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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fe Designeer Dec 03. 2019

인생을 두 번째로 살고 있는 것처럼 살아라.

독서노트 #13 <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

"인생을 두 번째로 살고 있는 것처럼 살아라.
그리고 지금 당신이 막 하려고 하는 행동이
첫 번째 인생에서 이미 그릇되게 했던
바로 그 행동이라고 생각하라."


<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 이 책을 처음 추천받았던 시기는 지금으로부터 4년 전쯤이다. 하지만 난 4년이 흐른 지금에서야 책장에 꽂혀있던 이 책을 집어 들었다. 다 읽고서는 이 책을 왜 이제서야 읽었을까 한탄했다. 항상 좋은 책은 더 빨리 읽었어야 하는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 것 같다.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부터, 가장 궁금했던 은 바로 '저자는 도대체 어떻게 살아남은 것인가'에 대한 부분이었다.



  수용소에 있는 사람들은 어떤 결정을 내리는 일과, 어떤 일이든지 앞장서서 하는 것을 두려워했다. 이것은 운명이 자기를 지배한다는 생각을 강하게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운명에 영향을 주는 일을 피했고, 대신 운명이 자기에게 정해진 길을 가도록 했다. ...
  때로는 확실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도 있었다. 그것은 생과 사를 가르는 결정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때도 운명이 자기 대신 결정을 내려 주기를 원했다. 이렇게 어떤 일의 실행을 회피하는 태도는 수감자가 수용소에서 탈출할 것인가 아니면 말 것인가를 결정해야 한느 순간에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다.
- p107

  강제수용소라고 하는 굉장히 제한적이고 특수한 상황이라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자신들의 '목숨'이 걸려 있음에도 타인에게 자신의 운명을 내어주는 사람들을 보고 약간 놀랐다. 한편으로는 그럴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수용소라고 하는 공간은 결국 사람들이 살아가는 우리 현실의 축소판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자신이 스스로 선택하는 길을 가는 것을 선호하는 사람도 있고, 운명의 길이 나를 찾아와 인도해주기를 바라는 사람도 있는 것. 우리의 삶과 다르지 않았다. 우리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는 명목 하에 결과를 내맡기고 기다리거나 순전히 받아들여야만 하는 수많은 상황들을 겪으며 살아간다. 그 '결과'를 바꿀 수는 없어도, 그 결과가 나오기 '전'의 내 태도와 결과가 나온 '후'의 태도를 결정짓는 것은 온전한 나의 '자유'라는 것을 쉽게 잊으며 살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인간에게 모든 것을 빼앗아갈 수 있어도 단 한 가지, 마지막 남은 인간의 자유, 주어진 환경에서 자신의 태도를 결정하고, 자기 자신의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만은 빼앗아갈 수 없다는 것은 진리이다.

  수용소에서는 항상 선택을 해야 했다. 매일같이, 매시간마다 결정을 내려야 할 순간이 찾아왔다. 그 결정이란 당신으로부터 당신의 자아와 내적인 자유를 빼앗아가겠다고 위협하는 저 부당한 권력에 복종할 것인가 아니면 말 것인가를 판가름하는 것이었다.

- p120

인생은 선택의 연속인데, 때로는 선택하지 않을 권리를 주장하고 싶을 때도 많은 것이 우리의 삶인 듯하다. 하지만 어떠한 결정도 스스로 정한 선택이라는 것은 변하지 않겠지.


"내가 세상에서 한 가지 두려워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내 고통이 가치 없는 것이 되는 것이다."
 - 도스토예프스키


  삶을 의미 있고 목적 있는 것으로 만드는 것. 이것이 바로 빼앗기지 않는 영혼의 자유이다.

  적극적인 삶은 인간에게 창조적인 일을 통해 가치를 실현할 기회를 주는 데에 그 목적이 있다. 반면에 즐거움을 추구하는 소극적인 삶은 인간에게 아름다움과 예술, 혹은 자연을 체험함으로써 충족감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준다. 그러나 창조와 즐거움 두 가지가 거의 메말라 있는 삶에도, 외부적인 힘에 의해 오로지 존재에 대한 자신의 태도를 선택할 수 있는 지고의 도덕성을 요구하는 삶에도 목적은 있다. 물론 그에게는 창조적인 삶과 향락적인 삶도 모두 금지되어 있다. 그러나 창조와 즐거움만이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다. 만약 그곳에 삶의 의미가 있다면, 그것은 시련이 주는 의미일 것이다. 시련은 운명과 죽음처럼 우리 삶의 빼놓을 수 없는 한 부분이다. 시련과 죽음 없이 인간의 삶은 완성될 수 없다.

  사람이 자기 운명과 그에 따르는 시련을 받아들이는 과정은 그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 삶에 보다 깊은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폭넓은 기회를 제공한다. ... 여기에 힘든 상황이 선물로 주는 도덕적 가치를 획득할 기회를 잡을 것인가 아니면 말 것인가를 결정하는 선택권이 인간에게 주어져 있다. 그리고 이 결정은 그가 자신의 시련을 가치 있는 것으로 만드느냐 아니냐를 판가름하는 결정이기도 하다.

- p122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삶의 의미와 시련의 의미에 대해 이야기한다. 강제수용소라는 불합리하고 말도 안 되는 상황의 시련 속에서 그 순간을 가치 있게 만들고자 노력했다. 다른 수감자들처럼 살아남을 수 있을지에만 관심을 갖게 되면, 결국 살아남아야만 이 모든 시련이 의미 있는 것이 되어버린다고 여겼다. 반대로 저자는 이 모든 시련이 의미 있는지에 대해 생각했다. 만약 이 같은 시련이 의미가 없다면 살아남아야 할 의미가 없기 때문에. 우연한 결과에 의해 모든 의미가 좌우되는 삶이라면, 전혀 살아갈 가치가 없는 삶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우리의 현실은 분명 강제수용소보다는 훨씬 나은 상황일 것이다. 최소한 매일매일 언제 죽임을 당할지 그 우연한 결과가 내 목을 언제 조여올지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삶이니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항상 현재 자신이 맞닥뜨린 시련에 많은 걱정을 않고, 고통을 호소하며,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고군분투한다. 내가 처한 이 시련을 좀 더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이, 삶에 보다 깊은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원하는 결과가 나올지 그렇지 않을지에 대한 부분은 차치하고서 말이다.



  삶의 의미는 사람에 따라, 시기에 따라, 시간에 따라 다르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포괄적인 삶의 의미가 아니라 어떤 주어진 상황 속에서 한 개인의 삶이 갖고 있는 고유한 의미라고 할 수 있다.
- p180  

  궁극적으로 인간은 자기 삶의 의미가 무엇이냐를 물어서는 안 된다. 그보다는 이런 질문을 던지고 있는 사람이 바로 '자기'라는 것을 인식해야만 한다. 다시 말해 인간은 삶으로부터 질문을 받고 있으며, 그 자신의 삶에 대해 '책임을 짊으로써'만 삶의 질문에 대답할 수 있다는 말이다. 오로지 책임감을 갖는 것을 통해서만 삶에 응답할 수 있다. 따라서 로고테라피에서는 책임감을 인간 존재의 본질로 보고 있다.
- p181

  이 부분은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우리의 삶 자체는 단순히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찾기 위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개인이 처한 상황은 각기 다르다. 저자의 말대로라면, 개개인에게 주어진 고유한 삶의 질문에 우리 스스로가 얼마나 '책임감' 있는 태도로 살아가느냐에 따라, 각기 다른 응답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 '왜' 살아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견뎌낼 수 있다. "
- 니체


책을 덮으면서 처음 궁금했던 부분인, 저자가 어떻게 살아남았는지에 대한 명쾌한 결론(상황적, 정치적, 물리적으로 살아남은 계기와 방법)은 끝내 알 수는 없었다. 정신과 의사였기 때문에 알게 모르게 받았던 혜택 아닌 혜택(?)과 기회 아닌 기회들이 찾아왔던 부분도 분명 있다. 하지만 내가 기억에 남는 부분은 가장 처음 수용소로 끌려가는 부분이었다. 유일한 식량인 빵 하나를 가슴 안주머니에 숨기고 검사대를 통과하는 그 순간, 빅터 프랭클은 오른쪽으로 가게 될지, 왼쪽으로 가게 될지 알 수 없었다. 빵을 숨기다 비뚤어진 어깨라인과 그것을 들키지 않으려는 그 눈빛 하나가 상대의 눈에는 '일단 살려둘 만한 가치는 있는 사람'으로 보이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단순 우연일지라도, 결국 할 수 있는 나름의 최선으로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잃지 않은 그 순간부터 '살아남을 수 있는 기회'까지 연결이 된 것은 기적과도 같은 일이다.




  책에는 보석과 같은 내용이 정말 많다. 모든 내용을 이 짧은 글에 다 담아낼 수가 없었다. 나만의 언어로 요약을 해보면 이렇다.

  창조와 즐거움이 없는 힘든 삶에도 의미는 있다. 그 의미는 시련의 의미가 될 것이다. 내가 조종할 수 없는 결과 자체가 목표가 되어 버리면, 원하지 않는 결과가 나왔을 때 모든 시련과 과정은 무의미한 것이 되어버린다. 우연으로 얻어진 결과에 그 모든 시련의 의미가 좌우되는 삶은 살아갈 가치가 없다. 따라서 현재의 시련을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선택권은 인간에게 있고, 자신의 태도를 결정하고 자신의 길을 선택하는 자유는 어느 누구도 빼앗아갈 수 없다. 책임감을 갖고 살아가는 것으로써 개인의 고유한 삶에 의미를 더할 수 있다.



"성공을 목표로 삼지 말라. 성공을 목표로 삼고, 그것을 표적으로 하면 할수록 그것으로부터 더욱더 멀어질 뿐이다. 성공은 행복과 마찬가지로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찾아오는 것이다. 행복은 반드시 찾아오게 되어 있으며, 성공도 마찬가지이다. 그것에 무관심함으로써 저절로 찾아오도록 해야 한다. 나는 여러분이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것이 원하는 대로 확실하게 행동할 것을 권한다. 그러면 언젠가는 정말로 성공이 찾아온 것을 보게 될 날이 올 것이다. 왜냐하면 여러분이 성공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잊어버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 p10


  저자는 분명 살아남고 싶었을 것이다. 죽음의 그림자가 항상 따라다니는 수용소에서. 하지만 '살아남는 것' 자체를 목표로 한 행동이 아닌, 그 안에서 자신의 원하는 신념대로 행동했기 때문에, 그에 따른 결과로 '살아남을 수' 있는 결과가 찾아온 것일지 모른다. 이 책은 누구에게나 강력히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이 책을 읽으면 분명, 자신이 살아가는 '삶'에 대한 자신의 '태도'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내가 그러했듯이.






* 책 제목 :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 저자 : 빅터 프랭클

* 출판사 : 청아출판사

* 출판 연도 : 2005년 8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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