눈에 보이지 않는 곳을 치료하는 것에 친숙해져 가고 있지요. 신경과 전문의인 올리버 색스의 저서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에서도 인간의 뇌와 정신활동에 관한 실제 환자 사례들이 등장합니다. 이제 우리에게 신체뿐 아니라 정신적인 문제를 치료하기 위해 병원에 찾는 것은 사회적으로 어색하지 않은 분위기가 되고 있습니다.


얼마 전 저는 2주가 넘도록 위 통증이 지속되어 병원을 찾게 되었습니다. 그 후 3주가 지나도록 약을 먹었지만 효과가 거의 없었고, 속 쓰림, 울렁거림, 복통은 계속 유지가 되었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호흡 곤란 증상이 발현되었어요. 심장과 가슴, 복부 부위부터 근육이 수축되어 온 몸에 조여 오는 통증을 느꼈고, 숨을 쉬는 게 어려워졌습니다. 저림 증상은 사지로 확산되어 손, 발이 모두 저린 느낌이 유지되었어요. 이대로 숨을 못 쉬는 게 아닐까 두려움에 떨었죠. 어떻게 할지 고민하다 시간을 지체했지만, 결국 저린 몸을 이끌고 급한 대로 동네 가까운 내과로 향했습니다. 도착하고 나니 증상이 조금 호전되었습니다. 의사는 제 복통을 확인하고 확실히 위에 염증은 있는 것 같다고 판단 후 위내시경을 권유하였고, 호흡곤란에 대해서는 ‘과호흡’이라는 증세임을 말해주었습니다. 또는 ‘공황장애’ 일 가능성도 있으니 추후 상급 병원으로 가길 권했습니다. 이후에 다니던 병원에서 위내시경을 진행하게 되었답니다. 비수면 내시경을 진행하면서 조직검사까지 하게 되었지만, 다행히 검사 결과 일부 염증 소견 이외에는 특별히 심각한 문제는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저는 왜 그렇게 열심히 병원을 찾은 걸까요? 물론 아파서 병원에 간 것이지요. 하지만 단순히 신체적 통증을 치료하기 위해서 간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우울할 땐 뇌과학> 책에 걱정과 불안에 대한 내용이 나옵니다. 걱정은 잠재적 문제에 관해 생각하는 것이고 불안은 잠재적 문제를 느끼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 둘은 각각 작용할 수도 있지만, 서로 영향을 미쳐 우울한 감정으로 한없이 빠트릴 수 있다고 하지요. 특히 불안의 시작은 뭔가 잘못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경보’를 울립니다. 그리고 경보에 대한 평가 후 방금 스스로가 보거나 생각한 현상을 실제 있는 것으로 ‘믿어’ 버립니다. 그 후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대처’를 하게 되는 메커니즘으로 불안이 만들어진다고 합니다.



제가 병원에 간 진짜 이유는 바로 이 불안, 그리고 두려움을 해소하기 위함이었습니다. 4주간 약의 효용이 없다 보니 위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점점 불안해지기 시작했던 거예요. ‘병이 있으면 있다’, 혹은 ‘없으면 없다’라는 명확한 진단을 받음으로써 불안을 날려버리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한 달간 낫지 않는 제 몸을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근거들로 정말 괜찮다는 확신을 얻고 싶었던 것입니다. 아무런 근거도 없이 환자 스스로가 괜찮을 거라고 암시를 거는 것과, 전문적인 의학 자격증이 있는 의사가 '괜찮다'라고 말하는 것은 환자의 심리에 미치는 영향이 현격히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시간과 돈이 좀 들더라도, 의사의 ‘괜찮다’는 그 한 마디 말로 편안해질 마음 상태를 간절히 원했던 것입니다.


사실 병원에 가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몇 년 전 부모님이 환갑을 맞이하여 그동안 한 번도 받아보지 않은 건강검진을 받도록 해드렸습니다. 아버지는 과거에 마신 술 때문에 어딘가 큰 병에 걸려 있지 않을까 불안해하셨어요. 하지만 걱정과 달리 검진 결과, 일부 치료 외에는 괜찮은 결과였고, 오히려 어머니의 건강에 좀 더 신경 써야 한다는 결과를 받았습니다. 두 분 모두 병원에 가지 못했던 이유는 바로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감당하지 못할 만큼 큰 문제가 있지 않을까’ 마음속에 늘 자리 잡고 있었던 ‘두려움’ 때문이었습니다.

병원에 일부러 가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예전에 제가 치과 치료를 몇 년 미룬 적이 있었는데, 이미 심각한 상태임을 알지만 그 상황을 직면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사태의 심각성을 알면서도 일부러 회피하고 연기했던 것입니다. 두려웠기 때문이죠.


우리는 당연히 치료받기 위해 병원을 찾습니다. 하지만 어디가 아프든, 눈에 보이는 결과보다는 ‘심리적인 안정’을 찾기 위해서 가는 게 아닐까요? ‘환자분, 괜찮습니다.’ 의사의 그 한마디를 듣기 위해서 말이죠. 몸에 어떤 일이 발생하고 있는지 상상의 나래를 펼치다 불안에 떠는 것보다는 빨리 빠져나와 ‘괜찮다’는 현실을 마주하는 게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설령 좋지 않은 결과를 마주한다 할지라도 말입니다. 그다음 무엇을 해야 할지 알게 되면 두려움은 더 이상 두려움으로 남지 않을 테니까요.




본 글은 지역신문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2020년 9월호에 연재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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