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노트 #14 < 담백하게 산다는 것 >
담백함은 '지나친 기대치를 내려놓을 때 느끼는 기분'이다.
프랑스의 시인 아르튀르 랭보가 선언했듯이, 상처 없는 인생이 어디 있으랴. 그로 인한 흉터와 얼룩이 없는 인생도 없다. 그러므로 또 다른 최선은 인생 자체에 얼룩이 질 수밖에 없음을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앞에서 조금이라도 의연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 p12
불행하게도 인간의 삶은 이진법이 아니다. 십진법, 아니 수백 진법이 되기도 한다. 햄릿의 유명한 독백 '죽느냐 사느냐' 사이에 너무나도 많은 갈등이 존재하는 것이다. 죽기에는 삶에 대한 미련이 너무 크고, 살기에는 힘든 일이 너무 많다. 내가 죽고 싶은 것이 정말로 죽고 싶은 것인지도 잘 모른다. 그러기에 '내 안에 내가 너무 많은 것'이다. 그러한 복잡한 마음속 계산에서 단순한 이진법으로 전환하는 것이 바로 '담백함'이다.
- p13
"누구에게도 오해받지 않도록 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늘 기억하라.
어떤 경우에나 당신을 오해하고 잘못 이해하는 사람이 한둘은 있기 마련이다."
- 영국의 철학자 칼 포퍼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하고 자책하는 이유도 자신에 대한 기대치 때문이다. 어떤 경우에도 실수해서는 안 된다는 지나친 기대치에 사로잡혀 있는 한, 우리는 그 덫에서 쉽게 빠져나올 수 없다. 그것이 끊임없는 자기 비하와 원망으로 이어지면, 결국 인생 자체가 불행해진다.
- p80
과거에 대한 후회와 죄책감, 미래에 대한 걱정 모두 '현실이라는 시간'을 갉아먹는 감정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불안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적극적으로 그에 필요한 일련의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된다. 신체적 건강을 얻기 위해 운동이라는 노력을 하는 것처럼, 마음의 부정적 정서를 덜어내는 데에도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마음은 노력 없이 저절로 치유되리라는 믿음은 틀렸다. 그런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다. 내 마음을 위한 노력들이 모여 삶이 가벼워질 때, 우리는 비로소 불안과 애매모호함을 견디는 힘을 조금이나마 얻을 수 있다.
- p88
내 생각이지만, 계절 중에서는 겨울이 가장 담백함에 가깝지 않을까 한다.
한 해를 돌아보고 다음 해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마주하는 약간의 가라앉음과 통찰력, 약간의 후회와 설렘, 약간의 담백한 기대와 희망을 느낄 수 있는 계절은 겨울뿐이다. 그리고 그러한 시간들이 있기에 우리는 약간의 성숙이라도 이루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 p30
내가 담백한 삶을 바라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살아오면서 온갖 실수와 허물에 대해 담담히 웃을 수 있는 용기를 갖기 위해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