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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명록 Apr 27. 2023

울음의 의미

수명록 壽命錄

직업이 곧 나의 정체성인 시절이 있었다. 내가 하는 일이 나의 존재적 목적이 될 것이라 믿었다.


요나는 한때 경호원을 꿈꿨다. 내가 아닌 타인의 안전과 생명을 지키는 일이 존재에 강력한 동기가 되었다. 한 번은 경호 현장을 경험해 보고자 아르바이트를 자원했다. 콘서트장에서 연예인을 따라다니거나, 선거유세를 하는 정치인을 경호하는 등 다양한 상황에서 경호를 필요로 하는 고객의 요청에 의해 움직이고 일당을 받는 일용직 노동자였다.


고상한 현장을 상상한 내 현실은 생각보다 비참했다. 이른 아침부터 대기 장소로 향했다. 인력시장처럼 검은 양복을 입은 덩치들이 무리 지어 서있다. 흡사 용역깡패 같기도 했다. 여자 선배들 마저 어딘가 힘이 한껏 들어가 있었다. 오늘은 그만큼 긴장해야 할 중요한 현장이라고 짐작한다.


봉고차는 일꾼들을 실어 날랐다. 좁은 골목을 덜컹거리며 오르고 또 오르니 콘크리트 잔해들이 패잔병처럼 늘어뜨려져 있다. 가만히 보니 그것들이 원래는 집이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여러 중장비들이 철근 콘크리트 벽을 깨고, 부수고, 잔해들 위로는 발암물질이 나오는 비산먼지가 안개처럼 덮여있다. 그 중심에 아직 부서지지 않은 허름한 집이 하나 있다. 이미 벽이 한 곳은 허물어져 있어 살림살이가 밖으로 드러나있다. 일꾼들은 그 마지막 남은 집을 향해 돌진한다.


초라한 행색을 한 여인이 아직 부서지지 않은 집 앞에 서있다. 당장이라도 주저앉을 것처럼 몸을 떨다가 소리를 지르며 울기 시작했다. 사람이 아직 사는 집을 어떻게 허물수가 있냐고, 내가 우리 집을 어떻게 버리고 갈 수가 있겠냐고 허공에 외쳤다. 멍하니 듣고 있자니 눈물이 솟구치는 것을 가까스로 참고 있다.


나도 모르게 핸드폰의 녹음버튼을 눌렀다. 혹시 현장에서 무슨 일이 생기면 그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증거를 남겨야 한다고 요나는 생각했다. 결국 그가 살던 집은 그의 눈앞에서 허물어진다. 평생의 삶, 가족의 터전이었을 세계가 무너진다. 요나는 집으로 가는 길 서럽게 울었다. 사람들에게 상처 주는 일은 다시는 하고 싶지 않다, 절대로 그런 삶은 살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십여 년이 지난 지금도 그 울음소리는 여전히 요나의 귓가에 머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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