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하기 어렵다고 다들 손사래를 치는 90년대생이 사회로 나와 회사로 몰려들고, 기업들은 속수무책이라고들 한다. 그래서 요 몇 년 새 <90년생이 온다>라는 책이 많은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모양이다.
작가로도 활동 중인 문유석 부장판사는 '변한 것은 세대가 아니라 시대'라는 말을 통해 인간은 누구나 주어진 여건하에서 행복을 추구하는 존재이며, 요즘의 젊은이들 또한 저성장 시대에 맞는 생존 전략, 행복 전략을 본능적으로 찾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구 상의 모든 생명체와 같이 인간 또한 생존을 위해 노력한다. 변해버린 시대에 적응하려는 선택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다.
- p40
젊은 세대는 젊은이들만의 생존 방식대로, 또 기성세대들은 기존 해왔던 방식대로 사고하고 생활하다 보니 요즘 도통 서로 이해가 안 간다는 원성이 자자하다.
하지만 문유석 부장판사의 말대로 정말 변한 것은 세대가 아니라 시대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현재를 살아가는 이 시대를 알고, 이 시대 속에서 어떻게 커왔고, 그래서 왜 다른지 90년대생을 이해하고 싶은 어른들의 욕망에 다들 이 책을 읽는지도 모르겠다.
"요즘 젊은 놈들은 버릇이 없다"라는 말은
아마도 인류가 멸망할 때까지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한국의 경우, 20세기 들어 근대로 진입하고 나라의 주권을 상실하는 과정에서 청년은 '미래에 대한 낙관과 희망의 상징'으로 정착해갔다. ... 그러나 1930년 이후부터 청년은 우려의 대상이 되었다. 특히 1930년대 중반에는 "청년이란 자신의 문화와 가치를 실현하기보다는 기존의 가치관, 특히 국가권력이 제시하는 가치관에 매몰되는 존재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런 양가적인 평가는 우리가 논하는 90년대생에게도 해당된다. 하나의 시각은 '무엇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하는 아이들'이라는 부정적인 시각이다. ... 또 다른 하나는 '기성세대가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영역을 개척하는 세대'라는 긍정적인 시각이다.
문제는 이러한 두 가지 시각 모두 기성세대들이 새로운 세대를 '이해'하기보다는 '방관'하는 자세에서 비롯됐다는 데 있다.
...
젊은 세대는 그 특성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간에 기성세대와의 조화로운 관계 속에서 자라나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새로운 세대를 제대로 알기 위한 기성세대의 노력이 절실하다. 세대 간의 갈등이라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존재해왔다.
- p65
어렸을 때, 어른들이 하시는 말씀 '요즘 젊은것들은 버릇이 없다'라는 말을 종종 들었다. 하지만, 내가 점점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나도 그게 무슨 말인지 이해하고, 점점 그 말을 사용하게 되는 것 같다. 이런 세대 간의 생각 차이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계속 존재해왔다는 것을 아는 순간 어느 세대나 겪는 통과의례와 같이 느껴져 오히려 안도감이 들었다.
90년대생의 특징
간단하거나, 재미있거나, 정직하거나
책에서 큰 파트로 다뤄지는 90년대생의 특징들이다. 간단하거나, 재미있거나, 정직하거나.
나는 늦깎이 대학원생으로 공부하며 20대 중후반의 90년대생들을 옆에서 보았다. 수업시간에 질문하는 말투의 당돌함에서 흠칫 놀랄 때가 많았다. 이것이 사람들이 말하는 90년대생의 특징인가 싶었다. 그런데 한 편으론, 내가 20대 초반 대학생일 때를 돌이켜보면, 나 역시 당돌했다. 모든 수업에서 당돌한 것은 아니었는데, 특정 수업을 듣다가 수업 내용이 잘못 흘러가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 없었고 너무 답답해서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당돌하게 주장했다. (실제로도 논리적으로 맞았다. 공대 수업이란 논리가 뒷받침되면 반박하기 어렵다. 하지만 표현 방식에서 더 신중했어야 했는데, 그러기에 나는 너무 어렸다.)
간단하거나 정직한 것은 잘 모르겠다. 분명한 점은 이들은 정말 재미를 추구한다는 것이다. 재미만 있어도 그것을 취한다. 구매를 하든, 이용을 하든, 직접 가든 몸으로 움직인다. 물론 다 그런 건 아니지만.
회사에서의 참여는 90년대생들에게 성장이나 성취만큼이나 중요하다. 참여는 그들이 가장 바라는 것이자 가장 얻기 힘든 것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그들에게 줘야 할 것은 권력이 아니라 표현할 수 있는 일종의 권리다. 그들이 목소리를 내고, 주목을 받고, 성과를 내게 해주는 것이다. 참여도가 높을수록 90년대생 직원들은 더 빨리 기업에 적응하며, 그들의 의견이 더 많은 주목을 받을수록 그들의 책임감도 더욱 커진다. 그에 따른 성과를 끊임없이 눈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그들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동기부여 방안이다.
- p214
저자는 구직자가 면접관을 평가하는 시대라고도 표현했다. 공감했다. 나는 2010년도, 2013년도, 2019년도에 면접을 보았다. 시대가 변하기도 했지만, 나 역시 변했다. 모두가 나처럼 변하는 것은 아닐 테지만, 나는 2015년을 경계로 조금 많이 변했다. 2013년도까지만 해도 나는 구직활동을 할 때 면접자는 면접관으로부터 평가받는 존재라고만 생각했다. 갑과 을의 관계. 을이 더 잘 보여야 하는 관계. 하지만 2019년 나는 상대를 평가했다. 물론 스타트업 면접만 보러 다니긴 했다. 면접관들의 태도를 통해, 그 회사가 보였다. 면접을 망쳤다는 생각보다, 처음으로 '여긴 돼도 안 가고 싶다'라는 매우 불쾌한 감정까지 든 적도 있었다. 스타트업은 규모가 작은 만큼 인재 한 명 한 명이 매우 소중하다. 그런데 대표 혹은 임원급 및 관리자급이라고 하는 사람 역시 인재인지 아닌지 면접관으로서의 역할에서 온전히 드러난다. 그래서 구직자가 면접관을 평가하는 시대라는 말이 정확히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갔다.
스타트업에 들어가서 많은 90년대생들과 함께 일하게 되었다. 이들에게 '참여'는 정말 중요하다. 참여를 해야 '성장'과 '성취'를 얻을 수 있기에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이들은 생각보다 자신의 의견을 내는 것에 거리낌이 없다. 기계처럼 시키는 일만 하는 것에는 본인이 어느 정도 좋아서 버틸 수는 있지만 역시 한계가 있다. 한편으로는 체계적으로 배우기 어려운 환경인 스타트업에서 일을 하면서 저절로 '당돌해지는' 것 같기도 하다. 대기업 관료주의 문화에서 당돌하게 행동했다가는 사수한테 온갖 욕을 얻어먹고 업무 가중 처벌을 받을지도 모르고 인간관계에서 은따를 경험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니까.
이제는 90년대생뿐 아니라 2000년대 출생자들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시점이기도 하다. 중국에서는 링링허우, 미국에서는 Z세대, I세대, 홈랜드 세대 등으로 불리는 세대 말이다. 처음 90년대생을 마주했을 때처럼 이들을 마주하면 혼란에 빠질 것이다. ...
"우리가 받은 사회의 혜택과 따스한 호의는 반드시 사회를 향해, 모두를 향해 돌려주고 나누기 위해서 우리는 오늘의 아픔을 내일의 땀과 꿈으로 넘어선다."
내가 가는 길에 확신이 들지 않을 때마다 되뇌던 문장이다. 우리의 삶은 같은 길을 돌고 도는 원형과 같이 보이지만, 실상은 조금씩 위로 올라가는 나선형의 모양을 취하고 있다고 믿는다. 기성세대가 되면서 느끼는 진리는 이 세상 속에서 나의 힘 하나로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나는 기존 세대의 호의와 사회적 혜택을 통해 지금까지 자라왔다고 생각하고, 다음 세대가 더 나은 세상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믿는다. 그들에게도 그런 믿음을 주고 싶다.
- p330
지금의 젊은 세대 역시 시간이 흐르면 기성세대가 될 것이고, 새로운 다음 세대는 계속 등장할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이러한 세대 간 조화를 이루는 것이 하나의 숙제일지도 모른다. 가정에서, 사회에서 모두 함께 살아가야 하니까. 90년대생이 혹은 밀레니얼 세대가 기존 세대와 많이 다르다고 편 가르기 하기 전에 서로를 관찰하고, 한 번이라도 더 대화하고, 무언가를 함께 하며 의견을 나누는 사회가 되길 바래본다.
이 책으로 예전에 독서모임을 했었다. 나만 빼고 모두 90년대생이었다. 그런데 독서모임을 하면서 나는 충격에 빠졌다. 이들의 의견은 이렇다. 이 책의 내용은 그냥 아는 소리를 써놨다는 것이다! 사실 충격을 받았다. 공감이 아니라 당연한 소리라니! 아.... 그렇구나.
어쩌면 90년대생들은 이 책이 자신들을 지칭하고 하나의 분류로 통합하면서 불쾌감을 느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각기 다른 개성을 누구보다 뽐내는 세대인데 이렇게 다른 세대가 분류해버리면 하나의 개성없는 한 부류가 된다는 느낌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또한 앞으로의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너무 일찍 프레임에 가둬버려 불쾌했을지도 모른다. <82년생 김지영>책을 읽은 사람들 중 누군가는 불쾌한 감정을 느낀 것과 비슷할 것이다. 나같이 비슷한 경험을 했던 사람들은 김지영의 입장을 절절히 공감했겠지만 반대로 누군가에겐 한 시대의 가해자 또는 잠재적 가해자처럼 분류되는 부분이 불쾌했을 수 있으니까.
사실 세대를 구분하는 것은 마케팅이나 경영에서 주로 필요로 한다. 시장을 파악하고 세그멘테이션부터 타겟팅, 포지셔닝을 하려면 특정 나이대의 특징을 파악해야 하기 때문에 주로 기획, 마케팅, 영업, 디자인 등 소비자를 직접 만나는 분야에서 중요하게 생각한다.
내가 종종 참여했던 성장 플랫폼 커뮤니티에는 20~30대의 밀레니얼들이(90년대생 포함) 많이 참여했는데, 그들과는 90년대생의 독특한 특성에 대해 자연스럽게 다름의 문화를 토론할 수 있었다. 그 커뮤니티에는 디자인, 전략기획, 마케팅, 영업, 브랜딩 등 경영 및 마케팅과 관련된 업무를 사람들이 많았다.
우리 독서모임에 참여하는 멤버들은 모두 공대 출신이다. 현재는 반도체, 화학, 철도 분야에서 일한다. 직무도 마케팅이나 사업기획 쪽과는 거리가 멀다. 나는 마케팅으로 직무를 옮긴 이후 디자인 경영, 마케팅, 브랜딩, 경영 관련 사람들만 계속 만나고 공부하고 책을 읽고 대화를 하다 보니 이러한 분야가 너무나 익숙했던 것 같다. 나 역시 계속 엔지니어로 남았더라면 이 책을 읽었을 때 과연 지금과 같은 생각들을 얻을 수 있었을까. 분명 조금은 달랐을 것이다. 아마 이 책을 읽어야 할 필요성조차 느끼기 어려웠을지도 모를 일이다.
나는 이것이 매우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90년대생이라고 해서 모두 다 같은 90년대생은 아닌 것이다. 여러 가지 의미에서 말이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겠지만.
내가 잠정적으로 내린 결론은, 어쩌면 이 책은 일반적인 조직에서는 기성 세대에게 좀 더 참고가 될 수 있을 것 같고, 마케팅 혹은 소비자와 직접적으로 연관된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젊은 세대의 라이프스타일 이해에 도움이 되는 책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세대간 생각의 차이와 행동양식에 있어서 모든 세대가 깊이 있게 생각해 보아야할 주제라고 생각한다. 나에게 이 책은 많은 공감대를 형성한 책이긴 하지만, 섣불리 결론짓기보다 다양한 사람들과 더 토론해보고 싶었다.
이 책은 누군가에겐 공감이 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이렇게 세대에 관련된 책이 이슈가 된다는 것 자체는 세대간 불이해가 정점을 찍고 있다는 사회적 반증일 수 있다. 90년대생 자체를 문제라고 여기지만 말고 그 이면을 들여다볼 마음의 여유를 갖기를, 그리하여 서로 소통하는 사회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 책 제목 : 90년생이 온다
* 저자 : 임홍택
* 출판사 : 웨일북
* 출판일 : 2018년 11월 1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