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은 외국어를 배울 때, 모국어를 통해 번역하는 과정을 거친다. 아이가 영어나 중국어를 습득하는 과정을 옆에서 살펴보면 모국어의 힘을 빌리긴 하지만, 번역이 아닌 치환되는 과정이 보인다. 완전 모국어처럼 익히진 못해도, 모국어를 빌어 성인보다 쉽게 외국어를 받아들이는 것이 이러한 과정인 것 같다.
올해 아이가 만 네 돌이 지나고, 다섯 살이 되어 3월에 처음으로 어린이집을 보냈다. 300명 가까이 수용하는 이 지역에서 꽤 큰 규모의 어린이집이다. 워킹맘으로서 어린이집을 구체적으로 알아보거나 미리 상담하지는 못하고, 주변 다른 엄마들의 의견과 외부 기본적인 검증기관을 통해 어느 정도 신뢰가 가는 곳을 찾아 보내게 되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개별 상담을 거부하는 곳이었다.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에서는 영어와 중국어를 가르친다. 물론, 5세 반 아이들에게 외국어를 가르치는 것보다는 외국어에 친숙하도록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에 더 가깝다. 어린이집에서도 본인들은 아이들에게 학습을 시키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노출을 시키기 위함이라고 말한다. 공감한다. 매우 좋은 취지이다.
연 초 입소 설명회 때, 영어와 중국어까지 배우는 시간이 있다고 했는데, 중국어라니?! 반신반의했었다. 그리고 한두 달 후, 어린이집에서 공부한다는 영어책과 중국어 책 그리고 함께 두 개의 CD가 집으로 왔다. 도대체 어떤 내용을 배우나 책과 CD 내용을 살펴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책에는 ABC 알파벳부터 시작하여 단어 공부하는 것부터 시작되었다. 중국어도 비슷해 보였지만, 중국어는 단어보다는 상황에 맞는 가벼운 문장부터 익히게 되어 있었다. 중국어 CD를 틀어보니 중국어 한자와 발음이 자막으로 표기되며 노래 또는 가벼운 리듬 속에서 대화체를 배울 수 있는 구조였다. 보자마자 처음 드는 생각은, "이렇게 어려운 걸 5세 아이들이 배운다고? 글자도 모르는 아이들한테 이렇게 글자가 많은 걸?' 그리고 바로 영어 CD를 틀어보았다. 중국어보다 더 어려웠다. 이미 알파벳을 깨우칠 줄 아는 아이가 풀 수 있는 퀴즈로 구성되었다. 노래나 단어 모두 중국어보다 한 층 더 어려웠다. 그래서 CD를 바로 꺼버렸다.
처음 CD를 틀었을 때, 우리 아이는 중국어 노래도 나오고 영어 노래도 나오니 관심을 많이 보였다. 맞춰보려는 의지도 보였다. 하지만 이렇게 어려운 중국어를 따라 부르기도, 이렇게 어려운 영어 퀴즈를 맞추는 건 불가능했다. 퀴즈를 풀다가 계속 틀리는 과정에서 좌절해서 영어를 싫어하게 될까 두려웠다. 퀴즈 자체도 이해를 못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방식의 학습 과정은 이 나이에 맞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이집에서는 이 CD를 각 가정에서 자주 들려주도록 권장하고 있었다. 나는 공감할 수 없었고, 동의할 수도 없었다.
외국어에 잦은 노출 그리고 친근한 접근으로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도록 하려는 목적은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방법에서만큼은 잘 모르겠다. 모국어든 외국어든 우리는 아는 만큼 들린다. 최초 단어에 대한 형태, 뜻, 소리가 함께 인식되지 않은 상태에서 무작정 듣기만 하는 것은 효과가 없다. 내가 고전문학을 공부할 때도 그랬고, 영어 듣기를 할 때도 그랬다. 아이가 최초에 엄마라는 단어의 의미를 모르고 엄마라는 단어를 익혔을까, 과연? 아빠를 엄마라는 말로 지칭하여 들었다면, 아이는 아빠라는 존재를 엄마라고 부르게 되었을 것이다.
아이는 성인이 외국어를 배우는 방식과는 다르게 모국어 습득 방식과 최대한 유사하게 외국어를 받아들일 수 있다. 그렇게 기회가 많고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아이들에게 성인과 같은 학습법을 강요하게 되면, 외국어를 배우지 못하게 좌절감을 미리 안겨주는 결과를 낳지 않을까?
얼마 전 부모 참여학습이라는 명목으로 아이들이 어떻게 생활하는지 부모가 참관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다. 중국어 선생님은 우스갯소리로 가정에서 아이들에게 중국어 CD를 잘 안 들려줘서 못 따라 한다는 식으로 이야기했다. 쓴웃음이 나왔다. 과연 CD를 많이 틀어준 집의 아이는 그 중국어를 잘 따라 할까? 결국은 그 CD도 주입식 가르침이다. 아이는 흥미가 있고 게임처럼 느껴야 파고드는데, 시종일관 일방향 가르침을 5세 아이에게 한글도 아닌 중국어부터 요구하는 이 방식이 정말 효과가 있을까? 나는 CD를 안 틀어줬다. 찔렸다. 하지만 그것이 왜 은근한 비난을 받고 부모의 탓으로 돌려져야 하는지 안타까웠다. 보자마자 '아 CD는 무조건 들려줘야 해'라고 할 만큼 좋은 컨텐츠였다면 어땠을까?
사람마다 교육방식이 다를 수는 있다. 하지만 최소한, 이전의 외국어 학습 방식이 그다지 효과가 없다는 것에 대해 나는 내 몸으로 처절한 실패를 맛봤다. 여덟 살 때부터 시작한 영어교육, 결코 시작이 늦진 않았지만 일방적인 가르침 방식에 흥미를 쉽게 잃었던 나는 20여 년을 공부했지만 아직도 그렇게 유창하지 않다. 내 아이에겐 나 같은 고충을 물려주지 않기 위해, 오늘도 고심한다. 애니메이션을 통해 자연스럽게 영어, 중국어를 습득했다는 어떤 아이의 경우를 생각하며, 아이에게 꾸준히 실험 중에 있다. 아이가 외국어에 대한 흥미를 유지할 수 있게 돕는 것만으로도 방향은 틀리지 않았으리라.
그래도 중국어라는 존재를 알려주고 최초의 흥미를 유발해준 어린이집에 감사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