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번째 퇴사, 불안함보다는 후련함
어제, 퇴사했다. 이번이 네 번째 퇴사다. 공식적인 조직에 들어갔다 나오길 반복한 게 네 번째라는 뜻.
첫 번째 퇴사는 처음이라 서툴렀고,
두 번째 퇴사는 정리하듯 도망쳤고,
세 번째 퇴사는 야근하면서 희생했고,
이번 네 번째 퇴사는 시원섭섭했지만 담담했다.
어떤 이는 아직 한 번의 퇴사를 경험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또 어떤 이는 나보다 더 많은 퇴사의 경험을 가졌을지도 모른다.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몇 번의 경험이 쌓여도 퇴사는 매번 느낌이 다르다. 특히 이번만큼은 너무 후련하고 가볍고, 뿌듯하고 편안하다. 아주 이상하리만치. 날아갈 듯 기분이 좋다. 그래서 불안하다. 불안할 만큼 기분이 좋다. 이 기분, 이 느낌, 며칠이나 갈지 모르겠다.
큰 조직에서 떠나올 때는 나 한 사람 나가도 티도 안 난다. 바쁜 조직에서 나올 때는 나를 끝까지 써먹기에 나오면 공허하다.
나는 이번에 교육 현장에서 떠나왔다. 그동안의 헤어짐과는 다른 결의 마무리를 해야 했다. 같은 조직에서 일했던 상사, 동료와의 관계, 함께 울고 웃었던 아이들과의 관계, 그리고 아이를 보낼지 말지 결정권을 가진 학부모들과의 관계. 이번에는 단순히 일만 잘 끝내는 것이 아니라 관계를 마무리하는 것이 퇴사의 핵심이었다.
먼저 월수금 반 아이들에게 그저께 마지막 수업을 하며 작별을 고했다. 2~3학년 아이들이다. 이미 하루 전 공지를 전달받아 알고 있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모르고 등원한 아이들도 있었다. 개인적인 일로 오늘이 마지막이고, 그동안 즐거웠다고 인사했다. 개별로 포장한 선물과 편지를 건네며.
“선생님, 그만 말하세요! 슬프잖아요!!!”
“제가 주황색 좋아하는 줄 어떻게 할고 이걸로 주셨어요?”
“진짜요? 이제 못 봐요??”
“선생님 내일까지 나와요?”
아이들의 반응은 다양했다. 선생님 없어도 잘할 수 있겠냐는 질문에 그럴 수 있다는 당찬 대답을 들었고, 마지막 게임을 하고 수업을 끝냈다.
그전에 가르쳤다가 반 스케줄 변경으로 한 달 전 내 손을 떠난 아이들에게도 복도에서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나를 동네 북으로 알며 항상 ‘어글리 티쳐’라고 큰 소리로 인사하던 아이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리고 말을 잇지 못했다. 왜요?라고 묻는 아이도 있었다. 헤어짐에 익숙하지 않은 아이들의 표정이 선명하게 다가왔다. 품에 아이들을 안아줬다. 2학년인 아이들, 이제 이렇게 하나씩 배우겠지.
우리 반 한 아이가 뒤늦게 하원을 해서 문 앞까지 배웅해 줬다. 마지막 작별을 고하며. 문 밖에 그 아이의 어머니가 서 있었다. 눈이 마주쳐 인사를 건네려던 차에, 그 어머니가 먼저 말을 건네왔다. 너무 아쉽다고. 나는 이 아이의 성장한 모습을 마지막까지 전했다. 말하기는 워낙 잘하니 이제 단어만 읽게 되면 쭉쭉 향상될 거라는 나의 이야기가 그 어머니 귀에 들리지 않는 게 느껴졌다. 내 말소리가 따발총처럼 날아가 박힐 거라는 예상과는 다르게 그 어머니의 귀에는 방어막이 있는 듯 다 튕겨져 나오는 게 보였다. 그 어머니는 내 말과 상관없이 계속 말씀하셨다. 이제 선생님 없으면 어떡하냐고 하시며 눈물을 글썽이셨다. 모른 체 했다. 그런데 계속 이야기하다 눈물을 떨구셨다. “주책이네요”라고 하시며 민망해하셨다. 눈물은 전염된다. 나도 눈시울이 붉어지려 하기에 애써 참으며 웃으며 작별을 고했다. 정말 감사하다고 악수를 내가 먼저 청했다. 진심으로 감사했다. 웃으며 헤어지고 싶었다.
어제 화목반 아이들에게 비슷하게 작별을 고했다. 역시 공지를 받고 미리 알고 온 아이들도 있었지만 처음 듣는 아이들도 있었다. 3~4학년 아이들 반은 평소보다 더 열심히 더 큰 소리로 말하며 집중해 주었다. 마지막까지 고마웠다. 이 반 아이들은 내성적인 아이들이 대부분이라 크게 내색하진 않았다. 선물을 받으며 그저 슬프다는 말을 할 뿐.
마지막 반 아이들에게도 똑같이 헤어짐을 전했다. 가장 모범적이었던 아이가 처음 듣고는 매우 놀라서 왜냐고 진짜냐고 재차 물었다. 슬펐지만 티를 낼 순 없었다. 이 반은 정 반대의 태도를 보였다. 마지막이어서 더 떼를 쓰는 아기가 되어 버렸다. 5학년인데!! 평소보다 더 수업하기 힘들었지만 끝까지 마무리했다. 그중 어떤 아이는 직접 뜨개질해서 사탕과 함께 선물이라고 건네주었다.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서 그냥 꽉 안아주었다. 이것밖에 표현할 길이 없네라고 말해주면서. 다른 반과 똑같이 편지와 함께 포장된 개별 선물을 건넸다. 결석한 아이에게도 전해달라고 모범적인 그 아이에게 부탁하며.
어제 수업 도중 잠시 손님이 왔다고 불려 나갔다. 다름 아닌 전날 수업한 아이가 엄마 손 붙잡고 마지막 인사를 하러 온 것이다. 손에 선물을 가득 들고서. 어머니도 감사했다고 아쉽다고 인사를 하셨다. 수업하다 말고 나왔는데 순간 너무 감동을 받아 눈물이 핑 돌았다. 그 아이는 어제 집에서 울었다고 하셨다. 이럴 수가! 항상 밝게 웃기만 하던 이 아이가 헤어짐을 배우는 과정이구나 싶었다.
마지막 퇴근 후 집에 와서 선물을 풀러 보았다. 편지가 너무 감동적이고 귀여웠다. 자기가 보고 싶으면 연락하라는 말과 함께 엄마의 번호를 적어주다니! 이 아이는 내 아이처럼 아직 핸드폰이 없다. 그래서 엄마의 번호를 준 것이다. 웃음이 절로 났다. 미소가 지어졌다.
나는 과분한 선물과 분에 넘치는 작별 인사를 받았다.
오늘은 퇴사 직후의 첫날이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쉬었다. 그간 고생한 나에게 하루쯤 쉬는 것으로 보상해도 되지 않나. 생각을 기록하기도 했다. 오늘의 이 기분, 편안함, 그래서 오는 불안감인지 어색함인지, 아마 언제 다시 느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어제 퇴사해서 평소와 다르게 시작한 오늘, 이렇게 끄적이며 하루를 붙잡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