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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fe Designeer Nov 15. 2019

5세 아이, 한글을 언제 가르쳐야 할까?

한국에서 핀란드 엄마 되기

엊그제 태어난 것 같았던 우리 아이가 벌써 다섯 살, 내년에는 여섯 살이 된다. 올해 초 5세가 막 되었을 무렵부터, 주변 사람들로부터 이제 한글을 배울 때가 되었다는 말을 듣기 시작했다. 하지만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왜냐하면 나는 처음부터 한글을 일찍 가르칠 생각이 전혀 없었으니까.


  임신했을 무렵에 책을 한 권 접했다. <뇌가 좋은 아이>라는 책인데, KBS 특집 다큐멘터리 - 읽기 혁명이라는 주제로 KBS에서 많은 공을 들여 취재하여 방송으로 먼저 알려지고, 이후에 책이 나온 것으로 알고 있다. 나는 방송을 보지는 못했고, 출산 후에 이 책을 정독했다. 당시에 철없고 무지했던 나는 아무 생각 없이 TV를 튼 채, 아이와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뒤통수를 한 대 제대로 얻어맞았다. 당장 TV를 껐고, 아이가 만 3세가 되기 전까지는 절대로 TV를 보여주지 않기로 결심했다.


  대신 이 책에서 언급된 핀란드의 교육 방식처럼 많이 읽어주고, 목소리를 들려주고, 밖에서 마음껏 놀 수 있게 하기로 마음먹었다. 무엇보다도 가장 충격적으로 다가왔던 부분은, 바로 이 내용이었다.


"핀란드에서 본격적으로 문자 교육을 시키는 나이는 만 6세 이후다."



  우리나라에서는 한글을 빨리 깨치면 영재라는 소리를 듣는다. 아마 주변 아시아 국가에서는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어른이 보기에 아이가 어른만큼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것으로 보이면 특별하고 대단한 것으로 여기기 쉽다. 하지만 그동안 우리는 표면적인 결과와 우리가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습성으로 그 이면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는 깨닫지 못한다. 글을 일찍 깨우쳐서 읽고 쓰는 것이 가능한 것이 대단한 능력 같아 보이지만, 그 시간에 더 많은 자극을 받지 못해 우리 뇌에서 더 넓게 확장되어야 하는 뉴런은 모두 퇴화되고 만다는 것을 누가 가르쳐주지 않으면 우리는 알지 못한다. 아이가 글자를 빨리 깨우치면 보고 읽을 수 있지만, 말 그대로 '하얀 것은 바탕이요 검은 것은 글자이니라'는 느낌으로 읽는다는 것을 어른들은 알지 못한다. 그것은 아이 본인도 모르거니와 표현할 수도 없으니 어른도 알 도리가 없다.


  지나고 보니 나 또한 그랬다. 나도 다섯 살에 글자를 읽고 쓸 줄 알았다. 글자를 더 잘 읽고 쓸수록 더 많은 칭찬을 들었고, 나는 것이 내 특별한 능력으로 승화될 줄 알았다. 하지만 결과는 수능을 봐야 하는 고3 때, 언어영역이 가장 발목을 잡았다. 나는 글자를 배운 뒤 20여 년이 훨씬 지나고 나서야 내게 난독증과 같은 증상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글자를 단순히 읽고 쓰는 것과 그 내용을 이해하고 활용하는 것은 별개의 능력이다. 그리고 글자를 늦게 배울수록 그동안 말의 뜻을 이해하고 창의적인 사고력을 키울 수 있다는 것을 지금에서야 알았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부모님을 원망하지는 않는다. 그 시대에는 부모님 입장에서 최선이라 생각하는 방식으로 교육을 하셨고, 아무도 어떤 것이 더 옳은 방향인지 알려줄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충분히 이해한다. 그래서 우리 아이만큼은 나와 같은 수고로움을 물려주고 싶지 않다. 나보다 더 창의적인 사고를 할 수 있도록 가능성을 더 열어두고 싶었다. 나보다 더 적은 노력으로도 자연스럽게 말이나 글의 의미를 풍부하게 공감하고 이해하기를 바랐다.


  <뇌가 좋은 아이> 책 내용에 따르면, 세계 최고 수준의 교육 경쟁력을 갖춘 핀란드에 관해 잘 알려지지 않은 통계가 있다고 한다. 그것은 바로 핀란드가 세계 1위의 독해력 국가라는 사실이다. 책을 많이 읽을 뿐 아니라 이를 이해하는 능력이 세계 최고라는 것이다. 만 6세 이후에 글을 가르쳐도 세상을 살아가는데 문제가 전혀 없으며, 심지어 더 뛰어난 독해력을 가질 수 있다는 반증이지 않을까.


  그래서 나는 핀란드의 교육방식처럼 만 6세 이전까지는 최대한 문자 교육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러기 위해 주변의 참견 속에서 나만의 교육 철학을 뚝심 있게 버텨야만 한다. '어디가 좋다더라, 이렇게 하면 안 된다더라, 저건 꼭 해야 한다더라' 하는 식의 단순 경험을 바탕으로 하는 이야기에 팔랑귀가 되지 않도록 늘 중심을 잡으려 애쓰고 있다. 물론, 이런 방식이 매우 실험적일 수도 있고, 한국 교육 방식에 있어서 혼자 독특하다는 소리를 견뎌야 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 아이에게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알 수 없는 미지수라는 것이 가장 걱정스러운 부분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소신껏 길러오다 보니 오히려 느리더라도 아이가 할 수 있는 역량만큼 응원해주고 격려해주는 것이 빨리 무엇을 할 수 있도록 가르치는 것보다 더 효과적이었다는 것을 나는 이미 알고 있다. 그래서 더 자신 있다. 남과 다른 것은 결코 틀린 것이 아니다. 많은 엄마들이 각자 자신만의 교육 철학을 가지고 각자 최적의 양육방식으로 길러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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