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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한 Apr 29. 2018

'사직서'라는 마지막 문서작성

사직서라는 일방적 이별통보, 그래도 좋은 이별을 하고 싶다

이틀 전 회사에 사직서를 제출했다. 사원으로 시작하여 차장이 되었고, 12년이라는 시간을 함께한 회사였다. 내 이름과 출신 학교 다음으로 나의 아이덴티티가 되어준 내 삶 자체 이기도 하다.


12년 만에 처음으로 '사직서'라는 문서의 양식을 검색했다. 문서를 작성키 위해 MS 워드 프로그램을 열었다. '사직서'라는 타이틀을 문서 상단에 담담히 타이핑했고 깜빡이는 커서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이것이 이 회사에서 마지막으로 작성하는 문서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 마지막 문서가 어찌 보면 회사를 배반하는 내용이기도 하니 씁쓸했다. 학교를 졸업하거나 군대를 제대할 때의 이별과는 확실히 다른 것이다.  


다른때 처럼 문서를 작성했다. 타이틀을 굵은 글씨로 조정하고 글자 크기를 키웠다. 세부 내용을 작성하고 나서는 글자체를 바꿔도 보고 줄 맞춤도 조정하면서 한 페이지의 워드 문서를 보기 좋게 편집하여 파일을 저장했다.



사직서를 낸다는 것은 남녀 간의 일방적 이별통보와 비슷하다. 전혀 변심을 예상치 못한 무방비의 상대방에게 느닷없는 일격으로 이별을 통보한다. 졸업식이나 군 제대처럼 날짜가 정해져 있어 서로 예측하여 이별의 마음을 준비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미리 상의해 가며 이별을 예고할 수도 없는 일이다.


사직서라는 일방적 이별통보의 필연성에도 불구하고 좋은 이별을 기대하는 것은 욕심이라고 해야 하는가? 더 이상 사랑하지 않아 이별통보를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지난 12년 간의 사랑과 추억에 대하여는 아름답게 끝맺고 싶다면 이기적인가?


요즘 '퇴사'가 유행이라는 말을 들었다. 나쁜 회사로부터 소신껏 탈출하는 의미에서의 내용에 집중된 현상이라 생각된다. 그러나 좋은 퇴사를 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상사가 싫어 퇴사를 하기도 하겠지만 그 상사 때문에 다른 동료들과도 안 좋게 헤어질 필요는 없다. 나에게 불합리한 또 다른 여건으로 인하여 사직을 할 수도 있겠기만 그로 인해 내가 오랜 시간 열정을 다했던 지난 시간들을 부정할 필요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사직서를 쓰는 내내 말 못 할 아쉬움이 밀려들었다. 정든 동료들과의 헤어짐, 못다 한 업무 달성과 좋은 개인적 추억들. 일방적 이별통보라는 이유 만으로 나쁜 이별을 꼭 해야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사직서'라는 나의 마지막 문서작성을 꼼꼼히 다시 한번 마무리하고 프린트하여 팀장님께 건넸다. 겸허히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었다. 나의 마음이 전해진 모양이다. 사직이라는 일방적 통보, 퇴사라는 배반 행위의 부정적 인식 이전에 우리가 함께했던 열정, 시간, 신뢰의 추억을 먼저 떠올려 봤으면 한다.       


나의 지난 직장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나의 새로운 도전 또한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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