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연재]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2020년 11월호 - 인생단상 #6
"오늘은 뭐하고 놀지?"
여섯 살인 딸아이는 매일 고민합니다. 특히 어린이집을 가지 않는 주말이면, 어떤 장난감을 가지고 놀지, 엄마, 아빠와 어떤 놀이를 같이 할지, 놀이터에 나가서 놀지, 어떤 만화영화를 볼지 고민합니다.
“엄마, 나 오늘 만화 3개 볼 거야.”
아이는 당당하게 말합니다.
“만화 어떤 거 볼 건데?”
TV에서 하는 정규 만화 프로그램을 시청하지 않고, 보통 OTT(Over The Top) Box를 통해 만화를 보여주는 저는, 구체적으로 어떤 만화를 볼지 물어보곤 합니다.
“포켓몬스터, 가제트, 옥토넛”
장르를 불문하고 다양한 만화를 섭렵하는 아이에게 교육적으로 괜찮은지 해가 되는지 알기 위해 함께 만화를 시청할 필요가 있지만, 그것보다 저는 대답을 들을 때마다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이 있습니다.
‘음, 1시간 30분이 걸리겠군.’
바로 시간을 얼마나 확보할 수 있는지를 가늠하는 것입니다. 1시간이 확보되면 무얼 하고, 2시간이 확보되면 무얼 해야겠다는 계획을 세우는 것이지요. 저는 이기적인 엄마입니다. 만화를 함께 시청하며 공감하고 공통된 주제에 대해 논하는 것이 아이 교육에 좋습니다. 하지만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 않고, 대략 10분에서 20분 남짓 함께 봅니다. 나머지 시간에 잠깐이라도 책을 볼지, 명상을 할지, 홈트레이닝을 할지, 핸드폰으로 커뮤니티 사이트에 공유된 정보를 보며 개인 시간을 보낼지 계산하느라 머릿속이 바쁩니다.
"엄마~ 끝났어!"
만화 하나가 끝날 때마다 후다닥 달려가 다음 만화로 변경하여 틀어줘야 하기 때문에, 긴 시간을 온전히 집중하는 것 역시 불가능합니다. 가끔 아이의 아빠가 옆에 있는 경우에는 가능할 때도 있지요.
24시간 온종일 아이와 함께 하는 주말은 시간이 빛의 속도로 날아가는 듯 느껴집니다. 아침 먹고 뭐 하다 보면 점심때가 오고, 점심을 먹고 또 잠시 놀면 금방 저녁 준비를 해야 하고, 저녁 먹으면 또 금세 재워야 하는 시간이 다가옵니다. 누군가가 시곗바늘로 장난치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많습니다.
고된 육아에 지쳐 아이가 밉다거나 나쁜 감정이 드는 것은 아니지만, 점점 혼자만의 시간이 박탈될수록 신경이 예민해지고 가슴이 답답해지고 감정이 우울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랬던 제가 찾은 유일한 탈출구는 바로 아이가 만화 보는 시간이었던 것입니다.
"엄마도 같이 포켓몬스터 보면 좋은데~~"
내 자식이 제일 예뻐서 항상 아이를 보면 눈에서 꿀이 뚝뚝 떨어지지만, 이 황금 같은 시간을 날릴 수 없어 저는 핑계를 댔습니다.
“엄마도 같이 보고 싶은데, 엄마는 책도 봐야 하고, 점심 준비도 해야 하고, 운동도 해야 해서 조금 이따가 같이 보자~”
미안한 감정이 늘 있지만 일단 나부터 살고보자 하는 마음에 끝까지 혼자만의 시간을 조금이라도 사수하려고 노력하는 나쁜 엄마입니다. ‘엄마의 정신과 몸이 건강해야, 아이를 건강하게 키울 수 있다’고 합리화해봅니다.
“맞다! 엄마 나 오늘 그림 그리기 하고 싶었는데 못했어..”
울상을 지으며 아이는 말합니다. 오늘 하려고 했던 놀이를 미처 하지 못해서 슬퍼합니다. 내일 하자고, 아니면 다음 주에 꼭 하자고 달래곤 합니다.
‘맞다. 나 오늘 화장실 청소하려고 했는데, 시간이 부족해서 못했네.’
저도 울상을 지으며 생각합니다. 오늘 하려고 했던 일들 중에 미처 하지 못해 또 미루어져서 서글퍼집니다. 내일 해야지, 혹은 다음 주에는 꼭 해야지 하고 다짐합니다.
그렇게 아이와 저는 온종일 붙어있지만, 우리의 시간은 다르게 흘러갑니다. 어렸을 때는 놀고 또 놀아도 시간이 그렇게 안 갔던 것 같은데, 왜 성인이 된 지금은 시간을 쫓아가기 버거울 정도로 빨리 흘러가 버리는 걸까요? 아이의 시간처럼 살고 싶어 겉으로라도 여유를 찾으려 애써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